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9월 2003-09-01   841

정몽헌 회장 죽음과 남북경협의 구도변화

남북 경협은 평화를 위한 확실한 투자


정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남북경협이 중단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통일을 위한 수순으로 남북교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식됐으나, 그에 대한 경제적 부담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남북경협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편집자 주

금강산관광은 한국전쟁 이후 남북간 교류협력 사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사업이다. 1998년 11월 18일 첫 출항 이후 지난달 말까지 연인원 52만여 명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금강산관광으로 시작된 남북간 교류협력과 신뢰 다지기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기여했으리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금강산관광 사업은 개성공단 건설과 경의-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사업으로 확장되며 반세기 분단의 얼음강을 건너는 징검돌이 되고 있다.

금강산관광 사업의 주체는 현대아산으로 현대그룹의 계열사다.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 금강산지역 시설투자에 1851억 원을 투입했고, 관광사업 대가로 북쪽에 지금껏 4억 달러 이상을 지불했다. ‘재벌기업이 주도하는 민족사적 사업’, 이게 남북교류협력의 대표적 상징인 금강산관광 사업의 성격이다. 그리고 이 사업의 성격과 사업 주체의 모순적 결합은 근원적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경제협력(이하 경협)의 활성화가 민족경제공동체 형성의 기초를 닦아 남북간 신뢰회복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누구도 경협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협은 ‘돈 먹는 하마’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대북사업 전문기업 현대아산의 누적 결손금은 3000억 원에 이른다.

대북사업 참여=주가 하락?

『한겨레21』의 최근 조사결과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응답자들의 95.9%는 정주영-정몽헌 부자가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장일치에 가깝다. 또 응답자의 80%는 정몽헌 회장의 죽음 뒤에도 금강산관광 사업이 지속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금강산관광 사업의 지속을 위한 남북협력기금 200억 원 지원 문제에 대해선 찬성(48.4%)과 반대(47.7%)가 어금버금했다. 요컨대 여론조사 결과에 담긴 한국인의 태도는 ‘금강산관광사업은 지속되어야 하나, 그에 따르는 부담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금강산관광 사업이 지금껏 ‘돈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구조적 적자에 시달려왔다는 점, 앞으로도 당분간은 적자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부담’을 짊어져야만 한다. 정부가 됐든, 기업이 됐든, 그도 아니면 한국민 개개인이 됐든. ‘평화와 경제의 교환 패러다임’이 대북화해협력정책(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대북화해협력정책의 확대증보판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근본 철학은 다르지 않다)의 핵심 버팀목이라는 점, 경협은 평화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의 하나라는 지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현실은 척박하다. 대북사업이 수반할 단기적 적자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 기업들은 일제히 손사래를 친다. 북한이 대북사업에 나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으로 알려진 삼성 쪽은 “현재로선 투자할 수 없다”는 태도이고,‘현대測胤’맏형인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기아차도 “대북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은 확고하다”고 밝히고 있다. 다들 왜? ‘대북사업 참여=주가 하락’이라는 단기 경제 셈법이 그 이유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런 상태에서 기업 컨소시엄 방식을 통한 대북경협은 적어도 단기적으론 현실화하기 어렵다. 정부도 지금까지는 인상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민주당의 젊은 원내외 위원장 26명이 ‘남북경협 지속발전을 위한 범국민운동’의 구체적 실천 방식으로 금강산관광 참여하기, 현대아산 주식 10주 갖기 운동을 제안했을까. 이 운동은 금강산관광사업의 중요성을 새삼 생각게 하는 상징성은 강하지만, 그 현실적 파괴력에 대해선 다수가 회의적이다.

정몽헌 회장의 죽음 직후 경협 구도의 변화 가능성을 놓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일단 중단기적으론 지금까지의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요컨대 현대아산이 금강산관광 사업의 주체로서 계속 사업해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적자는? 현대아산은 현재 월 20억 원 안팎으로 발생하는 금강산관광사업 적자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남쪽이 선택할 수 있는 단기적 처방은, 지난해 그랬던 것처럼 남북협력기금 200억 원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업의 재정적 균형은 가능하다. 그러나 국회 제1당인 한나라당은 당론으로 이에 반대하고 있다. ‘핵무기 개발 등으로 이어질 대북 현금지원은 안 된다’는 게 그 논거다. 『한겨레21』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여론도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이 때문에 집권당인 민주당과 적잖은 시민단체들이 협력기금 지원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그저 멈칫거리기만 하고 있다. 법적으로만 따지자면, 정부는 한나라당이 반대하더라도 협의절차를 거친 뒤 협력기금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그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한술 더 떠 남북협력기금 조성 및 사용에 앞서 국회 동의를 의무화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남북협력기금 지원이 여의치 않자 정부는 대북 투자분을 자산으로 인정해 금융권 대출 등에 담보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지금껏 기업의 대북 투자분은 ‘손실’로 회계처리돼 왔다. 명백한 실체를 손실로 처리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간주하는 국가보안법만큼이나 냉전적 법논리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이런 방침이 현실화하면, 현대아산은 북한 내 고정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쓸 수 있게 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회계상 자산 처리 문제가 해결되면 북쪽의 고정설비를 담보로 남북협력기금 대출도 가능해져, 현대아산의 유동성 사정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잠식 상태인 현대아산은 지금껏 대북투자분이 ‘손실’로 처리됨에 따라 은행대출은 엄두도 내지 못해왔다. 경협의 또 다른 축인 개성공단 건설과 경의-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현재로선 큰 문제가 없다. 개성공단 사업은 초기 단계일 뿐만 아니라 현대아산은 시공만 맡고 나머지 투자는 한국토지공사가 맡도록 구실 분담이 돼 있기 때문이다. 철도 연결사업은 남북 당국간 합의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어서 남북관계가 끊기지 않는 한 큰 문제없이 진전될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이 현실을 변화시키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남북경협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남북경협은 제도적 틀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그리고 그 잣대로 지금까지의 남북경협의 약점을 난타해왔다. ‘투명성’과 ‘제도화’, 그게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바보가 세상에 있을까.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21세기 지구마을의 경제협력과 상거래 관행에 미숙하다. 북한은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경협을 해야 한다. 지금 남북경협은 남북간에 투자보장 등 4대 경협 합의서를 주고받는 등 제도화의 들머리를 넘어설 참이다. 사실상 최초의 교류협력이라 할 금강산관광 시작 이후 4년9개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3년3개월. 이제야 남북은 교류협력의 틀을 짜기 시작한 것이다. 끊겼던 철길도, 비록 기차나 사람은 다니지 못하지만, 이어졌다.

무엇이 현실을 변화시키는가. 무엇이 평화를 증진시키고, 총체적 안보를 가능케 하는가. F-16 전폭기 등 값비싼 무기를 사는 게 효과적인가, 아니면 끊긴 철길을 잇고, 비무장지대 근처에 남북이 함께 운영하는 환경친화적인 공단을 만들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게 효과적인가. 어느 게 더 인간적인가? 통일 독일의 초석을 놓은 빌리 브란트는 말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해결될 일이란 없다”. 길은 걸어야 만들어지고 다져지는 것이다. 그저 말로는 어떤 길도 내지 못한다.

이제훈『한겨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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