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9월 2003-09-01   506

법인세 인하로 투자 늘지 않는다

법인세 인하 논란이 수그러들 줄 모른다. 설왕설래를 거듭하던 세율인하 논란은 인하를 추진하는 한나라당이 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반면 법인세 인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또한 가라앉지 않는다. 그들은 왜 세율 인하를 반대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법인세 인하 논란이 이제 정기국회로 넘어갈 전망이다. 노무현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시작된 세율 인하 논란은 인하방침 언급 자체가 대통령의 대선공약 파기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갈짓자 행보를 예견했다.

출범 초기, 기존 입장을 완전히 뒤엎은 재경부장관은 법인세 인하 연내 입법화를 떠들고 다니기 시작한다. 얼마 후 비과세·감면축소 등 자신이 내세웠던 세수보전책이 타당성 없다고 밝혀지자 장관은 다시 말을 뒤집어 연내 입법 불가 의견을 밝힌다. 장관이 이렇게 현실파악을 하고 있을 즈음, 이번엔 대통령 본인이 나서서 기업이 원하면 정부는 인하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해 혼란을 심화시킨다. 법인세율 추가 인하를 줄곧 주장하던 한나라당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는 호기를 만난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에 부응이라도 하듯, 한나라당은 올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며 8월초 법인세 인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인세 인하 논쟁에 불을 지핀 재경부가 이제는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는 한나라당을 저지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런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경제상황이다. 이자율은 사상 최저고, 시중 유동 자금은 수백 조 원에 달해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면 어디든 몰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기업들은 기업대로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고 투자를 망설이면서, 정부에 손을 내밀어 법인세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재정도 마술램프가 아니다. 법인세 인하로 기업투자를 유도한다지만 기업이 법인세 인하에 매달려서는 우리 경제가 바다 한 가운데에 가라앉고 마는 신세가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도 법인세를 인하한다고 투자가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투자의 경우 미래 현금수입이 불투명하면 자본 조달비용에 신경을 쓴다. 그런데 법인세 인하는 자본의 조달비용을 높이는 효과를 연출해 투자결정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1000억 원의 투자프로젝트를 조달하기 위해 이자율 6%대에 자본을 차입하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만약 정부가 법인세율을 22%에서 20%로 낮췄다고 한다면 법인세 인하 전 실질 자본조달 비용은 1000×6(1-0.22)÷1000으로 4.68%가 된다. 그러나 법인세율을 20%로 적용하면 자본조달 비용은 4.8%로 상승한다. 따라서 수입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인세를 인하하면 오히려 투자를 꺼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 재정은 마술램프가 아니다

경제가 어려운데 세금이라도 깎아주면 좋지 않느냐는 막연한 생각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재정적자가 확대될 경우 오히려 경기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 톰 대슐 상원의원이 감세 법안의 일부 철회를 요청하면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는데, 정부의 재정흑자는 이자율의 하락을 가져와 주택자금이나 신용카드의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세금 감면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균형재정의 전제가 되는 5%대 성장률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균형재정 달성 전망은 또 다시 불투명해지고 있다. 올해는 기업들의 전년도 실적 때문에 그럭저럭 세입을 맞추고 있지만 올해 실적이 적용될 내년의 경우 세입전망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구나 공적자금 상환 계획이 일반회계의 부담으로 잡혀 있어 재정 압박은 한층 가중될 것이다.

때문에 일시적인 경기침체에 대처하기 위해 법인세 인하 같은 항구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법인세 1%를 인하하면 한 해 8000억 원의 세수결손이 생기는데, 미국처럼 10년을 누계해 세율인하효과를 계산하면 8조 원이란 엄청난 재정결손이 발생하는 것이다.

감세정책이 재정건전성에 우선할 수 없다

감세정책의 효과가 의문시되는 상황에서 세율인하가 재정건전성에 우선 될 수는 없다. 필자가 이런 주장을 하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수 있으므로 감세에 적극적인 『조선일보』가 2003년 7월 10일자에 여 야가 최근 합의한 추경예산과 감세에 대해 적자재정 우려를 표명한 것을 인용해 보자. “이르면 올해부터 정부재정이 적자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우리 경제가 적자재정에 맛을 들이면, 10년간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아 온 만성적인 적자재정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 우리나라는 그나마 IMF경제위기 등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탄탄한 재정이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재정의 기능이 무너질 경우 기댈 언덕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논리는 경쟁상대국 특히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도시국가들의 법인세율에 비춰 우리나라의 세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 나라는 지역본부를 자국에 두고 주변나라를 활용해서 돈을 버는 사업을 장려한다. 주변국에서 번 돈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려면 세율을 주변국보다 낮춰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법인은 우리나라 시장에서 영업을 목적으로 들어오는 것이지 주변나라를 상대로 영업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세율을 도시국가와 수평 비교하는 것은 기본 전제부터 맞지 않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은 OECD 평균치나 주요 경쟁국 세율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경제해결책은 세율인하 아닌 산업구조조정으로

미국 부시 대통령은 선거공약에서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을 내세웠고, 당선 이후 재정흑자 상태에서 줄기차게 감세정책을 추진했다. 결과는 재정이 적자로 반전되고, 임기가 끝나 가는 지금까지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에는 부시의 지지율까지 하락하기 시작했고 대선이 다가오자 민주당 후보들이 부시의 경제정책 실패를 문제삼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주인 캘리포니아주가 재정 파탄의 책임을 물어 현행 주지사를 주민소환 방식으로 쫓아내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영화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차기 주지사로 유력하다지만 만신창이가 된 주 재정을 회복할 아이디어가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일본은 다 알다시피 10년에 걸친 경기부양 정책이 실패해 정부재정만 파탄 난 상태이다. 이것이 오히려 경기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어려움은 산업의 구조조정, 즉 제조업의 해외이전으로 생긴 공백을 메워줄 대체 산업 육성과 실직한 제조업 근로자의 전직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딱 잘라 이야기하자면 조세문제가 아닌 것이다. 세금 1~2% 내려준다고 이런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오히려 권위적이고 유교적인 사고방식을 버리도록 유도하고 가족구성원 누구나 쉽게 일터에 적응하는 분위기를 만듦으로써, 기업에는 1인당 인건비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가족 단위의 소득은 실질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나아가 대체산업에 대한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재교육과 보육시설의 획기적인 확충이 필수적이다. 정작 정부의 재원 투자가 필요한 곳은 이런 영역이다. 이것이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기도 하다. 재정건전성만 해치고 효과가 의문시되는 법인세 인하는 따라서 저지되어야 한다. 세율인하는 장기 세제개편에 맞물려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마지막 기로에 서 있다. 현명하지 못한 선택으로 인한 피해 또한 우리 몫이란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영태 회계사·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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