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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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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12월
  • 2004.12.01
  • 970
방송인 김미화 씨
김미화. 그는 참 예쁘다. 내가 그를 처음 대면한 곳은 한 조찬모임에서였다. 순악질 여사의 검은 일자 눈썹으로만 그를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 화장기 없는 그의 얼굴은 약간 과장되게 말해서 ‘충격’이었다. 그 다음부터 난 TV 브라운관을 통해 ‘약간 덜 예쁘게’(?) 비쳐지는 그의 외모가 마치 내일인 양 안타깝게 여겨져, 만나는 사람마다 그가 예쁘다고, 그의 마음씨보다 훨씬 예쁘다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인터뷰 하는 그 날도 그는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로, 평소 그가 예쁘다고 믿어온 내 ‘신념’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자기 얼굴이 예쁘다며 호들갑 떠는 내게 그는 조금도 민망해 하지 않고, 다소 분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예뻤다

“실물이 좀 낫지요. (웃음). 코미디 하다 보면 서민적으로 보이려고 인상도 더 찡그리고 입도 크게 벌리고 그러거든요. 요새 왜 예뻐 보이냐면, 항상 웃어야 되는 MC를 많이 하기 때문인 거 같아요. 20대 때 이미 40대 아줌마 역할을 했는데, 정작 40대가 되니까 오히려 30대처럼 보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그는 무작정 코미디가 좋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복 입은 채로 오디션을 찾아다녔다. 빨리 개그맨이 되고 싶었고, 성공하고픈 마음에 대학은 관심 밖이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왜 뒤늦게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된 것일까?

“어린시절 아버지는 아파서 누워 계셨고, 엄마는 보따리 장사하러 나가시곤 했는데, 그 때마다 동네 분들이 참 따뜻하게 대해 주셨거든요. 나중에 크면 어려운 분들에게 봉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의 약속이었지만 지키고 싶더라고요. 어렸지만 참 기특한 생각이었던 거 같아요. 코미디언 되고 성공했을 때 자꾸 그런 쪽으로 마음을 쏟으니까 연결고리가 생기고, 점점 더 관심도 많아지고 전공까지 하게 된 거지요.”

처음 사회복지시설 후원을 시작한 게 쓰리랑 부부 시절 ‘사랑의 삼각끈 운동’(무의탁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을 한 가족으로 묶어 주는 운동)부터라고 알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하고 계신가요?

“그럼요. 그 때 한 300쌍 정도 맺어진 거 같은데, 나중에 보니 저만 계속하고 있더라고요. 가끔 집에도 초청하고 그래요. 지난주에도 함께 식사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 여섯 살이었던 아이가 벌써 고등학생이 됐어요. 우리 아이들도 ‘혜미 언니’ 하면 다 알아요.”

“끈끈한 유대감이 사회운동의 끈이 되죠”

그는 녹색연합, 여성재단 등 공익단체 홍보대사를 가장 많이 맡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또한 뚜렷한 타이틀 없이도 이라크파병반대, 호주제 폐지 등 만만치 않은 이슈의 집회장에 가장 빈번히 얼굴을 내민 사람일 것이다. 참여연대도 북한어린이돕기모금 캠페인을 비롯해서 수차례 그의 이름을 상품으로 내걸었던 전력이 있다.

부담스럽지는 않으신가요? 사회복지쪽 자선모금활동 등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활동 외에도 파병이나 SOFA개정 등 좀 ‘센’ 이슈에도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계시잖아요.

“고운 시선만 있는 건 아니지요. 솔직히 가만히만 있으면 인기가 올라가는데, 그렇지 못해서 괜한 말을 듣는 경우들도 있어요. 정치하려고 한다는 오해도 받고요. 창작예술인들과 달리 저 같은 대중예술인들은 대중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세요?

“제 본심을 모르는 사람 이해시키려고 해봤자 별 소용도 없고…. 그냥 절 믿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항상 생각하며 버텨요.”

시민단체에서 문화예술인(난 김미화씨의 사회활동을 알고부터 가능하면 연예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다.)들을 많이 결합시키려고 노력하는데,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사회복지 공부를 해보니까 연예인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더군요. 예를 들어 바자회 같은 경우도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죠. 결국엔 나도 이 방법으로 호출당한 거네 하고 생각하다가 한참을 웃었던 적이 있어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연예인들과 한 번 맺은 인연을 지속하는 게 돈보다 더 귀하다는 걸 시민단체들이 잘 모르는 거 같아요. 행사 후 안부메일, 엽서 한 장에 얼마나 감동하는 줄 모르시죠? 단체 이름 대며 무조건 와달라는 건 안 통하거든요. 심심할 때 안부전화 하고, 꾸준히 이메일도 보내고, 그러면서 의무감 같은 걸 부여하면 끈끈한 유대감이 생기면서 지속적으로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세상을 향해 도전하다

그는 현재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중 청취율 1위, 전체 프로그램 청취율 3위. 1, 2위는 모두 오락프로그램이다. 이쯤 되면 매우 성공적으로 안착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데뷔는 그로서도 큰 도전이었다고 한다.

