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7월 2003-07-01   1070

진보진영의 “핫맨” 진중권

운동권의 왕따? 도발적 문제설정의 천재?


이번 호부터 본지는 “뜨거운 감자”라는 다소 독특한 인터뷰 지면을 만든다. 소위 “뜨거운 인물”로 회자되는 사람을 찾아 그의 생각을 듣고, 미덕과 해악을 파헤쳐 본다.

운동판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진중권을 얘기하지 않는 것 같다. 공적 매체에서도 그의 시비를 진지하게 받는 인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 때 그의 이름 하나로 술자리가 후끈했던, 그가 갑자기 식어버린 것이다. 역사든, 사회든, 조그만 조직이든 무난한 모범생보다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아가 사물의 가려진 진실과 심층을 드러내는 데 더 큰 기여를 하는 법. 그가 정말 식었다면, 오히려 다시 데워야 하지 않을까. 편집자 주

진중권에게 사회적 문제들은 정치적인 역학게임이기 이전에 윤리적 실천의 문제란 것이 언제나 확연하다. (중략) 웃을 줄 알고 웃길 줄 아는 이 능력은 전형적인 민중의 감수성이다. (중략) 그는 생의 한가운데서 의미를 찾아가는 진짜 철학자이다.”

지금은 진중권이 그은 ‘민주당 이데올로그들’과의 전선 저편의 적군이 됐지만, 한 때 안티조선의 전선에서 진중권과 뜨겁게 연대했던 노혜경이 쓴 진중권의 <폭력과 상스러움>에 대한 서평의 일부분이다. 걸출한 인터넷 논객의 출발을 알린 안티조선의 ‘밤의 주필’에서 현재 인터넷매체 진보누리(www. jinbonuri.com)의 칼럼니스트. 그 사이 한국사회를 보는 진중권의 시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지금까지 우리가 반수구연대를 해서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는 민주당이 더 이상 진보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노무현정부를 100일 동안 봤는데 그동안 한 게 뭔가? 파병결정, 방미 굴욕외교, NEIS·새만금 강행, 최루탄 부활 이런 상황이다. 뭘 바라는가, 민주당의 두 번 집권은 호남 엘리트들과 영남 엘리트들 사이의 권력이동이다. 먹고사는 놈들끼리의 권력이동이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진보를 맡길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뜨거운 감자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수많은 진보정당의 지지자 중 한 명으로서의 그가 아니다. 진중권을 둘러싼 열기는 그의 글쓰기 스타일의 미덕과 해악, 운동진영을 향한 거침없는 문제제기, 그가 옹호하는 시민사회의 상식과 진보정당 당파성 사이의 긴장 등이 발열의 진원지다.

진중권식 스타일의 빛과 그림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독설을 힘겨워하지만 그의 글씨기의 미덕을 제대로 평가하는 이는 드물다. 진중권 본인은 자신의 인터넷 글쓰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내가 가면 재밌어 한다. 적대자도, 아군도 모두 재밌어 한다. 그러니까 놀이문화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말을 험하게 하면서도 격조 같은 게 있다. 김삿갓의 풍자 같은 것. 안티조선의 성공 배경에는 내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미학, 독일, 진보정당 등 지적인 세련이 물씬 느껴지는 진중권에게서 김삿갓으로 상징되는 한국 풍자와 해학의 맥을 짚어내는 일은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노란색’이란 용어의 상징을 ‘싹수가 노란’, ‘똥물’, ‘황건적’ 등으로 문맥에 맞게 능란하게 구워삶는 그의 개인기는 분명히 그의 글씨기의 진한 매력이다. 한국적 해학 특유의 은근함과 따뜻함이 아쉽기는 하지만.

