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9월 2003-09-01   733

변화의 씨앗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새만금 갯벌과 핵폐기장 문제만은 예외인가보다. 10년이란 긴 세월동안 이 문제들을 두고 개발입장을 대변하는 정부와 개발업자, 이에 맞서는 환경운동진영 그리고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지역주민은 각각 다른 주장과 힘겨루기로 마치 평행선처럼 맞서왔다. 서로의 가슴에 굵은 대못을 치며 괴롭게 걸어온 셈이다.

삼보일배의 눈물겨운 실천으로 새만금 갯벌 개발을 겨우 막아냈는데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지역주민이 생계도 미뤄놓고 ‘핵폐기장 건설 반대’에 나선 전북 부안은 지역과 사안만 다를뿐 새만금 개발 논란의 재연이다. 개발논리로 점철된 우리 역사가 바로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발이 우선인가, 생명과 환경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진정한 해법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답답하다.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한가. 효율과 이윤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적 성장과 생명과 생태계를 보호유지하는 일이 공존할 수 있는지부터 의문스럽다. 양자의 선택에서 생태보전이 성장을 통한 이윤을 이길 수 없음은 자명해 보인다. 지금껏 보아왔듯 늘 뒷전으로 밀려왔듯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어느 한쪽만을 선택할 수도 없다. 어떻게든 대화를 통해 의견차이를 좁히고 타협을 이뤄야한다. 변화는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진 타인을 설득해내는 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을 할 때는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완전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 핵발전소와 폐기장을 짓는지, 왜 새만금 간척사업을 추진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근본 이유를 이해해야만 서로의 차이와 설득과 타협의 지점을 모색할 수 있다. 물론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진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이 쉬울 리 없다. 일단 폭력적 대립이야 논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논리로서 의견을 관철하는 방법도 대립의 각을 세우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나는 전혀 다른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어쩌면 모두가 이미 공감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번 새만금 개발 반대를 위한 삼보일배 과정을 통해 많은 이들이 새만금 반대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하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크게 공감했다. 지난해 우리를 감동시키고 하나로 묶어냈던 촛불시위도 마찬가지다. 소통·공경·헌신 등의 근본적인 덕목을 시민운동부터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조용히 말해도 귀 기울이고, 성내지 않아도 상대방을 헤아리는 마음가짐을 먼저 가져보길 제안한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만큼 그것을 만들고 움직이는 개개인의 변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핵발전소를 추방하고 핵폐기장을 막아내고 에너지 정책 변화를 위해서는 시스템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전기의 사용량을 줄이고 지금보다 두배의 전기료를 내더라도 새로운 대체 에너지 개발에 투자하고, 불편하게 사는 연습도 필요하다.

필자가 종교 안에서 생명·평화운동을 하고 있으니 이러한 운동이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화두가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종교의 가르침이 그 자체 내에서 의미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찰의 계기를 주어 근본적이고 올바른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진정한 의미라고 본다. 핵폐기장 반대를 위해 1000여 명의 성직자가 영하의 날씨에 거리에서 기도하고, 어떤 이는 37일간이나 죽음을 넘어선 단식투쟁을 한다. 또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삼보일배로 해창 갯벌에서 서울까지 가고, 또다시 서울에서 해창 갯벌까지 기도 순례를 한다. 종교의 울타리에서 먼저 제안된 생명·평화 나눔운동의 첫 걸음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감동시키는 것’에 있음을 전하고 싶다. 이러한 운동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눈에서 눈으로, 걸음에서 걸음으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변화의 씨앗은 곧 나이기 때문이다.

양영인 원불교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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