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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6년 12월
  • 200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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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한국은 민주화와 더불어 세계화를 본격적으로 경험하기 시작했다. 선거를 통해서 재집권에 성공한 구 정치세력은 내부로부터는 민주화 요구와 외부로부터는 개방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밖으로 부터온 개방과 OECD 가입 압력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한국은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의 개방 압력을 피할 수 없었다. 이미 80년대 말부터 OECD가 한국의 OECD가입을 촉구해왔지만, 시장개방 압력이 더 커질 것을 두려워하여 한국 정부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무역 갈등이 커지자, 한국정부는 90년대 초 세계경제질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OECD 가입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90년 3월 OECD 비회원국으로서 최초로 아시아 신흥공업국 6개국을 포함한 OECD 비공식 경제정책협의회 회의를 서울에 유치하였다. 그리고 OECD 산하 위원회에 참여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1991년 4월 OECD가입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하였고, 1996년 12월 마침내 OECD의 회원국이 되었다.

90년대 초 한국의 OECD 가입은 국내에서는 큰 논쟁거리였다. OECD 국가들은 한국의 가입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였고, 로버트 코넬 OECD 사무차장과 프레드 버그스텐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EI) 소장 등은 OECD 가입을 통해서 한국 경제가 더 성장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였지만, 국내의 논의는 시기 상조론이 지배적이었다. 한국 경제에 대한 나라 안팎의 인식 격차가 대단히 컸다. 외국의 시각은 한국이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제2의 일본이라고 보았다. 반면에 국내의 시각은 당시 한국 경제를 위기 상태라고 보았다. 경제성장이 크게 둔화되었고,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여 전반적으로 경제위기 징후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개방화를 의미하는 OECD 가입은 무모한 것으로 비춰졌다. 개방의 결과가 긍정적일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OECD 가입은 남미 경제와 같이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높았다. 그러므로 OECD 가입에 앞서, 개방의 부작용을 막기 위하여 경상수지 흑자를 이룩하고 자본시장을 개방하여 체질을 개선한 다음에 OECD에 가입을 해야 한다는 단계론이 우세했다. 관치금융과 같은 금융관행이 근절되지 않고는 경제 선진화를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긍극적으로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개방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뚜렷한 견해가 없었다.

경제체질의 변화를 요구하는 OECD 가입

90년대 들어서 한국의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압력이 더 거세졌다. 미국의 중앙은행(FRB)과 OECD는 한국 정부가 제시한 금리자유화 일정을 앞당기도록 요구하였다. 미 행정부는 92년 의회 보고서에서 한국이 OECD에 가입하도록 유도할 것이며, 미국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없애도록 할 것이라고 표명하였다.

91년 10월 정부는 1996년 OECD 가입 방침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OECD 가입과 관련된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였다. OECD는 한국의 금융시장과 자본시장 개방을 요구하면서 한국 정부의 계획보다 2-3년 앞당겨 가입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제7차 경제사회개발계획이 끝나는 96년이 적절한 가입시기라고 보았다. 92년 5월 18일 파리에서 개최된 OECD 각료회의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은 한국의 OECD 가입 노력을 환영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그 다음 달에 한국 정부는 96년 OECD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OECD 사무총장에게 정식으로 전달하였다.

OECD 가입은 OECD의 경제 제도와 규칙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많은 제도 변화를 수반한다. 여기에는 각종 정부 규제를 철폐 및 완화가 포함된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 자유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서비스 시장에 대한 규제도 바뀌어야 했다. 자본시장 자유화는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 철폐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부의 자본시장 통제력의 약화를 의미했다. 여기에는 외국인 투자제한 업종을 없애는 것도 포함됐다.

내부로 부터의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OECD에 가입

92년 선거에서 승리한 김영삼 정부는 이듬해 4월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20개 부처 실무국장을 위원으로 하는 ‘OECD가입 실무위원회’를 발족하였다. 그리고 OECD 가입에 앞서, 먼저 94년까지 OECD 26개 위원회에 가입한다는 일정을 확정하였다. 동시에 김영삼 정부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경제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좌초되었다. 기득권층의 저항으로 개혁의 중단되었다. 결과적으로, 개발연대의 유산을 개혁하지 못한 상태에서 OECD 가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치적을 내세우기 위하여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1995년 임기내 1인당 국민소득 1만 불을 달성하게 만들었다. 그 이듬해 OECD에 가입하여 임기내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는 점을 내세웠다.

개발연대에 형성된 경제 제도와 관행의 변화를 요구하는 압력은 내부적으로 강하게 존재했다. 경제 민주화와 노사관계의 민주화 등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있었지만, 이러한 내부적인 압력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구 정치세력이 그대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경제개혁 요구에 소극적이었다. OECD 가입 압력은 외부로부터 주어졌고, 개발 연대의 제도와 관행 철폐 압력이 외국에 의해서 가해졌다. 그것은 한국민을 위한 민주적 개혁이 아니라, 외국의 기업과 투자자들을 위한 개혁이되었고 정치적 민주화의 실패가 경제적 민주화의 실패를 낳았다.

한국의 OECD 가입 추진 경위

-1978년 6월 : 블루멘탈 미국 재무장관, 우리나라의 OECD 가입 거론

-1980년 1월 : OECD 사무국, 우리나라와 경제협의회 개최 제의

-1988년 4월 : 동경에서 개최된 미·일·유럽의 고위급회의시 한국의 OECD 가입 권유

-1989년 1월 : OECD 사무총장, ANICs 중 한국을 유력한 가입후보국으로 지칭

-1989년 3월 : OECD에 연락관(Liaison Officer)파견

-1989년 10월 : 페이예 사무총장, OECD 회원국 후보로 우리나라 거론

-1991년 4·9·11월 : 세 차례에 걸쳐 정부조사단 파견

-1991년 10월 : 페이예 OECD 사무총장, 외무장관 초청으로 방한­한국정부, '90년대 중반 OECD 가입의사 표명

-1992년 1월 : 「제7차 5개년계획」심의회에서 '「제7차 5개년계획」후반기에 OECD가입추진키로 확정

-1992년 4월 : OECD 각료이사회, 한국의 가입문제 협의 ­한·OECD간 공식접촉 확대를 환영

-1993년 6월 : OECD 각료이사회 성명에 '한국의 OECD 참가 활동 확대를 환영'하는 내용 포함

-1993년 7월 : 「신경제 5개년계획」에서 96년 OECD 가입 계획 확정

-1994년 2월 : 경제발전검토위원회(EDRC)/한국경제검토회의 개최(파리)

-1994년 6월 : 각료이사회에서 한국과의 가입조건 협의에 관한 권한을 사무국에 위임

-1995년 3월 : 가입신청서 제출

-1996년 10월 : OECD 가입 정식 결정

-1996년 11월 : OECD 비준안 국회 통과

-1996년 12월 : OECD 가입서 기탁(프랑스 외무부)

신 광 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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