“신주류의 ‘노란색’ 개혁이 구주류식 개혁보다 싹수가 더 노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지요”, “우리 시민사회는 어느 새 이렇게 盧란색 똥물에 오염된 것이다”, “소위 ‘네티즌 혁명’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서도 지적할 때가 됐다. (중략) 대선 전 민노당의 홈페이지는 어느새 몰려온 이들의 패악질로 초토화된 바 있다. 한 마디로 시민혁명이 어느새 ‘황건적의 난’으로 돌변한 것이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철학을 지식인의 고담준론의 영역에서 우리가 발딛고 사는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그의 재주도 아직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다양한 탈근대 철학의 문제의식을 한국 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위한 비판과 실천의 맥락 속에서 포착해내는 그의 능력은 마르크스 이외에 변변한 진보담론을 갖추지 못한 한국의 운동진영에 더할 수 없는 지적 축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반대자들 상당수가 지적하는 그의 글씨기의 패악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총련을 포함한 NL(민족해방)진영을 향해 “김일성의 똥구멍을 빨던 자들”, “윤리적으로 타락했고, 지적으로 무식하며, 미적으로 촌스러운 수구반동의 무리” 등의 표현을 보자. 이런 표현들은 말과 글의 묘미를 배가시키는 레토릭과 수사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들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네티즌과 지식인이 이런 글씨기의 패악을 지적했지만 그의 사전에 사죄란 없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묻는다. “진중권은 논리적, 윤리적 무오류의 존재, 즉 신이라도 되는가?”

당파성과 상식 사이의 긴장

운동진영을 향한 거침없는 문제제기 역시 그의 미덕과 위험성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는 인권운동사랑방에 대해 “북한 인권 개선책으로 경제제재의 해제를 요구하고 나서는 것은 사오정 같은 논법이다. 양자는 논리적으로 별개의 문제다”고 말한다. 미군에 의해 처참히 희생된 ‘윤금이 씨 사진’을 시위과 교육에 사용하는 여중생범대위와 일부 전교조 교사에 대해서는 “저들의 왕성한 정치적 성욕 앞에서 사체마저 안전하지 못한 것이다”라는 장엄한 독설을 퍼붓는다.

그의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북한 인권문제와 미국의 경제제재의 연관성, 죽은 자의 사진을 운동의 목적으로 공공장소에 사용하는 한계에 관한 문제는 시민사회의 차분한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운동진영에서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는 이런 문제제기는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적절한 인물을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고약한 언사에는 시민사회의 상식보다 진보정당의 지지자로서, 안티 민주당 이데올로그로서, 특히 혐오에 가까운 NL진영을 향한 그의 당파적 소신이 강하게 투영돼 있음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시민사회의 상식과 당파성 사이의 긴장에 대한 이론적 성찰, 이에 근거해 혹 있을 지도 모를 그의 실존적 고민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지난 해 서울시장 선거운동을 예로 드는 그의 논리는 간단했다. “민노당이 내놓은 후보인데, 시민사회의 상식에 비춰 말이 안된다면, 내가 민노당 당원이더라도 지지를 못하는 것이다.”

적어도 진중권 자신의 주관적인 믿음 속에서는 시민사회의 상식이 진보정당 당파성보다 우위의 가치를 갖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글쓰기라는 수단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구체적인 실천에서도 그럴까.

‘진보누리’에서 고정 칼럼을 쓰고 있는 진중권이 지금까지 올린 107개의 글 중에서 인권운동사랑방, 국가인권위, 전교조 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모두 안티NL이라는 그의 당파적 소신과 관련돼 있다. 또 ‘진보누리’가 표방한 ‘민노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걸맞는 민노당 비판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서울시장선거를 둘러싼 이른바 ‘강-진 논쟁’에서 강준만을 반박했던 논리가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녹색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살펴보는 것도 그가 옹호하는 시민사회의 상식이 진보정당 지지자로서 그의 당파성에 짓눌리는 좋은 사례다. “민노당이 비교적 작은 선거에 역량을 집중해 서서히 발판을 구축해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 강준만의 충고를 진중권은 소수정당의 시민권 차원에서 반박했다. 남의 선거출마에 대해 감히 이래라저래라 충고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짓이라는 것.

그랬던 그가 녹색당의 내년 총선을 향한 움직임에 대한 평가를 묻자 “지금같은 상황에서 녹색당이 개별적으로 나오는 것은 닭짓이라고 본다. 5% 장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민노당도 못 넘고 있는데” 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상식의 이름으로 민주당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그가, 민노당 당파성의 이름으로 녹색당의 정치적 거동에 대해 ‘닭짓’이란 용어를 선사하는 것. 그가 옹호하는 시민사회의 상식이 그의 당파성을 위한 용도에 국한된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에 대해 그는 어떤 논리를 내놓을까.

장흥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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