제가 처음 라디오를 들었을 때는 다소 안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퍽이나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진행하시던데요. 방송 결과도 참 좋고요.

“사람들이 편하대요. 그 시간대에 시사 방송에 주파수를 맞추고 다니는 것은 희한한 일이래요. 솔직히 걱정했거든요. 코미디언이 한다니까 반짝 기대를 갖다가 곧 실망할까 봐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멋있게 완성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사실을 공개한 것 때문에, 방송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싶어 무척 마음에 쓰였어요.(대중들에게 환한 웃음을 선사했던 그녀가 정작 18년 동안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사회에 알리고 이혼소송을 낸 것은 팬들은 물론 그 자신에게도 큰 충격이자 상처였을 것이다.) 다행히 청취자들이 크게 개의치 않으셔서 너무 감사해요.”

한 국회의원은 편파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공개적인 지적을 하기도 했잖아요. 사회적 반향이 크다는 말인데, 어떤 마음으로 진행하시나요?

“제가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모니터를 많이 하는데요. 전문가들은 모두 해결책을 갖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저는 그 주제를 잘 모르기도 하지만, 그냥 심플하게 물어보거든요. 오히려 오픈 마인드로 진행을 한다는 느낌을 더 많이 줘서 어려운 내용에 편안하게 접근하게 해 주지요. 그런데 진행하면서 느끼게 된 점은 본질을 왜곡하고 흑 아니면 백으로 나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 사람들 중엔 의외로 젊은 사람들도 꽤 많고요.”

나는 언젠가부터 그의 이름 하나만을 타이틀로 내 건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공인으로서 그의 22년 삶에 신뢰를 보내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다고 여기는 건 나만의 생각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을 웃기는 코미디언에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는 나눔의 전도사로, 당당하게 우리 사회의 부당함에 맞서는 실천가로, 세상과 만나는 지평을 조금씩 넓혀온 그가 그만의 프리즘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는 누구나 하지 않을까 싶다.

“저도 시민들의 사고나 인식을 변화시키는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하지만 저 김미화에 대한 신뢰가 더 많이 쌓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일을 방송을 통해 해 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겠죠.”

내 바람은 ‘웃기다 자빠지는 것’

언젠가 ‘웃음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하신 이야기도 들었는데, 앞으로 정말 해 보고 싶으신 건 뭔가요?

“구체적인 계획보다, 지금은 한걸음씩 열심히 돕고 참여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이런 생각은 있어요. 제가 나중에 재산이 남아 있다면 죽을 때 사회에 기부하고 죽고 싶어요. ‘김미화, 웃기다 자빠졌다’는 말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대학까지 공부시키면 아이들이 알아서 벌고 자립해야 한다고 보고요. 외국 갔을 때 기억에 남는 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본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학교에 스티븐 스필버그관을 지어준 거예요. 영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거죠. 열심히 벌어서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남을 위해서 살고, 또 그 후세들이 남을 돕게 되는, 이런 게 전염병처럼 퍼져갈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참여연대 회원이시잖아요. 회원들에게 따뜻한 송년인사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지난 ‘시민의 날’ 행사에 가서 보니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행사를 치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이렇게 회원 한 분 한 분의 정성이 참여연대를 이만큼 성장하게 만든 요인이라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됐고요. 10년 힘차게 달려왔고, 앞으로 더 성장해야 할 참여연대를 위해 다시 한번 회원여러분의 힘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한 사람 더!’ (웃음). 회원배가운동으로 꾸준히 회비도 후원해 주시면 더 좋겠죠?”

나는 그에게 인간, 그 중에서도 가난한 이들만을 앵글에 담아 왔던 최민식의 사진집을 선물했다. 그가 틈 날 때마다 책을 가까이 한다는 소문을 들어서기도 했지만, 왠지 최민식이 사진을 통해 드러내는 “사랑이 어둠을 역전시킨다”는 메시지에 그녀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때로 “정의를 불한당처럼 여기기”도 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좀처럼 열리지 않는” 문 투성이지만, “타인에게 조건 없이 내미는 손길이 지렛대처럼 고정불변의 삶을 조금씩 양지쪽으로 옮겨주기”도 하고 “서로의 젖은 눈을 더듬으며 꿈꾸는 세계로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음을 확인해 주는 사람이 그라는 확신 때문이다.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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