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0월 2006-10-01   1197

참여연대 간사의 군대이야기

군대의 변신, ‘화장발’ 아니라 ‘쌩얼’이기를

대한민국 남자라는 존재의 영원한 이야깃거리, 군대.. 그 군대와의 끈질긴 인연은 아직까지 계속되어 2박 3일간의 예비군 훈련이 저에게 강요되었습니다. 짧지만 인상적이었던 민간인의 병영체험은 저로 하여금 군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보게 하네요.

초절정 평화무드에서의 입대

저는 2002년 6월 20일, 그러니까 6 · 15 공동선언을 발표하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손을 맞잡아 올린 닷새 후에 군인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건국이후 유례없는’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 속에 입대를 했었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보다 먼저 군대를 다녀왔던 분들보다 축복받은 군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 예로, 주적관을 확립하고 정신무장을 시킨다는 교육에도 큰 변화가 와서 햇볕정책을 배우고, 막강한 국방력으로 평화를 지킬 뿐만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만들어갈 필요도 있다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김일성을 때려잡자”는 구호만으로 가득했던 예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내용들이지요.

또한, 저는 휴가를 나와서 집에 가려면 900원을 내고 지하철을 이용하면 되는 곳에서 아주 편하게 군 생활을 했습니다. 남들은 산골짜기에서 칼바람이 불어와 추웠다는 회고를 하곤 하는데, 저는 아파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는 경험 외에는 별다른 고생을 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에 명함을 내밀만한 처지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분단’의 문화와 자살방지서약서의 추억

비록, 날라리 군인이었다 해도 아무 어려움이나 생각 없이 군 생활을 했다면 거짓말이었을 겁니다. 제가 이등병 때, 홀로 목놓아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오늘도 내가 참는다’였던 걸 보면 ‘어둠의 자식’들이 겪는 애환과 어려움은 저에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저는 두 가지 의문과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군대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일상화되어 있는 ‘문화’였고 또, 한 가지는 병사들의 인권에 대한 ‘무관심’이었습니다.

군대는 ‘갈구는’ 사람과 ‘갈굼을 당하는’ 사람, 이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갈굼을 당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갈구는’ 사람들로 재생산됩니다. 그렇게 서로를 싫어하고, 못마땅해하고, 믿지 못하고, 억압하는 문화가 팽배해 있습니다.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우리가 분단 때문에 이렇게 모였는데, 서로를 좀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이해해주고, 잘해주면서 지내면 안 되나’하는 생각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분단은 계속해서 분단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아갔습니다.

제가 있었던 부대에서는 자살방지 서약서라는 것을 작성하게 했습니다. 순진했던 시절, 그저 ‘자살은 나쁜 거라고 가르쳐주나보다’하고 작성했던 그 종이는 매우 교묘한 군대의 책임회피수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살을 하지 않도록 병사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낙후된 환경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누군가 자살을 했을 때, 가족 앞에 그 종이를 흔들며 “자살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해놓고, 약속을 어겼으니 우리에게는 책임 없다”는 변명만을 하려는 그 모습에서 ‘사람’을 도구로 취급하는, ‘인권불감증’에 걸린 군대를 발견했습니다.

추억은 여전히 현실이다

제대할 때까지, 그리고 지금도 군대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런 경험들 속에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2박3일간의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가는 길에 군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자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저의 호기심과 기대를 배신하지 않으려는 듯, 군대는 많은 것들이 변화된 모습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내무실에는 스카이라이프, 화장실에는 비데가 설치되어 우리 집에도 없는 것들을 군대에서 발견했고, 행정반에 길게 줄을 서서 1~2만 원의 월급을 받았던 풍경은 사라지고 대폭 인상된(그 전과 비교했을 때) 월급을 통장에 입금 받은 병사들이 PX에서 카드를 긁어 초코파이를 사먹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눈에 띄었던 것은 ‘기본권 상담실’의 존재였습니다. 지휘관이나 주임원사 사무실 앞에는 ‘기본권 상담실’이라는 현판과 함께, “환영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말씀하세요.”라는 친절한 안내문까지 붙어있었습니다. 육군본부에서 만들어 보급한 병사들의 기본권에 대한 책도 눈에 띄었는데, 우리나라 육군본부에서 세계인권선언으로 시작되는 책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군대의 화려한 변신에도 불구하고 속까지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시민단체들이나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노력에 겉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뼛속의 문화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갈굼’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고 있는 이등병들, 좁은 매트리스 한 장에 곤한 몸 누일 겨를도 없이 장교가 호출할 때마다 밤낮없이 불려나가는 병사들, ‘내 임기 중에 사고만 나지 않으면 된다’는 조바심과 불안감 속에 노심초사하는 직업군인들의 모습에서 추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제 눈에 확인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군대에 가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고,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인권침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말에 세뇌되어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겉모습의 많은 변화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군대의 좋아지는 모습이 ‘화장발’에만 그치지 않고 ‘쌩얼’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를 군대에 보내놓고 날마다 노심초사하는 부모님들이 편안해 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권오재참여연대 사회인권국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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