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1월 2006-11-01   813

시대는 달라도 변함없는 입시사회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대학교육은 특권층의 전유물로서 지배층을 재생산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과 더불어 과거 제도가 폐지되자 모든 제도 교육 기관이 일시에 문을 닫았다. 입시 제도는 과거 제도 및 지배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변죽만 울리는 입시제도 개혁

근대 이후 대학이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면서 입시 경쟁이 점점 치열해졌다. 경쟁 심화에 따라 입시제도는 어떻게 공정한 경쟁을 확보할 것인가와 어떻게 경쟁이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초점이 놓여졌다.

해방 이후 한국의 입시 제도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큰 틀을 바꾼 것만도 16번, 작은 것까지 치면 50여 번. 그러고 보면 해마다 조금씩 바뀌어왔다. 명분은 입시 부정 방지, 과열 경쟁 해소,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경감 등 여러 가지지만 결국은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고, 본질에서 벗어난 개선을 되풀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70년대까지 대학들의 부정 입학, 학사 부조리, 졸업장 남발, 교육의 효율성 등이 사회적 문제로 되면서 평가의 주체를 대학, 국가, 고교 등으로 바꿔가며 시험해 보기도 하였다. 70년대 이후에는 치열한 대입 경쟁으로 학생들의 부담 증가, 과열 과외와 사교육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전형 요소를 대학별 본고사, 내신 중심, 학력고사나 수능, 또는 이들의 조합으로 적용해 보기도 하였다. 이렇듯 그동안 시험해 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도입해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2008 입시 제도안은 한 번도 시행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여전히 똑같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누가, 어떤 요소로, 어떻게 전형할 것인가에만 초점을 두었을 뿐 입시 경쟁을 완화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을 모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수능 중요성 줄고 대학 권한 커진 2008 입시

현재 대학 입시에서는 내신, 수능, 논술과 면접 등 여러 가지 전형 요소를 활용하지만 가장 위력적인 것은 수능이다. 수능은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시험지로 동일한 조건에서 보기 때문에 가장 객관적이고 공평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수능은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을 비교하기 쉽고 성적 처리 및 입시 관리에도 효율적이다. 게다가 교과 지식을 주로 측정하는 학력고사와 달리 사고력이나 창의력 등 고등정신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고 하여 도입한 제도이다.

그런데 수능은 사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시험이라는 단점이 있다. 재수생에게 유리하고 학원과 과외 등 사교육을 받으면 효과가 나타난다. 이로 인해 교육부는 수능을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 팽창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수능 비중을 낮추는 2008학년도 입시 제도를 마련하였다. 수능은 점수제에서 등급제로 바뀌어 9개 등급 중 어느 등급에 속하는지만 표시된다. 수능이 예전처럼 예민한 변별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은 긍정적일 수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중요한 전형 요소라는 점이 한계다.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를 법제화해야

2008 입시제도에서 교육부는 내신 중시를 표방하면서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부여하였다. 대학은 우수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전형 요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 입시가 공교육에 미치는 영향, 즉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여 대학 선발권에 최소한의 한계를 두었다. 그것이 본고사 금지, 고교 등급제 금지, 기여 입학제 금지라고 하는 소위 3불 정책이다.

이미 경험했듯이 본고사가 실시되면 학교 교육은 붕괴되고, 사교육이 급증한다. 고교 등급제는 특정 학교나 특정 지역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전근대적 폐습이다. 기여 입학제는 명문대 합격 여부가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들은 진정으로 사회적 책임을 생각한다면 3불 정책은 당연히 수용해야 하며, 정부도 더 이상 논란이 되지 않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시험 결과만이 아니라 여건, 잠재력도 보아야 공정

그런데 지금 소위 명문 대학들이 교육부가 강조하는 내신 중심 선발보다 통합 논술이나 심층 면접을 실시하려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대학들은 이것이 과거와 같은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는 아니라고 하지만, 고교 교육 과정과 무관하게 대학이 임의로 실시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논술고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사교육 붐이 일어나고 있다.

대학들은 내신과 수능의 변별력이 없어져서 논술과 면접 같은 대학별 고사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지만, 변별을 위해 논술고사를 도입하는 것이 교육적인가는 여전히 문제가 된다. 교육부조차 내신과 수능의 결합만으로 충분한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고, 입학 사정관 제도 등도 활용할 수 있으며, 특수목적고 학생들이 동일계 전형을 할 경우 가산점을 줄 수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대학들이 다양한 선발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성적만을 근거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입시의 공정성은 아니다. 수험생이 처한 환경이나 여건 및 잠재력까지도 고려하여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이런 측면을 입시의 공정성 개념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런 원리를 적용한 것이 서울대의 지역 균형 선발 전형이다. 실제로 내신 중심의 지역 균형 선발을 통해 선발된 지방 학생들이 수능이나 논술 중심으로 선발된 도시 학생들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뉴라이트의 입시 자율,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신 중심의 선발에 가장 강하게 반기를 들고 대학별 논술 고사를 옹호하는 집단이 이른바 뉴라이트이다. 그들은 내신 중심의 입시가 지역과 학교의 수준 차이를 무시하기 때문에 불공정하며, 교육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불합리한 정책이라고 본다. 치열한 입시 경쟁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입시 결과에 따라 학교가 차별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입시는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하며, 교육부의 3불 정책도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고교 평준화는 해체되어야 하며, 학교 간의 차이를 드러낼 수 있도록 성적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각한 입시 경쟁, 공교육의 파행, 사교육비 문제도 개인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교육을 시킬 수 있는 사람, 고교 등급제나 기여 입학제로 혜택을 볼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김학윤 잠신고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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