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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6년 12월
  • 2006.12.01
  • 913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자성을 촉구하는 시련의 2006년

숨가빴던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누구보다 고민스런 시간을 보냈던 시민운동진영을 대표하는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만났다. 참으로 묻고 싶은 말이 또 김처장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을것 같아 곧바로 물었다.

2006년 한국사회는 어떠했나.

“최근에도 ‘바다’에 빠졌다가 ‘핵 폭풍’에 휩쓸리는 등 큰 사건이 많았지만, 그런 개별 사건보다는 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개혁의 공과, 특히 과(過)가 부각되면서 민주화에 대한 냉혹한 평가가 가장 큰 화두가 되었던 해입니다.”

참여정부와 국민은 물론 시민사회에도 참 힘든 2006년이었다. 정부만 놓고 보면 마지막 기대마저도 철저히 짓밟힌 한 해였다. 연초 한미FTA 추진 선언부터 최근 실망스런 부동산 대책까지 개혁 표방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은 진보개혁세력 전체에 대한 회의로까지 번졌다.

“진보세력이 민주화는 이끌어냈으나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 삶의 질을 개선하는 문제에서는 뚜렷한 대책과 비전을 보여주거나 현실화시키질 못했죠. 그래서 국민들에게는 민주화와 개혁이 나의 구체적인 삶에 무엇을 갖다 주었나 하는 회의감이 이는 것 같습니다.”

이런 비극 연출에는 보수언론의 역할도 컸다. 노무현 정권을 ‘386정권’이라 몰아붙이면서 386은 물론 민주화 세력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갔다. 하지만, 정치권에 들어간 386이나 노무현 정권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므로 보수언론만 탓할 수는 없다. 시민사회 역시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시민사회 운동진영도 국민들에게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적 평가를 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시민운동, 다시 길을 물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위기’라는 하나의 용광로에 뭉뚱그려 넣어 설명하는 방식은 그에게 마뜩찮다.

“분명한 건 시민운동을 비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거죠. 모두로부터 지지 받는 시민운동은 허상일 뿐이고 지금 제기되고 있는 평화 문제나 사회경제적 문제는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계급, 계층, 이념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시민운동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게 될 때 비판적 세력이 생겨나는 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시민운동의 영향력 축소를 우려하는 시각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그는 오히려 90년대 시민운동이 과잉이었고, 지금이 정상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시민운동의 위기담론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시민운동의 위기 역시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민주 세력 전체의 전망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90년대에는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경제적 풍요 속에 형성된 두터운 중산층이 삶의 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환경, 복지, 교통 등 여러 가지 시민운동 의제가 제기되었다면, IMF 경제위기 이후에는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해졌는데 이에 대한 시민운동의 전망과 내용이 없었던 것이 위기의 원인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타성 버리고 시민의 눈높이로

창립회원끼리 모인 김에 함께 참여연대의 자랑거리를 늘어놓았다. 김 처장은 참여연대가 소액주주운동이나 낙선운동과 같은 신선하면서도 날카로운 이슈를 발굴해냈던 점과 함께 기존의 운동과 다른 방식으로 대중과 호흡하고자 노력한 점을 들었다.

“구태의연했던 집회 피켓도 참여연대가 바꿨고 1인 시위 같은 새로운 운동 문화도 유행시켰고 다른 단체보다 자원활동가도 많고 열성적인 회원 모임도 있지요.”

그래도 가장 자랑스러운 건 정부나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어려운 가운데도 회비에 의한 재정자립의 원칙을 지금까지 고수한 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운동 방식이 관성화되어 창립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어떻게 대중과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공급자 중심적인 운동을 해 온 측면이 있어요. 한편으론 참여연대의 정책적 개입력이 크다 보니, 전문성이 강조되면서 정책집단화하는 경향을 보여 참여연대 운동은 어렵다, 거리감을 느낀다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죠.”

참여연대에는 지금 회원,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시민운동단체라는 본연의 자세를 되찾기 위한 혁신이 필요하다. 올 한 해 유별났던 보수적 언론과 학자의 참여연대 비판도 이런 혁신을 추진하는 데 일종의 채찍 역할을 했다.

