월간참여사회 2006년 11월 2006-11-01   763

입시가 뭐기에

입시를 둘러싼 살풍경

우리나라에서 학부모로 살아가는 일은 녹록치 않다. 입시와 직접 연관이 되어있는 학부모뿐 아니라 장차 먼 미래에 대학입시를 치르게 될 유아와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까지 ‘입시’가 주는 부담감은 과히 괴물을 맞닥뜨리는 것과 맞먹는다. 입시와 관련한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어도 이를 믿는 학부모는 없다. 또 바뀔 것이라고 믿고 있고 입시에 유리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만이 확실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

교육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비인간적인 ‘경쟁’을 당연시하면서 교육의 영역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공의 영역임을 잊은 지 이미 오래다. 12년 간 초중등학교를 다니면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고 옆의 학생과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가르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을 딛고 나만 일어서면 된다는 식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강요하고 있다.

2008학년 대학입시제도가 발표되면서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새로운 말이 나타났다. 상대평가로 이루어지는 학교내신도 소홀히 할 수 없고, 통합논술이라는 생소한 영역도 별도로 준비해야 하고, 수학능력시험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만능을 요구하는 입시전형안이다. 학교에서 이미 평가를 거치고 그 결과를 기록한 학생부도 실질반영율은 5%도 되지 않는다 하고 통합논술의 유형도 내년 3월이 되어서 제시하겠다는 대학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는 무서운 공룡이다.

대학이 보여주는 자세는 매우 고압적이다. 대학이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데 말이 많다는 것이다. 학생선발 방법이 중등학교에서 배우고 익혀 대학에서 깊이 있는 학문을 할 자세가 되어있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워 나눠먹기 하겠다는 발상과 다름이 없다.

입시를 둘러싸고 대학은 정부에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녹초가 되었다. 입시가 필요하다면 정부는 모든 학생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틀을 만들고 대학은 본래의 전문적인 인재양성을 위해 경쟁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와 대학의 틈바구니에서 오늘도 학생들은 과중한 입시공부, 학부모들은 엄청난 사교육비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불변의 입시 공식, 대입≒학벌≒기득권

우리나라 교육 문제에 대해 누구나 할 말이 많고 가장 많은 문제로 꼽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입시’에 관한 것이다. 그 이유는 대학 진학이 사회적으로 공고하게 형성된 서열로의 진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일류대학에 진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과정을 통해 이루어야할 교육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입시에서 유리하다면 학교의 교육과정쯤은 비정상적으로 운영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대학은 우수학생선발 경쟁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학문을 접하는 곳이다. 전문성과 다양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곳이다. 건강하고 진지하게 학문연구에 매진하는 곳이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는 곳이 대학이어야 한다. 누가 더 우수한 학생인지 학생부로도 모자라 통합논술에 심층면접까지 요구하여 고등학생들을 옥죄는 대학의 학생선발 경쟁은 거대한 폭력이다.

학벌은 학력이나 출신 학교로 계승되어온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뜻한다. 또한 같은 학교 출신자나 같은 학파의 학자로 이루어진 파벌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에 따라 사회, 경제적으로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좌우되며, 학벌은 계급적인 차별을 낳게 한다. 기득권 계층으로 진입하는 출발점이 대학입시에 있고 학벌사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학수학능력 알아보는 다른 나라의 입시제도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할 때마다 다른 나라의 입시제도와 비교를 곧잘 하곤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고등교육에서 요구하는 수학능력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자격고사라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자격고사는 학생들의 성적을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을 갖추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와 많이 비교되는 나라는 독일과 프랑스다. 독일은 대학에 진학할 학생과 직업을 가질 학생의 진로가 구분되어 있다. 대학진학을 염두에 둔 학생은 9년 동안 김나지움에서 공부하고 아비투어라는 졸업자격시험에 합격하면 된다. 독일은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국가가 학비를 부담해주고 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관리를 받아야 한다. 깊이 있게 학문을 연구하며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프랑스는 중학교 4학년 때 직업교육을 받을 학생과 공부할 학생으로 나눈다. 직업교육과정을 밟으면 전문 기술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계속 공부할 학생은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대학진학자격을 심사하는 바칼로레아를 보게 된다. 바칼로레아는 2년 동안 준비하는데 공부해야하는 과목도 몇 개 되지 않는다. 바칼로레아는 기본적으로 글쓰기 문제도 “수학적 진리와 물리학적 진리는 본질적으로 동일한가?”와 같은 철학적 주제로 주어지며 채점하는 사람은 교사들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의 경우에도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예비과정으로 2년이 주어지거나 우리나라의 수능시험과 같은 시험을 2년 간 몇 차례 보고 가장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도록 하고 있다.

죽음의 트라이앵글로부터 해방을

한국사회에서 대학진학을 놓고 비인간적인 경쟁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학벌 때문이다. 좋은 학벌을 얻어야 사회에서 안정적인 삶과 지위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를 어떤 형태로 바꾸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많다. 학벌이 우리 사회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박대하고, 대학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은 내용을 테스트하여 초중등교육을 왜곡시키는 한 입시제도를 아무리 바꾸어보았자 근본적인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입시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초중등교육도 살아날 수 있다. 죽음의 삼중고를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일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박이선 참교육학부모회 경기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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