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1월 2006-11-01   2415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화이트칼라 범죄

사법 공정성을 가늠하는 잣대

화이트칼라 범죄를 본격적으로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미국의 사회학자 E.H.서덜랜드이다. 그는 범죄란 빈곤의 결과물이나 정신병의 산물로서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에 의해 저질러지는 반사회적 행위이라는 고전적인 견해에 맞서, 범죄가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전문가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 이후 화이트칼라 범죄는 회사 임원의 지위를 이용한 횡령 및 배임 행위를 총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화이트칼라 범죄와 다른 범죄의 차이점은 범죄의 주체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물이라는 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화이트칼라 범죄는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성에 비해, 피해자가 주로 기업(혹은 국가)이라는 점에서 일반인들이 그 폐해를 체감하기 쉽지 않다. 또 범죄에 사용되는 수법이 누가 보아도 명백한 불법성을 띠고 있는 절도나 폭행-이러한 범죄를 흔히 ‘street crime’이라고 한다-과 달리, 화이트칼라 범죄는 그 불법성을 포착하는데 상당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예컨대 분식회계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회계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불법과 합법의 선을 긋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설사 불법성이 명백하다 하더라도, 범죄의 성립을 증명할 증거의 부족, 혹은 이를 확보하는 수사기관의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소추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또 높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정치적 고려에 의하여 기소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처리는 한 사회의 사법체계의 공정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엔론 이후 화이트칼라 범죄 엄정 주시하는 미국

미국에서는 한동안 수면 아래로 숨어있던 화이트칼라 범죄가 엔론 사태를 계기로 중요한 사회 의제로 다시 떠올랐다. 일반 범죄에 비해 화이트칼라 범죄를 관대하게 처리하는 사법당국의 태도가 엔론 파산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낳은 것이 아니냐는 자성이 의회와 행정부를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의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화이트칼라 범죄를 다루는 사법 체계 (경찰, 검찰, 법원) 전반의 문제점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내용을 포함한 사베인-옥슬리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부시행정부는 2002년 법무부 산하에 화이트칼라 범죄를 전담하는 특별팀을 꾸렸다. 이들은 지금까지 1,000여 명을 기소하거나 유죄 답변을 받아냈으며 그 중 CEO와 같은 기업의 고위 책임자도 2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 기업인에 대한 형량도 높아져서 미국 법원은 각각 110억 달러 (약 11조 원)와 23억 달러 (약 2조 3,000억 원)의 분식회계를 한 월드컴과 아델피아의 최고경영자인 버나드 에버스와 존 리거스에게 각각 징역 25년과 15년의 중형을 선고하였다. 에버스의 경우 건강 악화, 사회 공헌도, 개인 재산 헌납 등을 이유로 감형을 호소했으나, 법원은 “수백만 투자자들에게 준 피해를 볼 때 이보다 적은 형량은 범죄의 중요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형을 선고했다. 에버스의 나이가 63세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사실상 종신형을 의미한다.

불구속·집행유예·사면 만끽하는 한국의 재벌 총수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2000년 이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횡령 혐의로 기소된 기업인 69명에 대한 판결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1심 재판의 실형 비율은 특경가법 전체 평균보다 8%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심 실형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바뀌는 비율은 형사사건 전체 평균의 2.6배였다. 법정형이 징역 5년 또는 3년 이상의 중범죄임에도 피고인의 80%가 집행유예를 받았으며 횡령금액이 5억 원이든 100억 원 이상이든 상관없이 집행유예를 받은 비율이 82.8%였다.

한 마디로 말해 횡령액수가 미미한 일반 형법범에 비하여 기업범죄를 지나치게 가볍게 처벌함으로써-가중처벌하겠다는 특경가법의 취지를 반해가면서까지-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속설을 강력하게 확인시켜준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을 통해서도 제기되었다. 노회찬 의원은 2006년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지난 2월 9일 이용훈 대법원장의 화이트칼라범죄 엄단 방침에도 불구하고, 일선 판사들의 화이트칼라 범죄 솜방망이 처벌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2심에서 형을 깎아주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월 9일 두산그룹 지배주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는 이용훈 대법원장 강경발언 이후 나온 20개 판결을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자체 처벌기준을 갖고 있는 창원지법 양형과 비교하면 전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창원지법 양형기준을 적용하면 20명 모두 구속기소 대상이었으나 7명만 구속되었을 뿐 13명은 불구속기소 혜택을 누렸고, 창원지법 양형기준 적용 시 평균 4년 6월형을 받아야 하나, 실제로는 평균 1년 6월형을 선고받는데 그치는 등 20명 모두 관대한 형량을 선고받았다”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형사재판에서 확인된 것처럼 대법관을 비롯한 고위 법관이나 검사장 출신 변호사들이 퇴직한 지 2~3년, 심지어는 1~2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이들의 변호인을 맡음으로써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의 재벌 총수들은 회사와 사회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더라도 ‘검찰은 불구속, 법원은 집행유예, 대통령은 사면권 행사’라는 불공정한 사법관행을 통해 이중 삼중의 부당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최한수 경제개혁연대 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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