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9월 2005-09-01   755

집단제작의 꿈과 정치영화의 교차로

지가 베르토프 집단 특별전

월 초 서울필름 페스티벌과, 이어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68혁명 이후 정치영화의 미학과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회고전이 열린다. ‘장 피에르 고랭 특별전’이 그것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장 피에르 고랭과 장 뤽 고다르가 68혁명 이후 결성한 ‘지가 베르토프 집단’에서 만든 영화들이 상영된다. 이 영화들은 그동안 국내에 소개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영화는 개인적인 작업이 아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감독, 배우, 촬영감독, 제작자 등이 필요하며 또한 돈이 필요하다. 그러하기에 영화는 일치감치 산업화되었고 그 덕분에 대중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에서 영화의 미학성과 예술성을 강조하기 위해 비평가들은 ‘작가’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산업의 테두리 안에서 생산된 영화에 자신의 예술적 표식을 새겨 넣었고, 이는 전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작가의 예술성을 강조하는 ‘작가정책’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고다르와 고랭의 영화는 이러한 ‘작가성’을 비판한다. 68혁명의 결과 상업적인 영화와는 사뭇 다른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영화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와 좌파 행동주의자였던 장 피에르 고랭이 결성한 지가 베르토프 집단은 영화의 ‘작가’를 배격하며 과거 소비에트의 정치영화 감독이었던 지가 베르토프의 이름을 빌어 익명적이고 집단적인 영화작업을 강조한다. 68혁명을 거치면서 개인적인 작업으로는 정치적인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들은 또한 영화에서 개인의 강조가 철저하게 자본주의화된 개인주의의 산물이라 여겼다. 이들의 집단적 꿈은 대중시장을 겨냥한 상업적인 영화보다는 전투적인 소집단을 겨냥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영화 생산의 문제를 배급보다 중요하게 여긴 이들은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가, 누구를 위해 만들 것인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다. 장 피에르 고랭은 지가 베르토프 집단의 영화가 ‘열 사람을 위한 영화였다’라고 술회했다. 열 사람에게 말을 잘 걸 수만 있다면 다음은 백 명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기존의 영화제작 시스템을 거부하고 새로운 영화제작의 조건을 검토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영화는 단지 스크린에 투영되는 영상에 관객들이 몰두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실 영화는 자본, 노동 등 수많은 매개를 필요로 하지만 극장에서 영화와 관객이 맺는 관계는 지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구조화된다. 가령 관객들은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관련해서 영상과 이야기, 배우들에 대해 큰 관심을 갖는다. 반면 관객 대부분은 영화가 어떻게 제도적으로 구성된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영상이 제공하는 이야기의 세계에 빠져들 뿐이다. 고랭과 고다르는 이러한 영화의 제도, 영화의 환상적 형식에 비판을 가한다.

가령 68혁명기에 발생한 공장파업의 이야기를 그린 <만사형통>에서 두 사람은 상업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스타의 기용과 이야기,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일깨운다. 매개성을 들춰내는 이런 노출전략은 영화가 자명한 것이 아님을 관객들에게 일깨우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은 영상을 가능케 하며, 흥행을 통해 돈은 다시 제작자에게 회수된다.

영화에서 돈과 영상은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이것이 바로 영화의 제도적인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고랭과 고다르는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이 이야기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망각하는 영화의 제도와 관습을 노출시키면서 영화와 관객 사이에 현실의 관계를 집어넣는다. 그러면서 이들은 특정한 공간을 창조하는데, 이 공간에서 관객들은 자신들이 영화관 안에 있으며, 돈을 내고 영화를 보고 있다는 물질적 관계를 숙고할 수 있게 된다. 자명해 보이는 것의 해체를 통해 이들은 영화의 정치화를 꾀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다르와 고랭의 집단작업은 이미 30여 년이 지난 과거의 일이며 이들의 실험 또한 1973년에 이르러 해체된다. 이들의 작업은 마치 실패로 끝난 꿈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제기한 질문, 가령 영화가 어디로 가야만 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귀 기울일 만한 것이다. 가령, 두 사람이 지가 베르토프 집단 시절에 만든 대표작의 하나인 <동풍>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있다. 화면에는 두 길로 갈라지는 교차로가 보인다. 이 교차로의 입구에는 당시 제 3영화의 기수였던 브라질 출신의 감독 글라우버 로샤가 앉아 있다. 저 멀리서 촬영기를 든 젊은 여성이 다가오고, 그녀는 그에게 ‘정치영화가 지향할 길이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로샤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의 길은 미학적 모험과 철학적 탐구를 위한 영화의 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무시무시한 영화, 성스럽고 놀라운 영화를 만들어내는 브라질 영화, 즉 제 3 영화의 길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여인은 잠시 주저하다 제 3영화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되돌아와 다시 미학적인 길로 들어선다.

이 장면은 당시 고다르와 고랭이 적극적으로 영화를 해체하는 미학적 실험을 통해 정치영화를 만들어내려 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제 3세계에서 만들어진 ‘제 3영화’들은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영화의 구축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고다르와 고랭은 영화의 구축이 영화의 자본주의적 구조를 고착화시킬 가능성을 안고 있기에 구축보다는 해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구의 영화감독들과 달리 당시 제 3세계 영화인들은 그들의 나라에는 해체할 영화조차 없으며, 그러하기에 영화의 구축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논란은 지금도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 영화가 지금 이런 교차로에 들어선 것은 아닐까? 한국영화는 그간 영화의 산업화와 국민영화의 구축에 큰 힘을 기울여왔다. 그러면서 영화는 점점 스펙터클이 되고 있다. 이제 고다르와 고랭이 그러했던 것처럼 스펙터클의 영화를 해체하려는 미학적, 정치적 노력 또한 필요한 것은 아닐까.

김성욱 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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