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2월 2006-12-01   1270

다사다난(多死多亂)했던 서아시아의 2006년, 숫자로 알아보기

우리는 한 해를 보내면서 흔히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는 말을 쓰곤 합니다. 그렇지 않은 해가 어느 한해라도 있겠습니까만 서아시아 지역은 올해도 역시 다사다난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 다사(多死)요, 전쟁과 난리가 끝이질 않았으니 다난(多亂)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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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부터 11월 15일까지 이스라엘군에게 살해된 팔레스타인인의 숫자입니다. 같은 기간 1,500 여 명이 부상했고, 10명의 자치정부 장관과 31명의 의회 의원이 체포되었습니다. 부산과 비슷한 인구를 가진 팔레스타인에서 6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요. 물론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스라엘에게 겪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설움과 고통을 숫자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스라엘은 6월 28일 ‘여름비’라는 작전명으로 공격을 시작했다가 계절이 바뀌어서 그런지 11월에 ‘가을구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번 공격은 특히 가자지구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는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점령된 뒤 2005년에야 이스라엘이 철수한 지역입니다. 이스라엘은 철수 뒤에도 여전히 가자지구 외부를 봉쇄함으로써 세계 최대의 ‘감옥’을 유지했습니다.

철수는 그나마 1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10년 만에 총선이 실시되었고, 이스라엘이 그토록 싫어하던 하마스가 정권을 잡자 하마스 정권을 무너뜨리겠다고 군사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마스란 집단을 공격하는 것은 바로 팔레스타인 민중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하마스에게 표를 던진 것이 바로 팔레스타인 민중들이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1월 18일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인민저항위원회 활동가인 웨일 바루드에게 집을 폭격할 테니 30분 안에 집에서 떠나라고 통고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웨일의 집 안과 밖에 앉았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도 차마 폭격을 하지 못하고 계획을 취소하였습니다.

100만+60만

의학잡지 란센(http://www.thelancet.com)이 10월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사망한 이라크인이 6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3년 조금 넘는 동안 경기도 안양시 정도의 인구가 사라진 것입니다. 91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이후 10여 년에 걸친 경제봉쇄로 100만 명 이상이 이미 사망했으니 15년 동안 160만 명 이상 숨진 것입니다. 3년 동안 광주광역시 하나가 사라진 셈이죠.

물론 현재의 이라크 상황에서 정확한 통계를 잡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발표되는 통계마다 제 각각입니다. 이라크 바디 카운트(http:// www.iraqbodycount.org)는 5만, 이라크 보건부는 15만 이런 식인 거죠. 어쨌거나 5만이든 10만이든 이런 숫자는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알 수 없는 수치입니다. 이와 함께 미국 영국 등 점령군 사망자도 3,000명을 넘고 있어 국적에 관계없이 시신이 바벨탑 쌓듯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 만큼 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쌓아가고 있고요.

또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에 따르면 300만 명 이상이 살던 집을 떠나 다른 고장이나 시리아, 요르단과 같은 이웃 나라로 떠났다고 합니다. 전체 인구의 12% 가량이 난민이 된 셈입니다. 이렇게 많은 난민이 발생하는 이유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겁니다.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어쨌거나 우리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떠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미군 철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미군이 떠나면 이라크의 혼란이 계속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특히 종파간 갈등을 쉬운 예로 들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누군가 억지로 추를 흔들어서 좌우로 크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흔드는 힘이 사라진다고 추가 당장에 멈추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심하게 흔들리던 것도 차츰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1200+?

