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0월 2002-10-24   1663

불로수득 탈세 단죄해야

빈부격차 줄이는 조세개혁 안


최근 조세제도와 관련된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우선 헌법재판소가 부부의 자산소득을 합산과세하는 제도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소득세법 개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제도 보완을 하지 않으면서 단순히 합산과세 규정만 폐지한다면, 자산소득이 많은 계층에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결정이 내려진 뒤 몇몇 법률가, 조세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수긍할 만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헌법재판관들이 전원일치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왜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재산권 보호에는 과감하면서 사회적 기본권 보장에는 소극적인지 의문을 표시하는 이도 있었다. 상당한 사회적 기득권을 가진 판ㆍ검사출신으로 헌법재판소가 채워지는 상황을 바라볼 때, 이런 결정이 ‘특정계층의 이해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헌법을 해석하는 헌법재판소의 구성원들이 어떤 계층을 자신의 사회적 준거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점점 더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또 한 가지 사건을 살펴보자. 얼마 전 국세청은 부동산투기혐의자들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신고소득이 전혀 없는 주부가 아파트 17채를 사들였는가 하면, 신고소득이 전혀 없는 어떤 사람이 서울 강남의 고급주택에 살면서 아파트 4채와 분양권 8개를 사들였다. 이들이 실제 소득이 전혀 없이 투기에 나설 리는 없고, 아마 실제 소득은 있으나 ‘신고한 소득’이 없는 경우일 것이다. 이런 발표를 보고 분통을 터트리지 않은 서민은 드물 것이다.

얼마 전 정부는 부동산 가격안정을 위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부동산 보유세 강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조세저항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언론보도다.

이런 보도가 나온 뒤 행정자치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행정자치부를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과연 부동산 보유세가 제대로 강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후 발표된 행정자치부의 안은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에 힘든 것이었다. 부동산 투기과열지역을 중심으로 재산세를 30∼50% 올린다고 하지만 충분치 않다.

또 현재 주택에 대한 보유세가 건물에 대한 재산세와 토지에 대한 종합토지세로 이원화되어 있는데도, 행정자치부 발표에서 종합토지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행정자치부의 안조차도 서울 강남지역의 반발이 있을 경우 실현이 불투명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면, 행정자치부 관료들은 현행 지방세법의 틀 안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국민이 현행 틀을 유지하라고 했는가? 현재의 지방세법, 특히 부동산에 대한 보유과세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손을 보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행정자치부는 그렇게 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여러 가지 통계수치들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현실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고소득 자영사업자에게 유리한 조세체계

우리나라는 자산가들과 고소득 자영사업자들에게 유리한 조세체계를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도 일부 고소득 자영사업자들의 탈세는 심각한 수준이다. 부동산, 주식, 예금 등의 자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서도 과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상장주식을 사고 팔면서 남긴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비과세가 되고 있고, 비상장주식 양도소득에 대해서도 그 소득이 얼마나 많은지에 관계없이 11% 또는 22%(주민세 포함)의 세율로 분리과세하면 끝이다.

부동산 양도소득세는 허점이 너무 많다. 실거래가가 아니라, 국세청이 정한 기준시가를 가지고 세금을 계산하다보니 실제 발생한 양도소득보다 신고되는 양도소득이 턱없이 적은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탈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명의신탁이나 미등기 전매도 활개를 치고 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차명 예금거래와 차명 주식거래가 성행하고, 차명거래는 곧 탈세로 이어진다. 10년 이상 논의되어 온 부동산 보유세 강화는 아직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같은 가격대라도 강북의 아파트가 강남의 5.5배나 되는 보유세를 물고 있는데도 행정자치부는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조세제도를 통해 빈부격차와 소득격차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 정부는 10%, 20%, 30%, 40%의 네 단계로 되어있던 소득세율을 9%, 18%, 27%, 36%로 각각 낮추었다. 언뜻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세율인하의 혜택은 고소득층에게 집중되었다.

연간 급여가 1800만 원인 사람은 6만 원의 세금이 줄어든 반면, 연간 급여가 4800만 원인 사람은 51만 원, 1억 원인 사람은 196만 원, 2억 원인 사람은 578만 원의 세금이 줄었기 때문이다. 연간 급여가 근로소득세 면세점 이하에 해당하는 사람은 이 조치로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

사실 작년 나라 살림살이는 소득세를 감면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공적자금 등으로 인해 정부의 재정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고소득층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세율인하조치를 취한 것이다.

