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0월 2006-10-01   871

[참여사회] 아시아의 세기가 오고 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면서 아시아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경제성장이 돋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이유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시아의 역사, 문화, 종교, 인종, 언어를 들여다보면 실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렇게 복잡한 바닥에 수많은 나라들이 세워지고 여러 민족들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왔으며 또 살아갈 수 있다는 상상력은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다양성 속에서 상생을 이루는 지혜, 다른 문화나 종교와 대립하고 충돌하기보다 수용하고 인정하는 관용의 일상화는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자원들이다.

우리는 해방 후 60여 년 동안 아시아를 뒤로한 채 서구문화를 배우려고 혈안이 되었다. 경제개발을 축으로 하는 근대화를 위해 서구의 학문 종교 문화를 배우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믿어왔다. 더욱이 국내의 정치 군사적인 조건들은 서양이 아닌 미국만 바라보게 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일본을 싫어하면서도 일본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뒤쫓아온 모양새가 되었다. 결국 우리는 미국을 통해서 아시아를 보고, 그들을 우리 경제개발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경제개발의 이름으로 우리 기업들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 깊숙이 들어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50만이 넘는 아시아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그들이 우리 발전의 대상이지 동반자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자세로 아시아의 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새로운 길, 아시아와 지역사회

한국의 시민운동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부정부패 척결, 개혁, 민주사회로의 전진 같은 의제들을 중앙정부에 요청하고 압력을 가하는 일을 해왔지만 시민운동 스스로 새로운 가치와 영감을 창출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인 듯하다. 이러한 의제들은 정당정치가 자리를 잡으면 정당에게 위임해야 할 것들이므로 자연스럽게 시민운동이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오래전부터 시민운동이 나아갈 방향은 두 가지라고 믿어왔다. 그 하나는 아시아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사회이다.

아시아는 방대한 지역이고 세계인구의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 이런 아시아를 배운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더구나 아시아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서 서로 신뢰관계를 만드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이러한 도전 앞에서 우리의 편견과 오만한 자세를 반성하고 몸과 마음을 낮추어 겸손한 자세를 갖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걸음은 시작되어야 한다. 아시아 사람들에게 비친 한국은 해방까지는 일본사람들에게 끌려다니다가 그 후 60여 년은 미국사람들의 뒤를 따라왔다. 그러던 우리가 이제부터 아시아 사람으로 서서 그들과 나란히 걷고 또 신뢰를 쌓아 연대하는 일은 힘든 과제이다. 그러나 힘들어도 이 길을 택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진로이고 비전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를 강조하는 것은 지역사회가 사람이 보이는 삶의 터전이고 민주주의 사회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민운동도 삶의 현장에서 감동을 창출할 수 있어야 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오랜 시련과 투쟁 끝에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절차와 과정의 설정, 기초적 원칙과 가치의 일상화에는 아직 미흡하다. 원칙과 가치들을 일상화함으로써 사회적 상식이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 각 방면에서 사회적 불안이 노출되는 것도 이런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민주적 제도를 지탱할 사회적 정신적 인프라를 지역사회가 만들어야 하며 시민운동은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사회가 먼저 아시아를 받아들이는 사회적·문화적 공간으로 등장해야 한다. 우리가 나아갈 길을 생활을 통해서 드러내 보이고 감동을 창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일본 미국에서 벗어나 아시아와 새롭게 사귀기

이러한 과제들을 안고 오는 10월 27일 아시아교육연구원(Asia Institute)이 출범한다. 오랫동안 아시아 현장에서 살았고 또 아시아 사람들과 연대활동을 해온 동지들의 지혜를 모아서 아주 차분하게 시작하려고 한다. 경험이 쌓일수록 침착해지고 걸어온 세월이 길수록 더 멀리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아시아를 배움과 동시에 진정으로 아시아를 받아들일 준비도 해야 한다. 나라 전체를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아시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공동체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해볼 만한 일이다. 이미 여러 단체들이 여러 곳에서 이와 같은 실험을 시작했다. 각각의 지역사회가 주체가 되어 그곳을 아시아를 받아들이는 열린 국제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시민단체들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과제다.

아시아 배우기, 받아들이기, 더불어 살기 운동 등을 통해 아시아 사람들과 신뢰를 쌓고 더불어 살아가는 운동에는 시민운동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런 운동을 주도하고 전개하는 시민운동이 배타적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시민단체, 대학사회와 협력하면서 축적된 지식과 지혜를 배우고 또 각 나라 정부와 국제기구와도 협력하여 그들의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기업에게도 문을 열어 그들이 건전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평가하는 일도 계획해야 할 것이다.

더 낮은 자세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향해

이제는 아시아 나라들도 서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2005년 12월에는 아시아 나라의 수장들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모여서 아시아공동체 창설을 제안했다. 그러나 아시아 공동체는 국가 간 연합이기 전에 사람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만들어가야 한다. 풀뿌리 민중들이 스스로 걸어 나아가 서로 만나고 연대할 수 있는 마당을 시민운동이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각 나라 지역사회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열린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야 한다. 이제까지처럼 국가이익을 앞세워 흥정하고 충돌하던 사고의 틀과 행동양식을 뒤로하고 민중들의 열망과 꿈이 꽃피는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이것은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사람 중심의 풀뿌리 공동체 운동에서 시민운동이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 많은 경우에 시민단체는 아직 조직되지 않은 풀뿌리 사람들의 염원과 꿈을 대변해야 하지만 그들에 의해서 선출되지는 않았다. ‘선출되지 않은 대변자’의 내부 충돌을 이겨내는 것은 겸손뿐이다. 우리는 이제 아시아에서 사람 중심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역사적 도전 앞에 섰다. 몸을 던져야 일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몸을 낮춰야 별을 볼 수 있다.

오재식 아시아교육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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