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9월 2003-09-01   1100

고질화 된 중·장년 실업에 청년실업 가세

구조적 실업이 부실한 사회안전망과 겹쳐 빈곤으로


청년실업이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 여론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중·장년 실업은 부양가족의 지출이 최고에 달하는 40대 이후 실업자의 경제력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정부와 여야 정당은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고심하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유럽과 달리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우리의 경우 실업이 곧 빈곤의 확대·심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편집자 주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함께 여름학기 대학 졸업생이 구직행렬에 합류함으로써 7월 청년실업률이 7.5%에 이르렀다. 평균실업률 3.6%의 2배에 가깝다. 청년실업률은 1년 전과 비교해도 1.3% 포인트 높아졌다.

그 심각성이 청년실업만큼 통계로 잡히진 않지만 중·장년층의 실업문제 역시 IMF 이후 일반화된 기업구조조정과 명예퇴직 등으로 고질이 된 지 오래다. 중·장년층 실업은 특히 부양가족의 교육비용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에 한 가정의 경제주체가 경제력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청년실업 못지 않은 심각성을 띄고 있다.

구직, 실업 순간부터 빈곤층 추락 위험

청년실업은 청년들이 단순히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의미를 넘어 치열해진 취업관문을 뚫기 위한 새로운 비용의 지출을 의미한다. 종로의 한 영어회화 학원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김영민(29세) 씨의 얘기는 취업준비생들이 정식 교육비 이외에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지 짐작케 한다.

“어학연수는 3학년 마치고 갔다 왔지만 목표인 토익 930점을 만들기 위해, 회화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6개월 전부터 학원을 계속 다니고 있다. 어학연수는 안 갔다 오면 흠이지만 갔다왔다고 해서 인센티브가 있는 건 아니다. 회화학원과 별도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인 OA자격증인 마우스(MOUS) 전문가급을 따기 위해 정보통신학원에 다닌다. 작년 말 일반급은 땄는데 큰 메리트가 못 된다는 말을 듣고 전문가급에 도전하는 것이다. 한 달에 학원비와 부대비용만 대략 40여 만 원이 들어간다.”

면접 즈음의 피부마사지 비용이나, 여학생의 경우 심심찮게 행해지는 성형수술 등의 비용까지 고려하면 집안이 부유한 일부 학생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은 상당한 경제적 압박과 싸워야 하는 실정이다. 김영민 씨는 “졸업 이후 집안의 지원이 끊긴 친구들 중 상당수가 6개월 정도 지나면 카드빚이 수백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최근 청년실업에 관한 각종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졸업에서 취업까지 기간이 길어질수록 취업의 기회는 더욱 줄어들고 심각한 카드빚에 시달리는 장기 청년실업자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은 중·장년실업자도 마찬가지다. 헤드헌팅 업체 애크로리소스의 김계중 이사는 “대기업 사무직 종사자의 경우 예전에는 40대 중반 이후가 일반적이었는데 지금은 40대를 넘기면 자의든 타의든 퇴사를 고민하는 실정”이라며 “경험상 퇴사자 중 25%는 창업, 40%는 전직, 35%는 마지막 직장이 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01년 ‘건강과 은퇴에 관한 부가조사’결과는 창업하거나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한 중·장년 퇴사자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할 개연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직장 은퇴자 중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을 조금이라도 보유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62%에 불과했고, 아직 직장생활을 하는 45세 이상의 연령층에서 노후생계비 문제에 대해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12%에 불과했다.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온 중·장년 퇴사자 중 40%에 가까운 사람들이 심각한 경제력 무능력 상태에 빠진다는 추론이 나온다.

구조적 실업은 경기회복만으로 역부족

빈곤으로 이어지는 실업을 막기 위해서는 경기회복이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기업의 채용과 구조조정 관행을 보면 근래 실업양태는 다분히 구조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수년 동안의 실업 양태에 비춰 경기회복이 실업문제 해결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한경리크루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110개 대기업이 올해 채용했거나 채용계획이 있는 인원은 전년도에 비해 23.1%나 감소했다. 문제는 그나마 채용 역시 경력직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는 것. 상대적으로 채용규모를 늘린 유통업체 S사와 쇼핑몰업체 L사의 올해 전체 채용인원 5800명과 1800명 중 대졸신입사원의 채용계획은 각각 270명과 190명에 불과하다.

김계중 이사는 “기업이 직원을 채용하는 방식은 광고에 의한 공개채용, 헤드헌팅 업체 이용, 사내 직원의 추천 방식 등 크게 3가지”라면서 “이 중 공개채용이 그나마 신입사원을 뽑는 경우에 해당하는데 이 방식 역시 경력직 사원을 내정해놓고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형식만 공채인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이같은 경력직 선호 현상과 이로 인한 청년실업의 증가는 우리나라 기업과 산업구조 전반에 걸쳐 기업수익에 따른 탄력적 채용, 연봉을 좇는 경력직 근로자의 순환 근무 보편화 등 다국적기업의 채용 및 인사관리 관행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채용시장 관계자들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는 청년실업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장년층실업 역시 경기상황과 별도로 기업의 인력관리 변화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보아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국내 1433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명예퇴직을 실시한 사업체 중 근속연수를 고려한 업체가 68.4%, 연령을 고려한 업체가 55.5%로 나타났다. 고용조정과정에서 고령자 우선배제라는 차별적인 관행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 시급

이처럼 실업의 양태가 구조적이라는 점에서 그 대안 역시 경기회복을 통한 노동흡수력 제고라든가, 산학연 연계 프로그램과 같은 수준의 차원을 넘어선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무료간병인 사업, 저소득층 집수리 사업, 사랑의 도시락 배달사업, 자원재활용사업 등 이른바 사회적 일자리가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김홍일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운영위원은 “사회적 일자리는 기존 노동시장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일자리이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취약해진 지역사회 주민들의 삶의 질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공익적 성격을 갖는다”면서 “노동시장 재진입이 어려운 계층을 중심으로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참여정부는 다행히 구조적 실업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회적 일자리를 고려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 실업문제의 심각성에 비춰 참여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만들기 사업은 올해 72억 원의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에 250억 원의 예산을 계획하고 있을 뿐이다. 청와대 빈부격차완화TF팀 김수현 비서관은 “한국형 모델이 만들어지면 수천억 원 단위의 예산 투입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 실업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최소한 내년부터라도 대대적인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함께 중·장년 실업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기업이 중장년 이상의 고령자 고용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규제와 인센티브를 병행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연금제도의 성숙 수준에 비춰 고령자의 퇴직시기를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연령차별금지를 입법화하고, 고령자재고용장려금과 고령자 신규고용촉진장려금 제도와 같이 기업에 대한 규제와 인센티브를 동시에 주는 방식으로 중·장년 실업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흥배(참여사회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