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11월 2003-11-01   1484

석유와 군부대에 밀려 소멸해가는 원주민들

자신들의 전통, 문화와 삶의 방식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오늘의 세계에서는 쉽지 않다. 소위 문명화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한 사회의 시선으로 보기에 조금 낯설고 신기하고 때로는 아주 낙후된 사회처럼 보이는, 우리가 보통 ‘원주민’이라 부르는 공동체는 더 그렇다.

원주민이 삶의 터전을 아예 빼앗겨버리는 일들도 세계 곳곳에서 자주 벌어지고, 이들의 생존 자체가 위험에 처해 버리는 상황들이 계속된다. 문명과 개발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땅과 자원을 빼앗기고, 때로는 권력과 종교의 싸움에서 희생되기도 한다.

500만 파운드에 팔린 디에고 가르시아 섬 주민들

대대로 코코넛 농사와 어업으로 살아왔던 디에고 가르시아 섬 주민들은 1960년대 미소 냉전시대의 희생양으로 어이없게도 자신들의 고향을 빼앗기고 말았다. 당시 미국정부는 전략적 요충지인 영국령 차고스제도에 해·공군 보급기지를 건설하겠다며 영국정부에 섬 주민들의 소개를 요청했고, 영국정부는 미국으로부터 도입하는 잠수함용 폴라리스 핵미사일 가격을 500만 파운드 깎는 조건으로 미국의 요구를 들어줬다. 그 후 섬에 살던 약 2000명의 주민들은 1967년부터 6년 동안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미국령 모리셔스와 세이셸제도에 내팽개쳐졌다.

이에 맞서 지난 2000년, 섬 주민들은 ‘차고시안 난민그룹’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영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처음 영국정부는 “그 섬에는 갈매기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타잔 같은 인간들 몇몇만이 있었을 뿐”이라며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나 결국 디에고 가르시아 주민들의 강제 이주가 불법이라는 영국 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들의 영국 시민권을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영국 시민권’ 따위가 아니라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고향은 예전에 자신들이 삶과 전통 문화를 누리던 그 땅이 아니었다. 이미 미국정부는 2016년까지 섬에 대한 사용권을 주장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향해 스텔스 폭격기와 B-52 전폭기를 발진시키던 대규모 군사기지를 건설한 상태다. 그리고 미국정부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인 영국정부와 법원은 섬 주민들이 제기한 강제이주에 대한 보상과 고향으로의 귀환 소송에 대해 지난 9월 기각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에 항소하여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재판정을 나선 힘없는 디에고 가르시아 섬 주민들. 미국과 영국이라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고향을 잃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문명이 준 질병에 스러져가는 자라와부족

인도양의 또 다른 섬, 앤더맨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네 개 부족 가운데 자라와부족은 지난 150여년간 이 섬의 열대우림 지역에서 고립된 채 살아온 유목민족 중 하나이고, 인구는 겨우 300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도정부는 자라와부족이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이주해 온 첫 번째 부족의 후손일 거라면서, 1957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구역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 부족의 영토를 관통하는 도로가 건설되면서 지금껏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살았던 자라와부족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매일 수백 대의 화물차와 버스들이 부족의 땅을 지나게 되면서 자주 외부인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로 인해 면역성이 없는 외부의 질병에 노출된 것이다.

1999년, 많은 자라와 부족민들이 이전에는 없던 질병인 홍역에 걸려 죽었다. 자라와 부족이 처한 위기가 얼마나 큰 위험인지는 앤더맨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다른 부족의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인도와 영국정부가 관리를 쉽게 한다는 목적으로 그레이트 앤더맨과 옹게부족을 강제로 이주·통합한 결과 끔찍한 질병이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1900년에 670명이었던 옹게부족은 현재 100여명, 1848년에 5,000명이었던 그레이트 앤더맨들은 현재 41명만 남아있다.

인도정부가 개발이익을 노리는 기업과 세력들을 대변해 외부인과의 접촉을 바라지 않는 부족민과 국제단체들의 요구를 계속 무시한다면, 수십 년 내에 자라와부족은 사진과 기록 속에만 남아있는 사라진 존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석유 채굴로 신음하는 남미 원주민들

에콰도르 남부와 페루 북부 지역의 아추아·슈아·자파라·키와 원주민들도 자신들의 영토를 침범하여 마구 파헤치는 석유회사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250만 에이커의 영토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10만 명 정도. 그러나 미국 석유회사 벌링턴 리조스는 이 원주민들의 권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벌써 10년 가까이 이 지역에서 석유채굴을 추진해 왔다. 이로 인해 얻어지는 모든 이익은 석유회사가 가져갔고, 원주민들에게는 석유채굴로 인해 파괴된 삶의 터전, 그리고 오직 가난과 생존의 위기만이 남았다. 현재 원주민들이 벌이고 있는 석유 채굴 반대투쟁은 애처롭게도 석유회사의 비행기가 자신들의 땅에 착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창’을 들고 활주로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한다.

군사적 패권의 이해를 따지고, 그 땅에 잠자고 있는 자원 개발로 얻을 엄청난 이윤만 떠올리는 ‘그들’에게는, 수백에서 수천 명, 많아야 10만여 명인 원주민이라는 ‘명목’과 이들의 ‘삶’이 정말 대수롭지 않은 것일까. 더 큰 이익을 위해 감수해야 할 희생쯤으로 전통 부족의 운명을 함부로 해도 되는 것일까. 그저 지금껏 살아왔던 그 모습 그대로 오늘과 내일을 살고 싶어할 뿐인데 그들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과연 세계는 앞으로 이들에게 어떤 내일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인가.

강 은 지 민족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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