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2월 2005-12-01   2122

쌀 한 톨에 농부의 땀 일곱 근

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옵니다. 설밑이 가까우니 도시는 북적거리고 들썩이기 시작하는 시간이겠죠. 서울을 떠나 이곳 덕유산자락 산골로 와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저는 도시에서와는 사뭇 다르게 해가 바뀌어 감을 느낍니다. 햇수의 변화보다 자연 속의 생명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면서 싹트고 자라고 열매 맺고 시들어가는 그 오묘한 자연의 진리를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계절의 변화가 초보농부인 저에겐 더욱 실감납니다.

물안개에 싸여 아스라이 보이는 산자락을 마주하며 하루를 열고, 들에 나가 땀 흘려 일을 해치운 뒤 어스름한 밭고랑을 바라보면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처음 짓는 농사인데다 유기농법을 고집하고 있으니 혹시나 농사를 망칠까 내 농사를 자기 일보다 더 안쓰럽게 걱정해 주고 도와주는 포근한 이웃의 인정은 저를 더 없이 행복하게 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가꾸며 살아가는 농부로 사는 것과 국가권력의 경영 대상이 되는 농민으로 사는 차이는 정말 큰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첫 수확을 축하한다며 보낸 친구의 편지에 ‘일미칠근이라 쌀 한 톨에 농부의 땀 일곱 근이 스며있다’는 말이 씌어있었습니다. 여름 들녘에서 흘린 땀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 초보농부라 더디고 게으르지만 내가 그 뙤약볕 아래에서 흘린 땀이 눈을 가릴 정도였는데, 평생 들녘을 땀으로 적셨을 이 땅 농부들의 땀에 대한 대가를 어찌 자본주의의 경제 가치로 가늠하겠습니까.

봄에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나면 여름 뙤약볕 아래 땀을 흘려야 하고 가을이 되면 들녘의 곡식을 거두느라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 할 만큼 바쁘게 지낸 다음 겨울이 찾아옵니다. 풍성한 수확을 하고 풍년가를 부르며 흥에 젖어야 할 농민들은 지금 여의도로 모여 아스팔트 농사가 최고라며 논밭이 아닌 거리에 나서서 자식 같은 전경과 맞서야 하는 무서운 계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부의 농업정책으로 얼마나 많은 농민이 시름에 잠겨 자기 목숨을 버려야 했습니까.

옛말에 우리 몸엔 세끼 밥이 보약이라고, 우리는 밥을 먹고 살아야하는 유전자 코드를 가지고 태어난 민족일진대 우리들의 생명창고인 농촌을 지키며 고단한 삶을 살아온 농부들이 천대받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참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자기 피와 땀으로 지은 곡식을 길거리에 쌓고 쏟고 불태우면서 ‘정말 내년 농사는 딱 우리 먹을 것만 짓고 말아버릴까, 그래서 어찌 되나 보자’ 하며 무서운 독설을 입에 담아보기도 하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또다시 봄이 오면 들녘으로 나가는 농부는 생명을 가꾸고 기르면서 세상을 향한 분노도 ,한탄도 다 자기가 흘린 땀방울에 씻겨 보내고 마나 봅니다.

그 고단한 농사를 묵묵히 견디어온 우리 농부들이 다시는 땅을 일구지 못할 절망 속에 빠지기 전에 정부와 도시민이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농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삶의 가치만큼 대우하려고 했는지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 원 경남 거창 초보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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