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0월 2006-10-01   703

한국군의 역할 재정립에 대한 제언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곳이 군대라고 한다.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대체복무제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현실에서는 현역이 아니더라도 군사훈련을 받고 심지어 신체검사에서 면제를 받아 군대를 가지 않아도 재향군인회의 회원이 되어버린다. 이쯤되면 남자라면 군대를 간다는 말도 틀린말은 아니니 국민의 절반은 군대에 가는 셈이다. 또한 여성들도 우리사회의 군대문화를 피해 갈수는 없다. 우리 사회를 설명할때 군사문화, 군대문화를 빼놓고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삶에 이렇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군대. 사회는 많이 변했는데 군대는 얼마나 변하고 있으며 어떻게 변해야 할까? 군대의 현재의 모습과 앞으로의 변화를 살펴보자.

사전적 의미에서, 한 나라의 군대의 주된 임무는 ‘국가방위’다. 그러나, 인류 역사 속에서 군대는 국가를 방위하는 역할 외에도 국가의 대외정책을 뒷받침하는 ‘힘’으로 평가되어왔다. 특히, 탈냉전기에 접어들어서는 분쟁의 해결과, 이른바 ‘깡패국가’에 대한 국제규범의 강제라는 명분으로 국제적(혹은 다국적) 군사력이 동원되면서 군대는 ‘국제공헌’의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도 전통적인 대북억지를 넘어 군대의 역할을 대외로 확대시키려는 흐름이 있다. ‘증대되는 자원 확보 경쟁 등에서 국익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군사력이 필요하다’는 논리나, 최근 부쩍 늘고 있는 해외 파병론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고 할 것이다. 군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물론, 여기서 군의 역할이란 민주화의 최대 과제였던 ‘군의 정치무대로부터의 퇴장’과는 다른 의미이다.

안보에 관한 오래된 오해들

식민침략의 경험, 분단과 전쟁, 냉전의 역사가 남겨 놓은 안보관은 군대의 역할과 규모에 대한 논쟁의 가장 큰 벽이다. 우리 사회에서 ‘안보=군사력’이라는 관념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안보=군사력+외교력+α+……”라는 사고가 들어설 여지가 없게 된 것이다. 군사력(혹은 군대)을 상대화해서 평가해 볼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작년 한 연구소가 조사한 설문에서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강해야 한다”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비율은 72.7%에 달한 반면, “가난한 나라에 대한 원조를 늘려야 한다”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 답변은 40.7%에 불과했던 결과는 대표적인 예이다(중앙일보·EAI 공동 ‘한국인 정체성’ 조사).

우리 사회의 대북인식과 북한 위협에 대한 평가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국제정세의 변화(특히,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남북관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북인식은 별반 변화가 없다. 북한보다 7~8배의 국방비를 쓰고, 남한의 국방비가 북한의 GDP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방부와 산하연구기관이 발표하는 남북한 군사력 비교는 ‘남한 열세, 북한 우위’라는 판에 박은 결론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지만, 백보 양보해서 국방부와 정부 연구기관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막대한 돈을 쓰고도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산출하지 못한 국방부와 군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다.

군축없는 통일을 원할 주변국 없어

우리의 안보전략이 정적이고, 피동적이라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차원의 안보전략 하에서 군대의 역할과 규모가 결정될 터인데, 사실 대한민국은 안보전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특히, ‘지역 내 잠재적 위협’을 내세워 국방비 증액과 군의 대외적 역할 확대를 주장하는 논리는 국제정세를 ‘주어진 현실’로 그대로 인정해 버리는 것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국가적 목표와도 배치된다. 현실적으로도 주변강대국들에 맞서 군비를 증강하는 것이 타당한 전략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오히려 남북한의 상호군축과 동북아시아 차원의 군비통제와 군축 등 적극적인 전망 속에서 군대의 역할을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타당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군은 자신의 역할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 속에서 찾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군이 남북한 상호군축과 동북아 군축의 주도권을 쥘 필요성이 요청된다. 남북한 각각 60만과 100만의 정규군을 가진 통일코리아의 등장을 어느 주변국도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비핵’의 원칙은 반드시 견지해야 할 원칙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작년 9월 정부가 발표한 『국방개혁2020』은 2020년까지 상비군을 50만 명으로 줄이는 대신, 대규모 전력증강과 국방비 증액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와는 오히려 거리가 멀다고 할 것이다.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거듭나라

한편, 한국군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은 그동안 소비자 노릇만 해왔던 군이 생산자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동안 군은 막대한 예산과 젊은이들의 청춘을 소비하는 곳이었다. 또한, 가장 폐쇄적이고 예외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사회적 역량 소모의 원천으로까지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군이 진정으로 자기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평화,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사회적 가치의 생산자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대체복무제의 도입과 개선은 그 출발점이고, 가장 손쉬운 길이다. 대체복무제는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군복무를 선택할 수 없는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 1,000명에 달하는 수감자들에게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 시설 등에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수감 비용을 절감하고 큰 예산 부담 없이 사회복지 수준을 증진시킬 수 있는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의 존재가 인권, 복지와 같은 사회적 가치와 충돌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한국의 군이 평화, 인권, 민주주의의 생산자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국민들 앞에 제시하고, 꾸준히 실천해 가야 할 때가 바야흐로 왔다.

이준규 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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