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1월 2005-11-01   812

“안전한 삶의 대안을 찾으세요? 생협을 찾으세요.”

중국산 수입 김치에서 발암물질이 나왔다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김치를 직접 담가 먹으려는 소비자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이로 인해 김장 배추가 밭떼기로 예상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리고, 내년 봄에 출하되는 아직 심지도 않은 월동배추 값도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다고 한다.

식품 안전의 버팀목, 생협

값싼 중국산 수입 농수산물의 안전성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농수산물 수입은 갈수록 폭증하고, 아이들 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쓰는 것조차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기업이나 정부가 부가가치 중심의 개발과 성장의 경제논리를 내세워 국민의 건강 따위는 뒷전으로 돌린 것이 사실인 듯하다. 소비자들도 저렴한 가격이나 눈앞의 편리에 현혹되어 수입농산물에 눈을 돌리다가 안전 문제가 불거지면 허겁지겁 대책을 찾는 악순환을 반복해 왔다.

이제 농산물 수입 개방이 전면화하는 시점에서, 정부의 식품·건강·농업 정책에 기대를 걸기 어렵다면(정부가 정신을 차린다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전적으로 의지해서는 안 될 일이다.) 밥상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만든 것이 생활협동조합이다. 생산자 농민과 도시 생활인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안전한 농산물과 그 가공품들을 생산·유통·소비하는 조직이다. 1980년대 후반 등장하여 꾸준히 성장해온 생협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 식품 안전의 보루였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실제로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산물과 그것을 원료로 해 인체에 위험한 첨가물을 넣지 않고 생산한 가공품을 공급하기 때문에 생협의 물품은 믿을 수 있다. 아직 기술 부족으로 인해 유기농업으로 전환이 어려운 일부 품목에 대해서도 농약 치는 횟수나 범위를 정해 생산자와 약속한다. 이런 믿음 때문에 아토피, 천식, 비염 등 최근 창궐하는 면역결핍 질환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의 부모들도 생협을 찾는 것이리라.

밥상에서 시작해 공동체 회복으로까지

생협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는 식품 안전을 지키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생협은 대량생산의 풍요가 가져온 낭비적 소비의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건강한 삶의 방향으로 소박한 지역공동체적 삶을 제시하고 있다. 그 연장선장에서 정부가 고부가가치의 핸드폰을 팔기 위해 포기해 버린 농업을 지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생태적 삶의 뿌리로서 인간이 자연과 만나는 접점인 농업은 농산물의 생산뿐만 아니라 홍수 조절, 지하수 담보, 토양 유실 방지, 대기 정화 등 국토의 생태환경 보전을 위해서도, 세계 석학들이 21세기 첫 번째 안보 요인으로 꼽는 안정적인 식량 조달을 위해서도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생협은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자치 민주주의의 기반인 유기소농을 지향하면서 사회적인 대안으로 제시해 왔던 것이다.

또한 생협은 신뢰의 사회적 토대, 그리고 도농공동체, 지역공동체라는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우리가 시장이나 행정기관에 위탁하고 있는 의식주, 교육, 의료 등 구체적인 삶의 영역을 자율적 참여와 협동을 통해 스스로 일궈나감으로써 새로운 대안시장을 창출하고 더 나아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훈련하는 터전이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 시민사회에서 중요한 의제를 제기하고 의사를 결집하는 데 있어 생협을 통해 성장한 조합원들의 참여가 두드러지면서 생협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대안으로까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생협의 위기, 시민사회의 위기

그런 생협이 최근 전면적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본의 공세이다. 식품 안전과 건강을 열망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와 최근 불어닥친 웰빙 바람이 맞물리면서 유사 매장들이 난립하고, 대형할인매장과 대기업들이 유기농산물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생협도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 경제 불황까지 겹쳐 매출 증가세가 급속히 떨어지고, 그 여파로 생산자와 계약재배를 통해 생산된 물품의 적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생협의 맏형 격인 한살림을 예로 들면, 2005년 쌀 한 가지 품목만 해도 1만 가마 이상 남아돌 것으로 예상된다.

유사매장이나 대형 할인마트 등 유기농산물 시장의 확대가 당장의 식품 안전성을 보장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생협처럼 계약재배를 통해 생산자들에게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생산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이들 자본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생산자들 위에서 군림하거나 값싼 수입 유기농산물이나 유기식품을 수입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수익은 지역 밖으로 유출되어 지역의 자산으로 순환될 수 없게 되고,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생협의 위기가 가져올 가장 두려운 사태는 무엇보다도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신뢰가 무너짐으로써 시민사회의 한 축을 이루는 도농공동체, 지역공동체의 기반이 흔들리고, 몰락 일보 직전에 처한 농업의 마지막 비상구마저 막혀버릴 것이라는 점이다.

시민사회의 힘으로 위기 돌파를

대량생산이 어렵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일반농산물보다 가격이 비싸고, 눈으로 물품을 직접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예약하는 등 구매방식이 불편하며, 자연환경과 기후 변화로 인한 예측의 어려움 때문에 결품이 잦고, 또한 그 결손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이 떠안아야 하는 등 생협에 약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신뢰와 공동체적 기반은 다소의 불편에도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함께 나누는 모습에서 지켜지고 자라날 것이다. 지금은 시민사회가 함께 나서서 우리 사회 공동의 자산인 생협을 살려놓아야 한다. 물론 생협 스스로도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운동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근본을 지키고 공생과 협동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일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생협에 참여해 물품을 주문하고 유기농산물을 구입하는 일은 바로 우리 농업을 지키는 일이며,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만드는 일이며, 시민사회를 튼튼하게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안전한 삶의 대안이 여기 있습니다. 건강한 시민사회를 이루는 터전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삶을 실천하는 생협운동을 함께 합시다.”

윤형근 모심과살림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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