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2월 2002-11-29   932

‘나는 이방인입니다’ 화상환자가 1인시위에 나선 이유

소수자인권시리즈4-


29년 전 전남 목포의 한 주택. 생후 일곱 달 된 아기가 고통에 못 이겨 울부짖고 있다. 아궁이 속에 빠진 장난감을 꺼내려다 그만 활활 타고 있는 연탄불 속으로 머리가 빠져버린 것이다.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아들을 정신없이 아궁이에서 끄집어낸 어머니는 급히 병원에 달려갔지만 얼굴 3도 화상이란 진단이 나왔다. 아기는 기사회생했지만 세상은 아궁이 속의 불보다 더 쓰라린 고통을 안겨줬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에서 비상근 간사로 일하고 있는 김광욱 씨(29세)의 악몽 같은 기억이다. 바람결에 동장군의 싸늘한 입김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11월, 그는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화상의 후유증으로 한쪽 귀가 녹아버려 잘 들리지 않고, 눈조차 감을 수 없는 상태로 28년을 살아오면서 시력도 많이 상했다. 얼굴 색은 자외선의 영향으로 점점 검게 변하고 있다. 피부가 당겨 턱이 자라지 못했고 입을 제대로 벌리지 못해 이를 뽑으려면 볼을 절개해야 한다. 머리카락도 반수 이상이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1인 시위에 나선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꿈은 따로 있다

“나는 사회운동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가 1인 시위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영어교사나 학원 강사를 하는 게 꿈이었지만 얼굴 때문에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습니다. 취직을 하기 위해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성우 시험도 봤고 공사장에도 나갔지만 아무데서도 나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 죄송해 수술은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남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수술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화상이 안겨준 아픈 기억들은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가 되어 있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회상할 때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기도 했다.

“식당에 가면 손님들 밥맛 떨어지게 한다고 내쫓기기 일쑤였고 목욕탕에 가면 모두들 전염병자 취급했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들이 슬금슬금 피해 갑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은 고등학교 때 한 여중생이 제 얼굴을 보고 길에서 소리를 지르고 쓰러진 일입니다. 그때 내가 과연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나는 더 놀랐습니다. 그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면서 그의 좌절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갔다.

“영어를 전공하고 교사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육대학원에 가려고 했지만 교수님이 말렸습니다.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는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정말 선생님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한 사립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아버지가 고등학교에서 교감 선생님을 지내셨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학교가 있었습니다. 교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내가 다른 사람과 실력이 동등하다면 나를 교사로 뽑을 수 있냐구요. 교장은 뽑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발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화상환자의 수업을 아이들이 반길 리 없다고 했습니다. 자존심 강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부탁하고 애원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과외교사나 학원강사 자리도 알아봤지만 마찬가지였다. 할수없이 마음에도 없었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동생이 행정자치부에 알아보더니 불필요한 도전이라고 했습니다. 귀밑에 2cm의 화상을 입은 사람이 시험에 세 번이나 합격했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오히려 시험을 치기로 했습니다. 시험에 합격하고도 면접에서 화상 때문에 떨어지면 국가를 고발하기 위해서였지요. 1년 동안 공부했지만 필기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공무원을 제가 원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한다는 것이 무모한 일로 생각됐습니다.”

그가 지난 3년 동안 거둔 취업성적표는 691전 691패.

내년부터 장애인에 포함시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0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병원을 찾는 환자 중 화상과 피부가 썩어들어가는 부식환자는 약 0.7%로 국민 100명 중 1명 정도는 화상과 부식으로 고통받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화상환자를 장애인에 포함시킬 예정이지만 의료서비스 등 구체적인 권리보장 계획은 아직 세워져 있지 않다. 한국화상가족협회도 화상환자의 사회적 보호장치 마련을 위한 법 제정을 목표로 지난 9월부터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광욱 씨는 화상환자가 수술을 받을 경우 최소한 의료보험 혜택이라도 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수술을 하는 데 최소 1억 원이 든다고 합니다. 화상환자 수술이 어디 쌍꺼풀 수술과 같습니까? 미용 성형이 아니라 재건 성형이지만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합니다. 그런 상황이 저를 1인 시위에 나서게 한 것이지요. 화상환자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죠.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화상환자의 현실을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고 싶습니다.”

일그러진 얼굴 때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피해를 본 그는 차라리 몸 전체에 화상을 입더라도 얼굴 하나 온전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모델이던 젊은 여성이 사고로 온 몸이 녹은 것을 보고 비로소 자신의 처지가 다행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장애인도, 그렇다고 비장애인도 아닌 현실이다. 몸은 온전하지만 얼굴 화상이 걸림돌이 되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스물아홉 살 젊은이는 스스로를 이 사회의 이방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지난 5월 인터넷 취업사이트 인크루트(http://www.incruit. com)와 계약을 맺고 ‘테스’라는 이름으로 취업실패 수기를 올리고 있는데, 네티즌들에게 격려 메일(tesstess73@hanmail.net)을 받을 때 제일 힘을 얻는다고 했다.

또 하나의 소망은 그가 초등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와 인크루트에 올린 글을 토대로 연말쯤에 책을 내는 것이라고 했다. 29년 동안 세상과 겪은 싸움과 가슴 절절한 고독이 담길 예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함성구 사무관은 “얼굴 화상 자체로 공무원 시험 등에서 차별받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실제로 올해 얼굴 화상환자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기업의 경우 화상을 불합격 이유로 공식적으로 밝혔다면 용모상의 차별로 볼 수 있지만 용모 때문에 불합격 처리를 하더라도 다른 이유를 대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언제쯤이면 은행이나 사무실, 관공서나 학교에서 젊고 용모단정한 남녀는 물론이고 머리가 허연 노인, 화상환자, 장애인 등 소외계층이 함께 일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을까.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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