7월 12일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이후 8월 14일까지 한 달 여 동안 이스라엘은 전투기와 군함 등을 동원해 9,500번 가량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1,200 여 명이 죽고 4,000 여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상자의 1/3은 어린이들이었습니다. 또한 인구의 1/4 가량 되는 100만 명이 난민이 되어 레바논의 다른 지역이나 시리아 등지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사실 대표적인 것만 들어도 78년 리타니, 82년 갈릴리의 평화, 93년 책임, 96년 분노의 포도 등의 작전명으로 벌어진 침공 과정에서 몇 명이 죽고 다쳤는지 정확한 숫자를 누가 알겠습니까? 이번 침공으로 파괴된 1만 5,000 채 가량의 집이 언제 복구가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게다가 이스라엘 언론 하아레츠(http://www. haaretz.com)가 보도하고 이스라엘 정부도 인정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여름의 침공에서 이스라엘은 인(燐)을 이용한 화학무기를 사용했습니다. 흔히 인폭탄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인이 피부에 닿으면 피부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고 합니다. 인폭탄은 미국이 이라크 침공 때도 사용한 적이 있어 국제적으로 큰 비난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집속탄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집속탄은 공중에서 모폭탄(母爆彈)이 터지면서 안에 있던 수많은 자폭탄(子爆彈)이 쏟아져 나와 목표 지역을 초토화 시키는 폭탄입니다. 그런데 이 집속탄에는 불발탄도 많아 아이들이 무언지 모르고 손을 대다 터지거나 불발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폭발하여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레바논에서 8월 14일 휴전 이후에도 집속탄 때문에 수 십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침공이 끝난 듯 보이지만 그 여파로 계속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한 미래도 걱정입니다. 휴전 이후에도 이스라엘 전투기는 수시로 레바논으로 넘어가 사격을 하고 있고, 또 언제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침공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1+1=0

<한겨레>는 지난 11월 20일자 ‘희망 건네는 전직 대통령 우리는 언제쯤 볼까’라는 기사에서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재민들을 돕는 일을 추켜세웠습니다. 이라크를 침공하고, 소련 해체 이후 남아 있던 재고 폭탄을 다 쓰겠다는 심정으로 이라크에 폭탄을 퍼붓고, 의약품도 무기의 원료가 될 수 있다며 경제제재를 풀지 않아 아픈 아이를 둔 이라크 부모들을 눈물짓게 했던 그들에게 이런 찬사가 가당키나 할까요?

중간선거가 끝나고 미국의 이라크 정책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많은 미국인이 이라크 정책은 변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공화당 정부의 이라크 정책이 주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즉각 철군, 단계적 철군 등 여러 가지 의견과 함께 또 나오는 것은 미군 병력의 증파입니다. 병력을 더 투입해서 승부를 보자는 거지요.

공화당=매파, 민주당=비둘기파와 같은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라크라는 큰 먹이를 두고 어느 당이 집권하든지 미국의 이익이 확실히 보장되는 상황이 아니면 전면 철수를 내세우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공화당이 무조건 힘으로 밀어 붙이라고만 외치는 반면 민주당은 남들 눈도 조금 신경 쓰면서 밀어붙이자는 거죠. 대표적인 사례가 1993년에 있었던 오슬로협정입니다. ‘평화협정’이라고 대대적으로 떠들고 당사자들에게 노벨상도 안겨 줬지만 남은 것은 더 많은 검문소와 도로 봉쇄, 갈가리 찢어진 땅과 늘어만 가는 토지 몰수뿐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인티파다(민중항쟁)로 이어졌고요. 폭격으로 단숨에 싹쓸이 하는 것과 폭격을 하되 천천히 피 말려 죽이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라크의 경우도 부시 대통령처럼 무작정 때려 부수는 것이 나은 방법일까요, 아니면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경제 제재로 서서히 목 졸라 죽이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까요? 여기서 1+1=0의 논리가 나옵니다.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이라크에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거지요. 그동안이 워낙 문제였으니 무언가 변하기야 하겠지만 큰 변화는 없지 않겠냐 싶은 거죠.

1+1=3

자,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희망이 없다면 희망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가장 큰 희망은 물론 팔레스타인인들, 이라크인들, 레바논인들에게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가장 크게 고통 받는 이들이 가장 큰 힘이 되는 법이지요. 그리고 그 다음은 바로 우리입니다. 1+1=3으로 만들어 내는 우리 말입니다.

지하철에서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십니다. 제가 ‘할머니, 어디까지 가세요?’하며 짐을 받아 듭니다. 할머니는 ‘아이고, 젊은이가 착하기도 하지.’하면서 고마워하십니다. 이 상황에서는 셋이 웃고 있습니다. 둘은 당연히 할머니와 저구요, 나머지 하나는 바로 ‘우리’라는 존재입니다. 나뉘어 사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우리’가 할머니와 나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 많고 힘이 세어서 연대를 말하고 평화를 말하겠습니까. 새해는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 무언가 해보자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나눌 줄 아는 인간임을 잊지 않기 위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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