필자는 이를 보면서 정부 관료들도 ‘고소득층 중심의 사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가 만난 관료들은 ‘고소득층이 세금이 너무 많다고 불평한다’고 말했다. 그 관료들은 고소득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많이 있었겠지만, 면세점 이하 저소득자들은 별로 만나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이 누적될 때, 우리 사회는 머지않아 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중남미 국가들이 극심한 빈부격차 속에서 경제가 침체되고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보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달리 인구밀도가 높고 천연자원이 부족하여 결국 경제성장도 인적 자원에 달려있는 입장이다.

그런데 다수의 사람들이, 특히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로 인해 꿈을 잃어버리고 현실에 절망하게 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빈부격차, 소득격차는 교육격차로 이어지고 있고, 저소득층의 많은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아니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교육은커녕 보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때 ‘경쟁’이란 낱말이 빠질 수 없다. 경쟁이 되려면,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면, 출발에서부터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고, 일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아예 교육과 성장의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부에서는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을 더 낮추자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로 인한 세수결손을 무엇으로 충당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그런 논자들은 그 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복지예산을 줄이자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의 일반회계에 포함된 복지예산 중 실제로 줄일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그렇게 되면 당장 장애인, 정신질환자, 결식아동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타격을 입게 되거나, 사회복지서비스가 중단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미래 세대에게 교육의 기회, 정신 및 육체적 성장의 기회를 공평하게 주려면 더 많은 정부 예산이 복지, 교육, 청소년 분야에 지출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 낮춰야

그렇다면 지금 시급한 조세개혁은 무엇인가? 자산소득과 사업소득에 대한 과세가 미흡하고, 부동산 보유 비용이 너무 낮은 것이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세제개혁의 초점도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조세정책은 결국, 정부가 제 할 일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사회구성원들간에 어떻게 나누어서 지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일하지 않고 얻은 불로소득,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얻고 있는 소득부터 조세정책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원칙적으로 자산소득은 모두 과세 대상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비과세인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빠른 시일 안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 다만 주식시장의 안정과 소액투자자 보호를 위해서 매년 일정금액(예를 들면 연간 3000만 원)까지의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공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주식거래의 투명성 확보에도 필요하다. 주식시장에서 차명 주식거래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차명 주식거래는 비리은폐, 주가조작, 내부정보를 이용한 대주주의 불법거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차명 주식거래가 성행하는 것은 상장주식에 대해서는 세무당국의 감시가 제대로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를 하기 시작하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을 낮춰야 한다. 지금은 연간 금융소득이 4000만 원 이상인 경우만 종합과세 대상으로 되어있어 기준금액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계속 있어 왔다. 더구나 헌법재판소의 부부자산소득 합산과세 제도에 대한 위헌결정에 따라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을 내릴 필요성이 더 커졌다. 이제는 부부간에 명의를 잘 분산시키기만 하면 연간 8000만 원의 금융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종합과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부간 증여세 공제 한도를 축소한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을 2000만 원 이하로 크게 낮출 필요가 있다.

자영사업자의 탈세를 막기 위한 부가가치세법과 소득세법의 정비도 이뤄져야 한다. 신용카드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자영사업자의 탈세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학원, 집단상가, 일부 의료업(한의원, 치과병원, 성형외과 등), 변호사 등 현금거래가 많은 업종의 경우 탈세 규모가 엄청난 수준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보완장치가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

부동산에 대한 보유과세도 실효성 있게 시행돼야 한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부터 보유세(재산세 및 종합토지세)의 과세표준이 실제 시가를 반영할 수 있도록 과세표준 산정방식을 바꿔야 한다.

사회공동체의 건강한 유지를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많은 돈을 버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면, 기업도 개인도 경제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일부 갑부들이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지난 몇 년간 소득세율을 낮추는 등 고소득자들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정책을 펴왔다. 그로 인해 저소득층은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의 소득세율이 선진국에 비해서 결코 높은 것도 아니다. 고소득층과 대기업에게 더 이상의 감세 혜택을 주어서는 안 된다.

대신 정부는 예산집행을 투명하게 하고, 위법한 예산집행행위에 대해 납세자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납세자 소송제도와 같이 예산집행의 결과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는 제도를 도입해 납세자를 주권자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세금을 낼 만큼 내고 주권자의 권리를 명실상부하게 누리도록 하는 사회풍토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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