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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10월
  • 2005.10.01
  • 674
추석을 며칠 앞두고 초등학교 4학년인 큰 아이가 운동회를 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한 학년에 반도 한 반씩인 자그마한 학교다. 운동회 준비에 아이들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리고 꺼칠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연습하느라 힘들어죽겠다는 아이들의 푸념을 듣고 있으면 손님 대접을 위해 애쓰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안쓰러워진다. 뭔가 안 보여주어도 좋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한바탕 뛰고 노는 운동회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운동회 날, 하늘은 가을답게 높고 푸르렀으며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바람에 나부꼈고 확성기를 타고 흘러나오는 동요는 어른들을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갔다. 장애물 경주, 과자 따먹기, 퀴즈, 줄다리기 따위의 경기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학생 수가 많지 않다 보니 운동장에 나가 뛰고 달리는 사람과 응원하는 사람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 사물놀이, 부채춤을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는 구경꾼들을 불러들였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청백 계주와 쓰레기 줍기를 끝으로 운동회는 순조롭게 막을 내렸다.

아이는 전학 오기 전 1학년 때 한 번 운동회를 해보았는데 퍽 안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청군과 백군으로 갈라 앉아 흥도 안 나는 억지 응원을 계속 하는데 그만 질려버린 것이다. 아이는 점심을 기화로 운동회를 무단 이탈하더니 운동회가 끝날 때까지 제 동생하고 운동장 구석에서 놀았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김포공항 가까이에 있어서 학생들은 국가원수나 국빈의 행차 때 ‘연도의 환영인파’로 자주 불려나가곤 했다. 차가 지나가는 순식간을 위해 땡볕에 몇 시간을 서서 대기하던 동안 마음 속에 소용돌이쳤던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라 자리로 돌아가라고 아이를 다그치지 못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자리를 벗어났다고 흘겨보는 선생님도, 응원 안 한다고 혼내는 상급생도 없어서 아이는 운동회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시골에서는 소풍이나 운동회, 학예회가 지역사회의 비중 있는 행사였지만 예전 같은 분위기는 이미 아니다. 이번 운동회에도 삼대가 출동한 다복한 가족이 더러 눈에 띄었지만 운동장이 썰렁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우선 농촌이라 해도 아버지들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일하는 엄마들이 늘어나면서 운동장에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 많았고, 눈도장만 찍고는 일터로 종종걸음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운동회가 토요일에 열렸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학부모들이 함께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운동회 프로그램 중에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공을 차는 순서가 있었다. 남편은 휴가를 내서라도 참가하겠다고 별렀지만 결국은 언제나처럼 참석하지 못했다. 아이는 실망도 했으련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전에 육아휴직을 했을 정도로 아빠 노릇을 잘 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지만 마음뿐이다. 바쁜 직장 탓에 학부모 총회, 공개수업, 학예회 등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이 나라의 큰 걱정거리가 되었다. 그렇지만 낳으라고 장려만 하면 끝인가. 부모 노릇하도록 해주어야 할 것 아닌가. 맞벌이 가정의 경우 아이의 학교 뒷바라지를 거의 엄마들이 도맡게 된다. 엄마 노릇을 잘 해내면서 직장에서도 인정받으려면 슈퍼우먼이 되어도 부족한 현실을 다 알아버린 여성들이 어떻게 감히 아이를 낳겠다고 덤비겠는가.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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