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0월 2006-10-01   452

사람이 1순위인 사람

서정민 회원

하늘이 드높은 가을 오후, 칡덩굴 우거진 서울 정독도서관 벤치에서 서정민(44세)회원을 만났다. 불혹의 중턱에 선 세월이지만 단발머리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그녀는 방금 수업을 마치고 나온 대학생 같았다. 책 몇 권을 끼고 팔랑거리듯 웃는 모습은 영락없는 새내기이다. 홍자색 칡꽃을 손에 들고 유쾌하게 먼저 말문을 열었다.

“참여연대요, 사람들이 좋아서 회원 되었지요. 제가 좋아하는 분들의 권유로 두말 않고 가입했지요. 제겐 항상 어떤 단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가 중요해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제 삶의 1순위예요.”

정감어린 말투가 단박에 사람을 끄는 힘이 있어 귀를 계속 세우고 듣게 된다.

“역시 이곳 사람들도 ‘진국’들만 모였더군요. 간사들도 어쩜 그리 친절하고 겸손해요? 솔직히 참여연대라고 하면 메이저 시민단체잖아요. 밖에서 생각할 땐 지나치게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 생각했는데……. 단체의 성향과 구성원들의 품성은 좀 다른 것 같아요,”

교통지도를 하면서 환경과 교통문제에 눈뜨다

그녀 역시 그런 듯하다. 자신이 나서야 할 자리라 생각하면 몸을 아끼지 않지만, ‘자리’ 그 자체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해온 자원활동나 후원단체를 꼽는데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이다. 몸으로 도울 수 있는 곳에는 몸으로, 후원을 할 수 있으면 작은 성금이라도 아끼지 않고 앞장을 서고 있다. 봉급쟁이인 남편의 봉투만 축(?)내는 것 같아 이젠 파트타임이라도 뛰어야겠다며 웃음을 날린다.

지금 대학 1학년인 큰아들이 초등학교엘 입학하고부터 봉사활동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녹색어머니회에서 아이들의 교통지도를 하면서 환경과 교통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지금껏 녹색교통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부모가 사망하거나 장애를 입은 저소득층 자녀를 위하여 매달 한 번 가정을 방문하여 학생들 상담도 해주고 후원금도 전달하지요. 가서 보면 정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2030의 청사진을 아무리 갖다 대면 뭐 해요. 당장 하루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아요.”

이웃을 향해 종종치는 걸음

사람에 대한 관심이 1순위인지라 때론 지인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해 시민단체 회원이 되기도 하지만 자발적으로 회원 가입을 하는 곳은 사회복지 분야라 한다. 장애아특수학교의 체육보조교사, 독거노인 도시락배달, 노인무료급식소 식당보조, 노인복지센터 안내담당……. 그 중 가장 어려웠던 일은 특수학교의 체육보조교사였다고 한다. 학생들의 이동을 도와주는데 체력이 부쳐 힘들었다며, 남성들의 동참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소외된 이웃을 향해 종종걸음 치는 그를 가장 든든하게 후원해주는 사람은 바로 남편이라고 은근히 자랑을 한다. 대학 때 미팅에서 만난 동갑내기 남편은 서글서글한 그녀의 성격에 반해 지금껏 초심 그대로 산다고 한다.

다른 시민단체들과 비교할 때 참여연대의 힘은 어떤 것이냐는 조심스런 질문에 당황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잘 모르겠는데요. 안내데스크의 보조활동가 역할을 하다 보니 뚜렷이 말할 거리가 없네요. 전 책상에 앉아서 하는 활동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며 하는 일을 더 좋아해요. 자원활동도 코드가 맞아야 신바람이 나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자원활동가라는 명칭보다는 나눔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내가 가진 것을 나눈다, 더불어 산다는 걸 실감하는 말이잖아요.”

자원봉사나 후원이 영성을 성장시킨다.

종교적인 냄새가 풍기는 말이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내게 종교에 관한 자기 생각을 풀어놓는다.

“전 종교는 없어요. 종교란 사람의 영적 성장을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영적 성장이 꼭 종교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여기지는 않아요. 저 같은 경우 자원봉사나 후원이 영성을 성장시키고 확장시켜준다고 믿어요. 그러기에 종교에 귀의할 시간과 돈이 있으면 봉사하고 후원금 한 푼 더 내겠어요. 어쩜 신이 그것을 더 원한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기업화되고 교세 확장에만 혈안이 된 종교판에 놓는 일침이 꽤나 따끔하다. 영생과 내세의 행복을 내세워 사람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오늘의 종교보다는, 삶의 바닥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따뜻한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이만큼이라도 살 만한 게 아닐까.

중3인 작은애가 대학 입시에서 해방되면 ‘나눔이 활동’에 발벗고 나서겠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나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 2,3세를 위한 봉사와 지원을 지속적으로 하여, 그들과의 소통에 아무런 장애 없이 어깨동무 하고 가는 세상을 만드는 게 꿈이란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울사람들’은 전천후 활동가 한사람을 잃게 된다. 이번 학기에 지방 국립대 교수로 임용된 남편을 따라 짐을 꾸리는 중이라 한다. 내년 2월이면 서울살림을 완전 히 접고 부산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 계획이라고 들떠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서울 중심의 문화에서 벗어나 특색 있는 지방 문화를 찾아가는 설렘 때문이지 싶다. 그래도 참여연대 회원으로서의 관심과 지지는 계속된다며 환하게 웃는다. 웃음 속에 가지런한 치아와 염색기 없는 단발머리는 금방 강의실로 들어갈 학생처럼 풋풋했고, 유난히 많은 웃음에는 특유의 향기가 배여 있어 사람을 취하게 한다. 아깝다, 그 웃음소리를 자주 들을 수 없음이….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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