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2월 2004-12-01   1429

이 가을에 아들과 하고싶은 것

아파트 문을 밀치는 인기척을 듣곤 얼른 현관으로 나가 아들을 맞이한다. 가을 햇빛에 그을려 불그스레 빛나는 얼굴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아들은 아빠의 손길을 마주하고 이내 거실의 소파에 미끄러지듯 누워버린다. 한 숨을 돌린 아들은 학교 중간고사를 보고 왔다며 머리도 기운이 없다고 하며 시험 이야기를 꺼낸다. 2주 전부터 짬짬이 시험을 대비해 공부하던 아들. 그 중 사회과목이 어렵다며 아빠에게 도움을 청했었다. 시민단체의 역할, 인권, 민주주의 원칙, 국민의 정치참여 등 결코 쉽지 않은 문제들을 사회책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함께 토론하며 지도해준 적이 있었다.

오늘 치른 국어·수학·과학·사회 과목시험 중 다른 아이들이 많이 어려워했던 사회과목이 가장 쉬웠다고 자랑하는 아들, 못내 놓친 수학의 몇 문제를 아쉬워하는 아들이 대견하다.

시험 치르고 난 아들을 격려 차 컴퓨터 게임 30분을 허락하였더니 아들의 얼굴엔 피로했던 표정이 사라지고 기운과 활력이 넘친다.

30분간 정신없이 자판을 두드리던 아들은 수학학원에 간다며 현관을 나선다. 시험에 틀린 수학문제를 학원 선생님과 풀어 보겠다며 가방을 둘러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시험이 끝났는데도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들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아이들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까. 시험 마친 김에 아들딸과 함께 인근 공원에 가서 가을을 느끼며 가슴에 가을을 새겨주고 싶었는데…. 함께 할 수 없는 아빠의 가슴이 무겁다.

딸과 함께 찾은 공원은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수목들은 겨울이 다가옴을 알아차리고 바삐 옷을 갈아입는다. 진노랑 은행잎은 바닥까지 노란 물결로 물들이고, 나무 끝부터 물들기 시작한 단풍잎의 진홍색 붉은 물결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노랗고 붉은 단풍은 하늘을 떠받치고 파도가 일으킨 흰 물거품 같은 구름이 파란 하늘바다를 헤엄친다. 공원 놀이터에서 아장아장 거니는 아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미소 머금은 눈길이 공원을 더욱 훈훈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아들아, 오는 주말엔 온 가족이 가을을 함께 나누자. 시험, 학원, 체육관, 숙제 등 아들을 옥죄고 있는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늦은 가을을 가슴속에 담으러 가보자. 가을이 지난 후에도 아들의 영혼을 가을의 붉은빛으로 물들여 주고 싶다.

김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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