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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10월
  • 2005.10.01
  • 1017
아우슈비츠의 비극과 관련해서 수용소의 공포를 체험했던 유태계 미국 작가 엘리 위젤은 ‘말에 의해서 소통될 수 있는 진실이 있다. 그리고 침묵에 의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더 깊은 진실이 있다. 그러나 다른 수준에서 보자면 침묵에 의해서도 표현할 수 없는 더 깊은 진실 또한 있다’라고 말했다. 대량학살의 절대적인 특이성을 지적하는 말이다. 역사의 비극은 그것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이 그 끔찍한 공포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 즉 표현의 불가능성에 직면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그 비극의 진실을 어떻게든 현재에 전달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일종의 딜레마가 만들어진다. 역사를 형상화하는 영화 또한 이러한 딜레마와 종종 직면한다. 가령, 영화는 역사를 이야기로 만들어내면서 그동안 표현의 기회를 찾지 못했던 비극을 극화한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룬 <웰컴 투 동막골>의 경우가 이와 같다. 문제는 표현의 형식이다. 과연 비극의 형상화가 정당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인가?

<웰컴 투 동막골>은 기록적인 관객 동원을 이뤄내며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 또한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일부 평자들은 이 영화가 한국전쟁의 비극을 판타지로 묘사한다는 점을 들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다. 전쟁의 비극에서 웃음을 얻어내거나 그것에 낭만적 환상을 부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영화의 ‘모럴’과 관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정당성과 관련한 논란에서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이 영화가 추구하는 전략이 과연 적절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가이다. 가령, 코미디는 비극을 적절하게 형상화할 수 있을 것인가?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지만 그것을 다루는 언어와 표현의 형식에서 무언가 이전의 영화들과 차이를 보인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성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동화 같은 이야기의 전제는 눈물과 공포가 아니라 차라리 통렬한 코미디이다.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코미디로 만들어낸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이 영화는 웃음을 통해 전쟁의 광기를 표현한다. 코미디의 형식은 죽음을 부정하거나 전쟁의 공포를 지워버리며 판타지를 구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죽음 가운데 삶을 재건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부각시킨다. 전쟁의 위험은 영화의 배경에 상존하지만 이는 매번 삶을 위협하고, 순수성을 훼손하는 이해할 수 없는 광기와도 같은 것으로 표현된다. 가령, 이 영화에서 동막골에 모여든 미군, 북한군, 남한군은 모두 죽음의 위협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순수한 동막골 주민들과 만나면서 일시적이지만 죽음이 아닌 삶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코미디는 비극과 달리 사회의 힘을 확언하는 장르에 가깝다. 비극이 사회에 저항하는 개인의 실패와 고통을 표현한다면 코미디는 종국적으로는 사회의 규율에 순응하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블랙 코미디는 장르가 지닌 전복적인 힘, 즉 사회적 관계의 근저에 잠복한 광기와 비이성의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찰리 채플린의 <독재자>와 에른스트 루비치의 <죽느냐 사느냐>와 같은 히틀러에 대한 풍자 영화가 보여주듯 코미디는 비극보다 오히려 파시즘의 광기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웰컴 투 동막골>의 웃음은 그런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

<동막골>의 동화적 세계는 분명 판타지에 가깝다. 판타지는 사실 거짓 세계이자 거짓을 통해서만 지탱될 수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남북한, 그리고 미군 병사가 동막골을 구하기 위해 연합군을 구성하는 것 또한 거짓 상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런 거짓을 통해 마을이 구제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들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거짓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들은 동막골에 대한 미군의 폭격을 막기 위해 다른 곳에 가짜 마을을 구축한다), 이를 통해 동막골을 구해내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순수성을 지켜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은 시대의 광기와 비인간적인 전쟁에서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웰컴 투 동막골>이 묘사하는 세계는 분명 거대한 환영의 세계이다. 북한군과 남한군이 총으로 대치하는 순간 우연히 터진 수류탄이 옥수수를 팝콘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은 영화가 제공하는 달콤한 환영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물론 불가능한 상상에 가깝다. 하지만 팝콘은 스크린 위에서가 아니라 그 반대편인 객석에서 오히려 달콤한 향내를 풍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나비에 이끌려 동막골을 찾아들듯 영화를 보는 관객들 또한 영화라는 거대한 환영의 세계로 꿈을 꾸듯 빠져 들어가기 때문이다. 환영은 여기서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순수성과 사랑, 존경과 용기 같은 인물들의 능력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김성욱 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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