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1월 2004-11-01   1240

제주를 시원하게 만드는 환풍기 아줌마

제주 강은희 회원


제주에도 참여연대 회원이 있다. 제주회원을 만나는 것이 교통비도 꽤 많이 들고, 시간도 만만치 않아 기약 없이 미루던 차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매년 개최하는 시민활동가대회가 제주에서 열리는 것이다. 덕분에 제주회원을 인터뷰한다는 ‘거대한 사명’을 명분으로 참여연대 간사들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제주행 티켓을 손에 쥐었다.

그렇게 날아온 제주였다. 청명한 하늘과 아스라한 한라산, 붐비지 않는 도로와 넓게 펼쳐진 목장은 도시 먼지에 찌든 숨통을 터 주었다. 도착 이튿날, 10개월 된 막내딸 해리를 안은 강은희 회원이 여동생을 운전기사로 대동해 한라산 중턱에 자리잡은 필자의 숙소까지 찾아왔다. 찾아갈 사람은 기다리고, 기다릴 사람이 찾아오는, 참 ‘건방진’ 인터뷰였다.

“자기 삶을 책임 있게 가꾸는 게 아이들 교육의 기본”

자신을 대신해 세상을 바꿔 가는 참여연대에 힘을 보태고 싶어 회원가입을 했다는 강은희 씨는 50여 명 남짓한 참여연대 제주회원 중 5년 넘게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어 온 고참 회원이다. 그는 참여연대 외에도 노숙자 공동체를 10년 넘게 후원하고 있었다.

“경북 고령에 있는 ‘들꽃마을’은 신부님 한 분이 노숙자들과 가족을 꾸려 생활하는 공동체예요. 10여 년 전 직장을 다닐 때였는데, 휴가를 내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인연이 닿았어요. 3번째 방문할 때는 아예 짐 싸서 공동체 ‘가족’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집안 반대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들꽃마을’에 때마다 조금씩 후원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요. 좀더 많은 걸 돕고 싶은데 여건이 마음 같지 않네요.”

한때는 결혼도 마다하고 수도생활에 뜻을 품었던 그가 지금은 한 가정의 엄마가 되어 살고 있다. 딸만 넷이다.

“인연이란 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수도생활도, 아이를 넷이나 낫게 된 것도 그렇고 세상이 다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동네에선 아들 낳으려다 이렇게 된 불쌍한 아줌마로 찍혔어요, 하하. 하지만 전 아이를 많이 키우는 것이 사회에 봉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출산율이 낮아 사회문제가 되는 판에 반듯한 생각 가진 애들을 잘 키워내는 것만으로도 애국하는 거죠. 안 그래요?”

자녀가 많다보니 아이들 하나하나를 일일이 챙기진 못하지만, 그래도 꼭 빼놓지 않는 것이 있다. 학원공부는 되도록 안 시키는 대신, 요가와 서예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지식 하나 더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 마음이 좀더 풍요롭길 바라는 것이라지만, 독특했다. 혹 자녀교육에 대한 그만의 철학이라도 있는지 궁금해졌다.

“특별한 건 없어요. 다만 아이를 키우면서 제가 각별히 신경쓰는 건 제 생활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거예요. 여자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자녀에게만 쏟아 부었다가, 나중엔 삶이 공허해져서 우울증 걸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이를 위해서도 엄마인 제가 바로 서는 게 도움이 된다고 봐요. 그래서 제 삶을 가꾸려고 애써요. 낮에 애들 키우고, 밤엔 아이들과 같이 서예와 요가를 하는 것도 그래서예요. 생활인으로서의 나의 존재가 바로 서야 애들한테도 얘기가 통하죠. 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하는 말은 힘도 없고, 아이들에게 먹히지도 않는답니다. 엄마가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아이를 키우면, 혼을 내도 아이들은 엄마를 이해해줘요. 저희 동네 아이들도 저한테 꽉 잡혔어요. 처음엔 천방지축이더니 혼내야 할 땐 엄히 혼내고, 다독일 땐 다독여주면서 확실히 하니까 아이들이 혼란해 하지 않고 잘 따르더라고요. 지금은 자기엄마보다 더 친근하게 말을 걸어와요. 나한테 칭찬 받기 원하는 게 느껴져요.”

