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1월 2006-10-31   494

입시와 사교육 산업의 끈끈한 제휴

공교육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산업이 번성한다고들 말한다. 정부차원에서도 사교육비 경감대책이 속속 발표되고 있으나, 현실의 사정은 다르다. 2006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입시·보습학원 수는 2001년 12월말 13,708개에서 2006년 6월말 27,724개로 5년 사이에 14,016개가 증가했다. 참여정부 출범 직전인 2002년 말의 1,695개와 비교해서 66.1% 증가한 것이다. 현 정부가 내세운 사교육비 경감이나 공교육 내실화와는 정반대 현상이다.

끊임없이 성장·발전하는 사교육 산업

이러한 사교육 산업의 증가와 변화는 대학입시제도의 변화와 연관되어 있다. 2006년 9월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이 교육부가 제공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논술학원 등 입시학원 증가율은 2002년 8월 서울대가 논술 부활을 요지로 하는 2005학년도 대입전형을 발표하자 22.9%까지 큰 폭으로 올랐으나 이후 논란의 방향이 내신 및 교과 최소 단위 이수 등으로 옮겨간 2003년에는 15.1%로 떨어졌다. 하지만 2003년 말 ‘특기자 전형을 확대하고 이를 위해 논술 반영 비율을 높이겠다’는 내용의 2005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이 확정 발표되자 2004년 학원증가율은 16.0%로 서서히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2005년에는 20.3%로 대폭 증가했다.

세칭 서울대를 필두로 하는 명문 대학들의 대입 전형 방향에 따라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도 춤을 추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양상은 논술학원 수의 증가 비율을 살펴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전국 465개의 논술학원 가운데 86.5%에 해당하는 402개는 2004년 이후 신설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올해 6월 현재 6,210개로 집계된 서울지역 학원의 수강료를 신고액 기준으로 계산해본 결과 그 액수가 연간 약 9천998억7천 만 원으로 1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시 산업체의 막강한 영향력

대학 합격자 및 대입의 전형 요소인 내신 성적 향상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을 입시 산업이라고 하면, 이 범주에 속하는 입시 산업의 종류를 입시학원, 학습자료, 문제지, 과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학습자료 이른바 참고서 산업을 보자. 학습 자료의 종류와 그 양의 증가 실상은 서점에 나가보면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그 형태도 처음에는 책으로 된 형태가 대다수이고 지금도 그 형태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나 다양한 형태로 진화 발전한다. 흔히 학교에서는 부교재로 통하는 이 학습 자료들은 출판업계의 사활이 걸린 만큼 그 판촉 경쟁이 치열하다. 학교의 부교재로 등장하여 학교 수업에 활용되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 부교재 채택료라는 온당하지 못한 거래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여 최근 전교조 경남지부에서는 부교재 채택료 거부 운동과 부교재값 인하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제지를 제작하는 회사도 초등학생용 일일공부 문제지를 제작하는 아주 영세한 회사로부터 고등학생 대상의 전국적으로 대입 모의고사를 치르는 대형 산업체까지 규모가 다양하다. 해마다 수능이 치러지고 나면 다음날 3학년 교실 뒷벽에는 거대한 규모의 인쇄물이 나붙는다. 대학 지원 배치기준표. 입시 관련 대형사설기관 세 곳이 만들어 제공하는 이 표에 따라 전국의 모든 대학과 학과들은 일등부터 꼴찌까지 점수가 매겨져 서열화 된다. 물론 다른 기관에서도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전국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이들 빅3이 만든 표다.

배치기준표 제작은 돈이 많이 드는 방대한 작업이다. 그래도 이들이 이를 만드는 이유는 사업상의 이익을 위해서다. 이들 3사가 전국의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모의고사를 출제·채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배치기준표는 또 학원수강생 유치, 학습지 발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과외 시장은 전체 사교육비 규모에 통계로 잡히지 않는 영역이다. 고액과외, 변형된 과외, 개인과외, 집단과외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 실상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과외 시장의 경우 그 담당자인 대학생의 존재를 파악하면 사교육 시장의 순환 구조를 읽을 수 있다.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더 많은 사교육비를 투자한 이는 당연한 결과로 서열 상위의 대학에 진학한다. 이들은 그 대학의 간판을 이용하여 대학에 재학하는 동안 세칭 대학생 과외를 통해 많은 소득을 올린다. 그 비용을 그들은 여행이나 유흥비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취업을 위한 사교육비로 지불하고 있다.

사교육 시장에서 과외를 통해 번 돈을 다시 사교육 시장에서 소비하는 것이다. 대학생은 사교육 시장에서 수요자와 공급자의 구실을 동시에 하고 있는 셈이다.

사교육 산업의 점령군, EBS

우리나라의 사교육 입시 산업체의 성패는 결국 입시에서의 적중률이 관건이다. 한 출판사에서 만든 참고서에서 대입 수능 문제가 70% 이상 출제 된다면 이미 판세는 결정되어 버린다. 바로 이 일을 EBS가 하고 있다. 교육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 하여금 수능문제를 그 EBS 교재에서 70% 이상 출제하도록 해왔었다.

2004년 2월, 교육부는 사교육비경감대책 발표하고 두 달도 되지 않아 EBS 수능강의를 시작했다. 정부는 특별 예산까지 편성하여 2004년 260억 원을 지원하였다. 결과는 EBS의 매출 증가만 남았다. 2004년 교재 판매 매출액은 580억 원이었으며, 당기순이익은 180억 원으로, 전년(44억 원)보다 4배 정도 증가하였다.

교육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이 대책의 성과를 홍보하기에 힘써왔다. 2005년 2월에는 월평균 106,000원이 감소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교육부의 발표와는 달리 2004년 11월 통계청에 따르면 EBS 수능강의가 실시되던 2004년 4월~6월에 사교육비가 전년대비 7%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입시 상품, 논술

대학입시에서 여러 교과목 내용이 혼합돼 출제되는 통합교과논술의 등장으로 입시학원은 물론 과외나 관련교재 출판 등 사교육 시장이 일제히 논술로 몰리고 있다.

초중등 과정에서 충분한 기초교육(독서, 토론, 글쓰기)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교 논술 과목 채택은 사교육 시장으로 학생들을 내모는 것과 같다. 입시전문 온·오프라인 학원들은 매주 ‘대규모 논술 세미나’를 개최하고, 서점에는 하루가 멀다고 논술 관련 서적들이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 논술과외 또한 성행한다. 요즘 논술과외 열풍은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초중등생들 사이에서도 한창이다. 이른바 논술의 조기교육현상이다.

가정해 보자. 만약 논술을 사용한 서열화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되면 각 대학들은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논술을 대체할 새로운 도구를 도입할 것이다. 벌써부터 새트나 텝스, 토플 등이 등장하는 것처럼.

대학들이 방향을 틀 때마다 공교육과 사교육 산업은 요동을 치며,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빠져 들 수밖에 없다. 입시제도의 변경은 어떤 방법을 만들더라도 공교육의 왜곡을 가져오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입시제도 변경의 결과 오히려 차별이 강화되는 현 상황이 지속되는 한 대안은 없다. 대학서열체제와 학벌사회의 해체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며 이는 더 이상 장기과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실현해야 할 과제임을 이제 분명히 해야 한다.

이철호 참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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