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2005년 10월
  • 2005.10.01
  • 991
전남 무안 김현정 회원
전남 무안군 현경면의 바닷가 마을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는 김현정 회원(41세)을 만났다. 그를 찾아간 날은 우리나라가 태풍의 간접적인 영향권 안에 들어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거셌다. 비바람을 뚫고 차를 몰아 무안으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그렇지만 궂은 날씨 탓에 고구마를 수확하던 일손을 잠시 놓고 있던 그와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예로부터 무안지역은 토질이 좋아 농산물의 품질이 뛰어났다고 한다. 일제가 호남선 철도를 만든 것도 호남 일대의 농산물을 편리하게 퍼 나르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무안에서 양파와 마늘 다음으로 많이 하는 작물이 고구마다.

고구마 농사에 건 부부의 희망

그의 고구마 농사는 올해로 6년째다. 중 2때 떠난 고향 무안에 다시 내려와 농사를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로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다. 귀농은 농사라는 새로운 직업의 선택만을 의미하진 않았다. 사기를 당해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를 받은 김 씨 가족의 새로운 도전이자 희망이었다.

“남편은 사기를 당하고 밥도 못 먹고 한숨만 쉬었어요. 이러다 폐인 되겠다고 걱정하던 중에 오빠의 제안을 받았지요. 무안에 내려가 농사짓자고 하니까 남편이 기운을 차리더라고요. 이게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싶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은 건 남편만이 아니다. 김 씨 역시 오랜 도시 생활과 번민에 지쳐있는 터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잠시 사회활동을 했는데, 그때 스스로에 대한 좌절감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다 도망치듯 결혼을 했어요. 하지만 결혼으로 그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었어요. 고민과 방황은 이어졌지요. 집에 거의 틀어박혀있다시피 생활하던 제게 삶의 의욕을 다시 불러일으킨 것이 바로 유기농업이었어요. 내가 지금껏 인생을 성실하게 살지 않았다는 반성도 하게 되었고요.”

부부 모두에게 삶의 활기를 불어넣은 고구마 농사. 여기에 오기까지는 20년 전부터 농사를 지어온 큰오빠의 영향이 컸다. 그는 국내 처음으로 고구마로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민이다. 그때만 해도 유기농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을 때인데, 채식주의자인 그는 먹는 것에 독한 약을 치는 일에 회의를 느껴 유기농을 시작했다고 한다. 김 씨 부부는 1년 동안 오빠 밭에서 일을 배워 독립했다. 지금은 1만6,000평에 고구마와 양파 등을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하는 어엿한 농사꾼이 되었다. 김 씨 부부도 고구마와 양파에 대한 유기농 인증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고구마는 4월부터 10월까지 거의 1년을 매달려야 하는 농사다. 유기농은 돌려짓기 방식으로 해야 하지만 땅을 빌려 농사짓는 처지에 그러지 못하니 대신 겨울에 땅을 쉬게 해야 한다. 약을 안 치니 제초 작업도 만만치 않을 터, 쉽지 않은 유기농으로 먹고 살만큼 벌 수는 있을까.

“먹고살긴 하죠. 농사란 게 워낙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많은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죠. 화학농약은 아니어도 목초액 등 유기농 약을 치는 것부터 파종할 때와 수확할 때는 여럿이 힘을 모아야 돼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 일 시키기도 쉽지 않아요. 무안은 농사인력시장이 서는 국내의 몇 안 되는 곳인데 갈수록 품삯이 오르고 있어요. 인건비 쓰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사람 손은 많이 필요하고 수확량은 보장되지 않는 것이 유기농의 어려움이다.

“고구마 수확량은 1마지기(200평)에 100상자 정도로 보면 돼요. 우리가 80마지기 농사를 짓죠. 하지만 그것이 전부 상품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잘 되면 2/3, 병충해가 심하면 반 정도밖에 팔 수 없거든요. 게다가 생산한 작물을 안정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으니 힘들죠. 저희도 수확량의 20%인 1,000상자 정도만 유통업체에 넘기고 있고 50% 는 전자우편, 전화 등을 이용해 개인적으로 팔고 있어요.”

유기농에 대한 소비자의 낮은 인식도 또 하나의 어려움이다.

“근래 많이 좋아졌다지만 아직도 유기농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족한 거 같아요. 유기농을 하다 보면 벌레도 먹고 모양도 별로 안 예쁜데 소비자들은 유기농이면서 모양도 예쁜 것을 선호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힘들죠.”

의욕에 넘쳐 시작한 농사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농사 6년 만에 불어난 빚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답을 찾고 있었다. 작물의 종류를 다양하게 해 인건비를 낮추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고구마 한 가지만 재배하면 인력이 필요한 시기가 집중되잖아요. 이 문제를 막기 위해 수확 시기가 다른 채소를 늘려가고 있어요. 배추는 고구마 수확이 끝난 뒤에 거두면 되니까 일을 배분해서 할 수 있어요. 작년에 시작한 배추는 반응이 좋아서 내년엔 더 늘릴 계획입니다.”

어려운 여건인데도 유기농업에 거는 그의 기대는 여전했다.

“힘들기는 하지만 약을 안 쓰면 맛 좋고 건강에도 좋으니까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어요. 소문도 나고 있고요. 점점 좋아질 거라고 기대해요. 앞으로는 유기농산물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 거예요. 유기농산물이 소비자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꿋꿋이 버텨 보아야죠. 그 동안이 힘든 거니까 잘 이겨내야죠.”

고구마에 담아 보내는 격려

그가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가을이었다. 아는 사람이 하는 치과에 들렀다가 『참여사회』를 발견했다.

“그전에도 관심은 많이 있었지요. 그러다 『참여사회』를 보곤 마음을 굳혔죠. 작더라도 바람직한 일에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사랑의 도시락 기금도 후원하고 싶은데 은행 잔고가 따라주지 않아 못하고 있어요.”

그는 3년 전부터 해마다 참여연대 사무실로 고구마를 보내주고 있다. 나도 쌀쌀한 날 누가 보냈는지 모른 채 동료들과 고구마를 나눠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고구마를 보내 준 사람이 바로 김현정 씨였던 것이다.

“농사꾼 중에도 당신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어요.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잠깐이라도 쉬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힘을 실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삶에 지친 그들 부부에게 고구마가 새로운 희망이 된 것처럼 고구마는 그의 마음을 참여연대에 전해주는 전령사인 셈이다. 고구마를 즐겁고 맛있게 나눠 먹었다는 말에 그는 올해는 더 많이 보내주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글·사진 정지인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참여와 행동에 동참해주세요
참여연대 회원가입·후원하기
목록
닫기
닫기
© k2s0o1d4e0s2i1g5n. Some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