아이들 키우기 바쁘다지만, 할 일을 다 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한 아동도서 전문업체에서 판매 일을 하고 있다. 책읽기를 좋아해 이 일을 택했다는 그는 최근 석달 동안 판매실적 1위를 기록 중이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다고 한다.

“주변에서 마당발이란 소릴 듣긴 했지만, 그 덕을 본 건 처음이에요. ‘내가 못 먹어도 남을 주고, 나보다 좋은 거 주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들으며 자란 덕에 싫다하면서도 몸에 뱄는지, 주변사람들을 많이 챙기며 산 편이었어요. 근데 처음 영업이란 걸 하는데 요청하지 않아도 다들 먼저 나서서 팔아주더라고요. 서로 나누고 살면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돌아오더라고요”

그가 판매 1위를 한 건 영업능력이 아니라 베풀고 나누며 산 덕택인 것이다. 주위의 아는 언니가 그에게 이런 말도 했단다.

“넌 돈 많이 벌어도 남에게 어떻게 풀어줄까 생각하느라 더 머리 아프니까 돈벌지 마라.”

“동네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싶어요”

산 좋고 물 좋은 제주에서 사는 게 부러워 제주 살림살이를 물었더니, 물어본 내가 무색할 만한 답이 돌아왔다. 그만큼 지역 경기가 심각했다.

“밀감 농사를 주로 하는 서귀포는 수입농산물 개방과 전반적인 경기 악화 때문에 밀감가격이 많이 떨어졌어요. 살기 어렵죠. 몇 년 전부턴 저녁 8시가 넘으면 서귀포는 회색도시가 되버려요. 비 올 때는 무서울 정도예요. 감귤농사를 제외하면 남는 돈벌이 수단이 관광산업인데, 이건 외지자본과 소수 돈 있는 사람들이 독점하고 있어서 지역민들은 그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고요. 예를 들어 고급 숙박시설이 중문단지로 다 들어가 버리면서, 서귀포시는 그저 스쳐 가는 곳이 돼 버렸어요. 소규모 상인이나 자영업은 운영조차 어려운 상태가 된 거예요. 여기 사람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맞벌이 교사만 되도 준재벌이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그는 제주의 지역경제를 살리려면 시 당국이 긴 안목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식수문제와 직결된 골프장 난개발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려운 제주경제는 곧 그 자신의 문제이기에, 직접 농사를 짓진 않지만 그 또한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다.

그런 강은희 회원의 집은 토요일이면 동네 아이들 집합소가 되곤 한다. 형제자매 없이 혼자인 동네 아이들이 부담 없이 와서 놀 수 있도록 한 까닭이다. 어떨 때는 열 명이 넘게 모이기도 한다니 완전히 지역 놀이방인 셈이다. 이것으로도 만족스럽지 않은지 그에겐 바람이 하나 더 있다. 동네에 작은 땅을 구해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 혼자인 아이들, 정서적으로 안정이 필요한 아이들이 와서 편히 공부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같이 공부하고, 동네 아줌마들에겐 사랑방이 될 수 있는 그런 곳을 꾸려 보고 싶어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봐요. 제 특기가 동네 바람잡이거든요.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각자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것으로 힘을 모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죠.”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며 어울려 살 수 있는 방법들을, 그것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찾고자 하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그를 아는 한 지인이 이런 말을 들려 줬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맞다. 강은희, 그는 ‘환풍기’다.

“그녀는 걷길 좋아한다. 그녀가 여기저기 씩씩하게 걸어다니면 제주가 시원해진다. 그녀는 사람들을 소통시켜주는 환풍기 같은 사람이다.”

정지인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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