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1월 2006-01-01   404

새 시대의 왕

지난 연초에 호치민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했던 부끼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다. 1945년부터 호치민이 운명할 때까지 비서로 일했던 부끼와의 만남은 그의 갑작스런 입원으로 연기되었다. 그러나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 사이 그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부끼, 그와 호치민 사이에 얽힌 이야기는 이제 기록으로만 남게 되었다.

어느 날 하노이 북부에 있는 흥인성의 당 서기장이 주석이 된 호치민을 만나러 왔다. 성의 여성대표, 청년대표, 노인대표, 농민대표들과 함께 온 일행은 굉장히 큰 양동이를 하나 들고 왔다. 의아하게 여긴 비서 부끼가 뭐냐고 물으며 자기에게 맡기고 들어가라고 했지만 당 서기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이건 내가 직접 주석님께 주어야 하네.”

“뭔지 모르지만 아마 안 받을 텐데요.”

부끼가 말렸지만 당 서기장은 기어코 양동이를 들고 들어갔다. 결국 당서기장은 직접 그 양동이에 든 선물을 호치민에게 내밀었다. 양동이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어본 호치민우 비서 부끼를 불러 생선의 무게를 달게 하고, 값을 쳐서 지불하게 했다. 그리고 함께 온 대표들에게 ‘신 로이(미안합니다)’라고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힘이 드세요. 힘들여 물고기 길러야지. 거기다 이런 관리들 때문에 이 무거운 것을 들고 먼 길을 와야지…”

그때 농민대표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래도 이런 간부가 계시니까 우리가 박 호(호 아저씨)를 뵐 수 있지 않겠습니까.”

농민은 결코 농담을 한 것이 아니었다. 호치민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호치민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모두에게 한 개비씩 권했다. 다들 호치민이 내민 담배를 받아 들었다. 그런데 노인대표만 담배를 피우지 않고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호치민이 노인에게 왜 안 피우냐고 물었다.

“이건 왕께서 저에게 주신 하사품입니다.”

호치민은 아주 난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쭈(자기보다 윗사람을 부르는 경어), 보세요. 왕이면 왕궁에 있어야지. 이런데 사는 게 무슨 왕입니까.”

볼품없는 주석의 거처를 둘러본 노인은 농민대표보다 더 진지하게 대답했다.

“호주석은 과연 새 시대의 왕이십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호치민이 담배를 태우라고 다시 권했다.

“그러니 그 담배는 태우세요.”

그러나 노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이 담배를 잘 보관해뒀다가, 제 자식들이 내 주검 앞에서 피우도록 할 것입니다. 호주석의 향기를 맡으며 다른 세상으로 가고 싶군요.”

호는 아무 말 없이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서 노인에게 내밀었다.

“그럼, 이것이라도 피우세요.”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호치민은 왕이 되는 것이 왕이 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쉬웠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권력을 즐기는 것은 즐기지 않는 것보다 얼마나 쉬운가.

방현석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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