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1월 2002-10-30   561

‘정치학자 대부분이 줄서기에 가담했을 것’

“정치학자 대부분이

줄서기에 가담했을 것”

선거를 바라보는 정치학자들의 생각

대통령선거는 단순히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의미만 갖고 있지 않다. 선거를 통해 권력이 재편되며, 선거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현안들이 드러나고, 그 해결방안이 다양하게 모색되는 것이다. 물론 역대 권력 재편이 대통령과 그 측근만 바뀔 뿐 한국사회를 지배해왔던 보수 기득권층은 여전히 건재해왔다. 또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해결방안도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되곤 했다. 그래도 역시 대통령 선거는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정치불신이니 무관심이니 해도, 욕을 하면서도 선거를 거부하고, 후보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선거에 대한 관심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선거를 바라보는 관점은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인가’에 쏠려 있다. 정당이나 후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론과 유권자들도 모두 이런 관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누가’ 대통령에 뽑히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다. 선거는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선거인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좋은 대통령’을 뽑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서 대선을 바라보아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유권자들이 선거나 후보를 직접 접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 보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하게 된다. 따라서 언론이 운동경기를 중계방송하듯이 ‘누가누가 잘하나’ 식으로 보도하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는 유권자들의 관점도 언론을 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선거를 바라보는 정치학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정치학자들의 시각은 일반인들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 그러나 정치학자들의 대선에 대한 관심 또한 뜻밖에도 승패에 달려 있었다. 심층적인 분석보다는 언론의 지지도나 개인적인 호감 정도를 근거로 누가 이길 것인가를 점치는 수준에서 벗어난 담론들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어 대통령 당선이라는 월계관을 쓸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정치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유지해 가는 중요한 정치과정을 흥미로운 한 판 게임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ㄱ대학의 최모 교수는 정치학자의 90% 정도가 줄서기에 가담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학자가 자신의 연구가 정치개혁 또는 국가발전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기보다는 특정 정치인의 참모가 되어 선거의 승리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그 논공행상을 은근히 원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선 캠프에 참여한 정치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대외에 알려지는 것을 다소 꺼려하는 분위기이다. 외도를 한다는 이미지를 우려하는 경우는 이해가 가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특히 이회창 후보 진영에 참여한 몇 학자는 자신은 정치개혁에 관련된 조언을 할 기회가 마련돼 조언만 했을 뿐 캠프에 참여하는 것도, 또 줄서기를 하는 것도 절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회창 후보 진영에 참여하는 정치학자들은 이 후보가 알려진 것과는 달리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 후보 옹호론을 내세워 자신의 참여를 합리화시키려 애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반면에 노무현 후보를 돕는 정치학자들은 노 후보의 개혁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자신이 본 노 후보의 약점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어쨌든 대선 캠프에 참여한 정치학자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후보가 올바른 정책을 채택하면 좋지 않느냐고 입을 모은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 진영에 합류한 정치학자들은 다소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ㅅ대학의 조모 교수는 권영길 후보의 정치관련 공약들은 무늬만 화려한 장밋빛이 아니라 실제로 한국정치의 기본 틀거리 자체를 바꿔놓을 획기적인 정책임을 장담한다. 다만 언론과 유권자의 무관심으로 묻혀버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의 의미, 차기 대통령의 조건과 해결과제, 각 후보들의 정책 비교, 올바른 정치개혁의 방향과 과제 등 선거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글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손혁재 본지 편집위원·정치학박사 nurison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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