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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09월
  • 2003.09.01
  • 1064

양성평등 시대에 웬 ‘정절의 표상’?


서울 강동구가 ‘여성으로서 정절을 지킨 여인의 표상’이라며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백제시대 도미 부인 동상 건립안이 서울시의 문화국 전문가회의에서 부결되었다. 강동구의 역사문화유산 복원작업은 지방자치단체의 부족한 재원과 기반 하에서 지역의 독특한 특성과 문화유산을 발굴하여 널리 홍보하고 주민들을 결속시킨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도미 부인 동상 건립은 이러한 취지를 살리기 어렵고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인데다, 특히 서울시에서 천호동공원 내 건립을 부결시켰음에도 구유지(또는 근린공원)에 건립을 강행하겠다고 하여 위례시민연대와 문화연대 등 시민·문화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먼저 도미 부인의 설화에 대해 살펴보자. 설화는 삼국사기 제48권과 동사열전, 삼강행실도에 기록되어 있다. 주된 내용은, 백제의 개루왕이 절세미인으로 소문난 도미 부인을 품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데, 부인은 속지 않고 정절을 지키고자 왕성 근처의 나룻터에 당도해 천상도(고구려의 땅이라 생각됨)로 도망가 이미 도착해 있던 남편과 한평생 잘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동구에서 ‘여성정절의 표상’이라고 동상 건립을 추진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일 뿐 아니라, 불필요한 예산지출로 구민의 세금을 낭비한다는 것이 지역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좀더 구체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천호동공원을 비롯한 강동구에서는 도미부인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백제 초기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된 송파구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 비해 강동구 어디에도 도미 부인이 살았던 백제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서울 시역시 지난 7월 15일 전문가회의를 소집해 강동구에서 올린 동상건립 신청을 지역적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부결시킨 바 있다.

둘째, 도미 부인 동상 건립은 양성평등 시대에 맞지 않는 가부장적인 발상이다.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지만 호주제 폐지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은 보편화된 사회의 발전방향이고 세계적인 추세다. 특히 정부부처에 여성부가 만들어지고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손발을 걷어붙이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의 정절’을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이고 구청장의 몰역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난 8월 7일 시민·문화단체 관계자들은 도미 부인 동상 건립을 백지화하고 이 예산으로 청년실업자를 위한 한시적인 일자리를 만들 것을 제안하는 의견서를 제출하려다 반말투의 구청장에게 문전박대 당한 일이 있었다. 주민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동상 건립을 강행하겠다고 천명하는 구청장을 보면서 강동구청이 추진하는 역사복원사업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1억여 원의 예산까지 책정한 마당에 동상을 세우기만 하면 된다는 권위주의적인 발상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상황에서 구민의 혈세까지 낭비해 참다운 지방자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양성평등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저해하는 반교육적인 흉물로 전락할 것도 뻔하다. 따라서 강동구청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고 역사적으로도 고증되지 않은 도미 부인 동상 건립 계획을 폐기해야 한다.

황기룡 위례시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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