“흠집 내기에 불과한 정파적 공격이라 그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참여연대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운동을 계속 활기차게 했다면 함부로 비판하기 어려웠겠죠. 맞대응하기보다는 의연함을 잃지 않고 국민의 절박한 요구를 명확하게 알고 성의 있게 응답하는 자세로 운동하는 것만이 우리를 지켜 나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올해 참여연대의 큰일은 새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고군분투가 아닐까. 이 또한 참여연대의 전통에 따라 시민의 십시일반으로 헤쳐 나가는 중이다. 그 와중에 소위 ‘후원의 밤’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그동안 싼 임대료를 내고 있으면서 언젠가는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비 절감은 물론 간사들에게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주면서 저축을 해왔습니다. 건물 이전 때문에 매년 9월에 하는 후원회의 시기를 앞당겼고, 초청대상도 예년대로 했죠. 본래 기업 후원은 전체 후원금의 5%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 삼았던 별개 사업단위의 진행사업과의 시기 등의 문제는 앞으로 면밀한 검토와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죠.”

보금자리 마련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묻자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최근 몇 달 진전된 것이 없었죠. 후원금으로 부지는 구입했으나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건물을 지어 기부하겠다는 건설사들도 있었지만, 여러 제안들을 거절하고 가장 싸게 지을 수 있는 시공사를 선정해 11월 말에 계약했어요. 내년 7월 정도면 입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2의 창립을 준비할 때

한국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은 참여연대만이 아니라 시민운동 공통의 고민이지만, 매서운 권력 감시로 상징되는 참여연대의 변신은 그만큼 쉽지 않다. 김 처장은 참여연대 내부 논의에 매몰되어 시민의 절박한 심정과 눈높이에서 이슈를 발굴하고 함께 실천하면서 대안을 만들어가는 실천적 접근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사회경제적 개혁이 이전의 반부패운동이나 낙선운동과는 다른 길을 요구한다는 것도 나름의 부담이다. 이제 시민사회도 계급계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갈릴 수밖에 없다. 명분만으로 이기는 싸움의 시대는 끝난 것이다.

“조세개혁하자고 하면 강남에 사는 사람, 고가 주택을 가진 사람은 반대하죠. 복지를 늘리자는 것도 정부나 정치권의 반발 이전에 아마 일부 시민사회에서 먼저 반대하겠지요.”

하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이제 참여연대는 근본적인 차원의 새로운 의제와 비전으로 급격한 변화에 대응할 때가 온 것이다. 2006년은 이런 고민을 가다듬으며 참여연대 2기 운동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참여연대 2기 운동과 관련해 조직개편, 인적쇄신, 사업방향 등에 관해 1차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는 중입니다. 총회준비위원회를 조기 구성해서 내부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총회는 참여연대 2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운동은 병이자 약

그는 대학시절부터 줄곧 운동에 전념했던 22년 경력의 활동가다. 가장 긴 휴식이 한 달간의 미국 연수란다. 안식년 때 다시 불려와 사무처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재충전의 기회를 놓쳐 아쉬웠지만 참여연대는 그에게 참으로 각별한 존재다.

“20대에는 시대가 나를 운동하게 했다면 30대에는 훌륭한 선후배들과 함께 참여연대에서 내가 하는 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거쳐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운동가로 살아오는 동안 후회하거나 고통스러워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운동이 ‘병인 동시에 약’이며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낙천적 기질 탓일까. 주위 사람들은 그가 지치지 않고 한결같이 일하는 비결이 스스로를 참여연대와 일치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초창기에 동고동락했던 이들을 평생의 동지로 고맙게 여긴다.

“용산 시절 쥐 나오는 사무실에서 이틀 걸러 하루씩 밤새워 가며 6대 밖에 없는 컴퓨터를 12명이 써가면서 버텨줬던 후배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참여연대가 있었고 저도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2기 운동가들이 주력을 형성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창립 멤버인 자신에게도 비상을 위해 날개를 가다듬을 시간이 오길 고대한다.

“참여연대가 비약하는데 회원의 굳건한 성원이 없으면 어려울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건, 참여연대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견결한 원칙을 가진 시민단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는 것, 또 그런 자부심을 지켜갈 수 있도록 상근자들이 노력할 것이니 성원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정인 「참여사회」 편집위원,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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