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0월 2005-10-01   1032

관동대지진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방에 진도 7.9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이 지진으로 10만 명이 숨지고, 4만3,000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46만5,000 채의 가옥이 파괴되거나 불타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건물 붕괴보다 화재로 인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본 육군과 경찰은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방화, 독극물 투입, 강도, 강간 등을 저질렀다는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퍼뜨린 다음 계엄령을 선포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자국민에게 식민지 민족 차별 감정을 조장함으로써 자연재해를 수습하려는 음모를 꾸민 것이다.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학살했다.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은 최소 6,000명에서 최대 2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로부터 겨우 두 해 뒤인 1925년 여름 조선에는 네 차례의 대홍수가 일어나 647명이 죽고, 2만3,000 채의 가옥이 유실되거나 무너지는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폭동이 일어나거나 살인, 강도, 강간, 약탈 같은 인재(人災)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다. 폰차트레인 호수의 둑이 무너지면서 저습한 삼각주에 위치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고, 미처 대피하지 못한 1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부시행정부의 무관심과 늑장 대처로 구호활동이 늦어지면서 갖가지 범죄가 들끓어 도시 전체가 무법천지로 변했다. 경찰과 방위군은 약탈을 막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실종자와 이재민 수색·구조 작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한 해 전인 2004년 4월 북한 용천에서 큰 폭발 사고가 일어나 150여 명이 숨졌고, 이해 12월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쓰나미로 2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러나 가난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부시대통령이 ‘깡패 국가’라고 지목했던 북한에서는 어떠한 폭동이나 약탈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뉴올리언스의 자연재해와 폭동에 대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다. 2004년 2월 22일, 영국의 『옵서버』지는 「미 국방부 비밀보고서」란 것을 입수해 단독 보도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고문인 앤드류 마셜이 작성한 이 비밀보고서에는 기후 변화 등 자연재해로 각국이 식량과 물,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핵무장에 나서게 되면서 전 세계가 전쟁과 큰 가뭄, 기근, 폭동 등으로 무정부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게다가 방재 전문가들과 정부당국자들은 대형 허리케인이 뉴올리언스를 강타할 가능성을 예견하고, 대비훈련까지 거쳤다고 한다. 그런데도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에서 전쟁을 일으켜 빈곤층 복지예산을 큰 폭으로 감축하고, 뉴올리언스 지역의 홍수기금을 44%나 감축했다. 또한 남부지역 주방위군을 상당수 이라크로 파병하여 재해 예방과 복구에 구멍이 뚫리도록 방치했다. 과연 부시대통령과 미국은 이번 카트리나 재앙을 통하여 힘과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인간의 오만과, 인종차별과 빈부격차를 조장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준엄하게 꾸짖는 자연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박상표 참여연대 회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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