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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09월
  • 2003.09.01
  • 1108

삶터-놀이터 가꾸기로 참여공동체 일궈


지난 8월 16일 저녁 7시, 미아3동 ‘한빛놀이터’에 노래자랑이 열렸다. 100평 남짓 돼 보이는 좁은 놀이터에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에서 지긋한 노부부까지 이 마을의 모든 세대가 어우러졌다. 옛 시골마을 운동회를 연상시키는 이 공동체의 한 가운데 ‘열린사회 북부시민회’가 있었다. 편집자 주

본 대회인 ‘2003 백중맞이 주민 노래자랑’이 열리기 전까지 ‘한빛놀이터’의 분위기는 ‘열린사회북부시민회(이하 북부시민회)’의 회원모임인 풍물굿패 ‘밝달’이 이끌었다. 고향의 향수를 간직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어깨춤을 이끌어 낼 수준은 아니었지만 황금연휴를 이용해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은 마을주민들의 흥을 돋구는 데는 손색이 없었다.

놀이터 주변에는 어린이들이 재활용과 환경을 주제로 만든 포스터들이 걸려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생인 김민지 어린이는 우유팩을 연필꽂이로 사용하는 그림을 그렸고, 일곱 살 최건호 어린이는 벌레 먹은 사과를 그리고 “이런 사과가 더 좋은 거래요”라고 썼다. 김윤정 어린이는 “분리수거하는 우리 엄마 파이팅!”을 외쳤다.



남녀노소가 어우러진 노래자랑대회


이날 노래자랑은 북부시민회가 ‘삶터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의 연례 문화행사다. 김진숙 북부시민회 사무국장은 “놀이터는 지금까지 술 취한 사람들의 주정이나 청소년들의 비행장소로 인식돼왔다”면서 “지역주민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놀이터를 그야말로 주민들의 문화공동체로 바꿔보고 싶었다”고 이 사업의 배경을 설명했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이하는 이 노래자랑엔 11명의 지역 아마추어 가수들이 참가해 열띤 경연을 벌였다. 미아역 5번출구 부근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사장님도 나왔고, 놀이터 앞 철물점 주인아저씨도 참가했다. 미아8동에 사는 아저씨는 목발을 짚고 나와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이날 행사의 압권은 행사의 마지막 순서인 중학생들의 브레이크 댄스 공연이었다.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은 무대에서 학생들의 춤솜씨도 화려했지만, 중년 신사차림의 아저씨가 ‘사랑하는 누이’를 부를 때보다 더 신나서 환호성을 지르는 할머니들의 열광은 분명히 놀라운 것이었다. 개발독재를 거치며 고달픈 노동과 입시경쟁과 물신주의 등으로 이미 무너졌다고 판단했던 공동체가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옆자리에 앉은 한 아주머니에게 “이 동네 할머니들은 브레이크 댄스를 트로트가요보다 더 좋아하네요” 라고 말을 건네자 “자기들끼리 으슥한 데서, 지하철 구석에서 눈총 받아가면서 춤추는 것보단 이런 장소에서 마을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 춤을 춘다면 최소한 비행청소년은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라고 답한다.



제도개혁을 외치는 구호에서 사람 속으로


북부시민회는 열린사회시민연합 9개 지부 중에서 지역주민들과의 결합력 면에서 단연 모범이다. 북부시민회는 소위 ‘운동권’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경계심을 어떻게 허물었을까. 김 국장의 설명이다.

“열린사회시민연합의 활동가들은 87년 대선 당시 공정선거 감시활동과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 등 중앙정치를 바꾸는 활동을 해오다 92년부터 지역주민운동에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98년 이전까지는 사회제도 개혁에 주력했지만 절차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척된 상황에서는 풀뿌리 차원에서 마을주민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이 풀뿌리 운동의 성공을 그냥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김 국장은 “지역운동을 한다고 했으면서도 처음에는 주장성 구호가 강했다”고 고백했다. 당연히 초기 활동은 소규모의 헌신성 있는 회원과 활동가들로 시작했다. 그 만큼 회원의 증가는 더뎠고, 지역주민들과의 일상적인 교류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운동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던 북부시민회가 지역사회와의 소통의 길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북부시민회의 풀뿌리 사업은 크게 주민자치 활성화, 공동체 시민교육, 풀뿌리 자원봉사 등 3가지 영역에서 진행된다. 주민자치 활성화 사업으로 삶터 가꾸기와 주민자치센터 활성화 사업이 있고, 공동체 시민교육엔 부모역할훈련, 직장인 자기개발, 문화동아리 등이 있다. 그리고 자원봉사 활동으로는 무료집수리 운동 ‘해뜨는 집’과 초등학교 무료 방과후교실 ‘열린 학교’ 등이 있다.

변화는 주민 삶의 영역으로부터

올해 5년째 된 ‘해뜨는 집’ 사업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 청소년 쉼터, 장애우 가정 등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130여 가구를 수리했다. 북부시민회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열린사회시민연합 5개 지부로 확대됐다.

북부시민회의 시민교육 프로그램은 풀뿌리의 변화, 사람의 변화에서 운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열린사회시민연합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난다. 교육사업의 중심이 부모 역할 훈련, 직장인 리더십 등 실제 살아가는 삶의 영역에 조명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역할 프로그램의 예를 들면 자녀와의 의사소통과 이해와 훈육에 중심을 두는 기본과정을 거치면 심화과정에서는 부모 자신의 자아성장에 목표를 두고 있다. 김 국장은 “풀뿌리 운동이라 하더라도 교육사업은 대부분 민주시민으로서 정치적 교양이나 훈련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일반적인 상황”이라며 “실제 삶의 영역에서 자아성찰과 개발을 통해 자기변화를 이끌어내려는 것이 북부시민회 교육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북부시민회의 풀뿌리 사업은 지역주민들의 자발성을 최대한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면 삶터 가꾸기 운동은 10여 명의 주민들이 만든 ‘주민 토박이 모임’이, 해뜨는 집 운동은 지역 기술자들의 커뮤니티인 ‘맥가이버팀’이 주도적으로 맡아서 하고 있다. 이렇게 진행되는 사업은 취미나 봉사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커뮤니티 모임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커뮤니티 모임만 7개. 서투른 주장성 구호에서 시작한 운동이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풀뿌리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물론 아직 아쉬운 점이 많다. 김 국장은 “주민 토박이 모임의 경우 아직 주부 중심이고, 자원봉사 수준에서 출발해 모임의 리더십은 아직 약한 편”이라고 말했다.

북부시민회는 현재 다세대와 빌라 주택 밀집지역 중심으로 진행되는 사업을 아파트단지로 확대하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미아리 달동네 지역 재개발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풀뿌리 운동의 새로운 도전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동과 동마다, 가구와 가구마다 반듯한 경계선으로 분자화된 우리의 아파트단지. 북부시민회는 그 경계선을 허무는 새로운 아파트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장흥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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