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1월 2006-11-01   953

우리 도시의 자생력

실로 우리의 국토는 지난 60년 간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과정이었다. 나무숲은 아파트의 숲으로, 작은 구릉은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인으로, 그 사이를 흐르던 실개천들은 콘크리트길로 변화해왔다. 작은 골목길을 걸었던 경험의 흔적은 어느새 간데온데없어져서 낯선 건물 앞에서 당혹해 하는 자신을 발견하기 일쑤이고, 몇 년 동안 외국이나 타지에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이른바 촌놈이 되기 십상이다.

서울이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라고 자랑하지만 그 역사의 흔적들을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 흔적들을 부수고 들어섰던 건물들조차도 이제는 그 경제적, 구조적 수명을 다하자마자 다시 새로운 건물로 채워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 도시들은 그 짧고 집약된 경제성장의 기간동안 거의 완전히 탈바꿈하였다.

새로운 가치와 변화 수용의 시각 필요

이러한 도시의 거대한 흐름의 변화를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명확하다. 그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 소외된 것, 불편과 짜증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하며, 생산적이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도도한 개발의 흐름 속에서 게릴라처럼 존재하면서 가치를 획득하게 된 소중한 것들과 오히려 새롭게 등장한 긍정적 변화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질서의 난개발로 혼돈되고 엉망인 것처럼 보이는 우리 도시의 현재 모습에 좀 더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그 속에서의 삶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의 도시는 무궁무진한 긍정의 가치들을 가지고 있다. 결국 그것을 이끄는 힘은 우리의 진지하고 역동적인 삶이다. 도시를 구성하는 물리적 하드웨어가 더욱 거대해지고 견고해지고 있고 심지어는 파괴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 속에서 점점 자생력을 키워나가는 소프트웨어가 다시 그 하드웨어를 재편하고 있다. 그것을 채워가는 소프트웨어는 바로 우리의 너무나 평범한 일상적인 삶이다.

주변 곳곳에 깃든 자생의 흔적

이러한 흔적들은 우리의 도시 공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다른 도시나 외국에 사는 친구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분명히 어딘가 데려갈 만한 곳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연인과 함께, 또는 홀로 있을 때 찾아 가보고 싶은 곳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자기만이 알고 있는 이 도시 어딘가의 보물 같은 곳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곳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찾아가는 기념비적인 경관이나 건물을 가진 관광지 같은 곳만은 아니다. 또 어느 외국의 유명한 거리처럼 잘 정돈되고 깔끔한 거리가 아닐 수도 있다.

서울이라면 옛 골목길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인사동, 보보스족의 거리 압구정동, 또는 대안문화의 본고장 홍대에서 연인과 데이트를 즐길 수 있고, 대학로에 가서 연극 한편을 보면서 인생의 한 면을 살짝 엿보고 나올 수 있다. 남대문 시장의 사람 숲을 헤매다가 작은 액세서리를 충동구매할 수도 있고, 동대문 시장에 가서 멋진 옷 한 벌을 장만할 수도 있다.

세운상가와 청계천, 을지로 주변의 공구상가를 뒤지면서 자기가 만들려던 물건의 부품들을 발견하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나가면 한강과 연결된 지류들을 따라 서울의 곳곳으로 찾아갈 수도 있다. 부산의 남포동 거리를 걸으면서 영화 한편으로 시간을 때울 수 있고, 인천의 차이나타운에 가서 자장면 한 그릇을 비우고 작은 중국을 느끼고 올 수 있으며, 전주의 한옥마을에 가서 풍성한 양념으로 채워진 비빔밥 한 그릇을 먹을 수도 있다.

미사리의 한 카페에 들려서 과거에 좋아했던 가수의 노래 한곡을 듣고 올 수도 있고, 양평에 가면 차 한잔을 마시며 멋진 예술작품을 눈요기할 수도 있다. 군산이나 강경의 쇠락한 식민지 시기의 건물을 보면서 식민지 수탈의 현장을 간접체험할 수도 있고, 광주의 금남로와 충장로를 걸으면서 민주주의의 흔적들을 느껴볼 수도 있다.

오늘날 도시 공간은 역동적인 삶의 과정

이렇듯 우리 도시 곳곳에는 매력적이고 가볼만 한 곳들이 널려있다. 이러한 곳들의 대부분은 정교한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어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이는 어떤 일률적인 설계와 공사를 통해서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이곳들은 우리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과 함께 해왔던 도도한 자생의 흐름들 속에서 만들어진 곳들이다. 이러한 곳들은 모두 우리의 진지하고 역동적인 삶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곳이다. 심지어는 버려지고 소외된 공간으로 존재하다가 바로 그런 이유로 어느 순간에 소중한 가치를 갖게 된 곳들도 많다.

자동차만을 위한 교차로로만 존재하던 서울시청 앞 광장을 그야말로 순식간에 우리 시민들은 열린 광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처럼 기획되고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도시공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단기간에 변화시킨 위대한 사례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100년 전의 차이나타운은 역사 속에서 소외되고 개발의 손길에서도 벗어나 잊혀지고 쇠퇴되어 있다가 현실의 차이나타운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새로운 파트너의 성장과 그 속에서 박제화된 채 남아있던 차이나타운의 가치가 생명력을 불어넣어 새롭게 부활하는 공간을 탄생시키고 있다. 동대문의 쇼핑몰은 침체된 상권을 극복하려던 상인들의 노력과 개발이라는 이익실현의 가치가 부합되더니 이제는 3만 여 개의 원스톱 점포가 모인 가장 붐비는 아시아 패션의 중심이 되었다.

내가 만드는 도시

이 모든 공간들은 정치가나 공무원, 도시계획가가 만든 곳이 아니다. 또한 세계의 어느 다른 멋진 도시를 모방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렇듯 우리의 도시는 중앙집권의 정부와 지자체가 모든 것을 결정하여 특정의 전문가 집단이 규제와 강제를 통해서 그것을 집행하고, 시민들은 그 결정된 내용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 시민이 바로 우리 도시를 만들고 있고, 공무원이나 전문가들은 바로 우리가 이미 창조한 매력적인 도시공간을 지원하고 보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인천시는 차이나타운을 문화재 등록과 거리 가꾸기를 통해 그 가치를 보존하고자 한다. 또 서울시는 동대문의 세계 최대 패션산업 집적단지에 관광특구 지정 등의 지원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모두 그곳들의 가치가 구체적으로 발현된 이후의 일이다.

이렇듯 도시는 전문가가 시민들을 위해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 속에서 도시는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힘은 우리의 삶과 도시공간에 흐르는 위대한 자생력이다. 도시는 우리가 만들어 왔고 만들고 있다. 일하고, 놀고, 먹고, 마시는 바로 우리 일상의 삶이 우리의 도시를 창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나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박훈영 민족건축인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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