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0월 2002-10-24   1178

시민운동은 왜 병력비리에 침묵하고 있습니까-병풍핵심 김대업의 심경토로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거대 권력의 대형 “국기문란” 사건을 폭로한 의정하사관 출신 김대업 씨. 그는 이 시대의 드문 “의인”인가, 아니면 특정정당의 사주를 받은 희대의 “사기꾼”인가. 그의 말 한마디에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정국의 대지각변동마저 예상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를 만나보았다. 편집자 주

“인권 지킴이를 자임해 왔던 그 많던 시민단체들은 도대체 어디 갔습니까.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김대업 죽이기’에 나섰다. 최근 나의 판결문을 불법적으로 입수해 언론에 공개했고, 국회의원들이 백주대낮에 떼거리로 대구에 몰려가 전처가 운영하는 식당을 세무조사시키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이래서야 ‘내부비리 고발자’들이 양심선언을 하겠나. 믿었던 시민단체마저도 침묵하는데….”

지난 17일 강남역 부근의 법무법인 한강 사무실에서 만난 김대업 씨(41세)는 시민운동에 대한 서운한 감정부터 토로했다. 내부고발자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이 한나라당의 ‘폭거’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돼 공격을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익을 외쳤던 시민단체들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시민운동에 대한 불만을 계속 이어갔다.

“‘정연 씨의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관련 기사가 나간 뒤 4개월여 동안 제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신변위협이었다. 밤에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있어야죠. 협박과 회유 전화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폭로’를 결심하면서부터 당연히 감내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어려웠던 것은 언론의 횡포였다. 한나라당이 나에 대한 허위사실을 발표하면 조·중·동(일간지)은 그대로 보도했다. 내가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말이다. 나는 무차별적으로 한나라당과 거대 신문들로부터 인권유린을 받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도 시민운동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 두 아들의 비리문제가 터졌을 때만 해도 시민단체들은 연일 성명 등을 통해 검찰의 공정한 수사, 대통령의 사과까지 촉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했었다. 하지만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장남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이 제기된 뒤 시민단체들이 보인 반응은 거의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검찰청에 몰려가 “이 사건을 서울지검 특수1부에 배당하지 말라”면서 검찰의 사건 배당까지 문제삼고 나섰을 때에도 참여연대만이 성명을 발표했을 정도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시민운동단체들은 지난 10여 년 간 줄곧 유지해 온 ‘정치적 중립성’에 자칫 심각한 훼손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을 법하다.

“얼마 전까지만도 ‘낙선운동’ 하지 않았나. 나는 그게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고 보지 않는다. 부패한 사람들을 지도자로 뽑지 말자는 것 아니었나. 그걸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해석했지만, 시민단체들이 그때 ‘우리는 정치한다’라면서 나서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병역비리를 저지른 사람을 국가 지도자로 뽑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나섰다. 나의 관심사는 정연 씨가 병역비리를 ‘했나’ ‘안했나’에 대한 진실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그걸 정치적으로 해석해 공격하고 있다. 낙선운동에 나섰던 시민운동과 내가 무엇이 다른가.”

정연 씨는 일개 병역비리 사범 중의 하나였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 많은 병역비리사범 가운데 이회창 후보를 첫 타깃으로 설정한 것일까.

과거 병역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회창인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충분한 것 아닌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누차 얘기했듯이 이정연 씨는 병역비리 수사 때 드러난 한 명의 병역비리 사범에 불과했다. 당시 이회창 씨는 국회의원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기도 하다. 병역비리를 저지르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이 군 최고 통수권자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건 국가안보의 문제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누가 군에 가겠다고 하겠는가.”

민주당과의 유착설도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럼 내 주변에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에서 내 계좌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직접 검찰에 내 계좌를 추적해 보라고 했다. 내 뒷배경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한나라당은 지금도 자체적으로 조사해 만약 내 뒤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런 물증을 제시할 능력을 갖고 있다. 또 한나라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번 국감에서 나를 증인으로 불러 밝힐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이를 스스로 포기했다.”

일부에서는 무모한 싸움이라는 말도 있다. 또 일부에서는 흘러간 옛노래라는 말도 한다. 지난 97년 ‘양심선언’을 했다가 구속된 바 있는 이재왕 씨와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이재왕 씨와는 다르다. 그는 자기가 겪은 일을 가지고 이야기했고, 정권이 교체되기 전에 공안검찰에서 수사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수사상 밝혀진 얘기를 공개한 것이다. 당시 병무비리에 참여했던 수사관들은 이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걸 내가 공개한 것뿐이다. 무모한 싸움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미 밝혀진 병역비리가 다시 덮인다면 대한민국에 살 이유가 없다.”

수사상 밝혀진 얘기인데 왜 그때는 문제되지 않았나.

“공소시효가 지난 것이었기 때문에 문제삼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일부 세력에 의해 수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은 것도 그 이유이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고석 대령의 수사방해 문제 말인가.

“그렇다. 나는 고석 대령에게 정연 씨의 병역비리 혐의를 분명히 보고했다. 그런데 고석 대령은 그런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고석 대령이 도끼로 부수고 탈취해 간 이명현 중령(1차 병무비리 수사팀장)의 캐비닛에는 사회관심자원 등 주요 인사들과 기무?헌병 등의 병역비리 혐의 내용이 들어있었는데 제대로 수사를 진척시키지 않았다.”

98~99년 조직적으로 병역비리 수사 방해했다

그래서 3차 수사팀(특별팀)이 구성된 것 아닌가. 기무·헌병 등 주요 장성들을 전담 수사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3차팀에 파견나갔던 검찰관들에게 물어봐라. 당시 김인종 법무관리관 보좌관이 대폭적으로 지원해 준다고 약속해 놓고도 책상 1개, 전화기 1개, 못 쓰는 컴퓨터 1개만 덜렁 내던져주고 모른 체했다고 한다. 또 수사팀이 막상 수사하려니까, ‘해체한다’ ‘휴가가라’는 등 계속 딴지를 걸었다고 한다. 이래 놓고서 옛날에 다 검증된 것이라고 한다. 검증된 게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잘난 놈들은 다 빠져나가고, 잔챙이들만 남아서 옥살이했는데. 그러고도 내가 병역비리 문제를 제기하니까 그 잘난 한나라당, 군대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 거대 언론들이 다 달라붙어 수사하지 말라고 한다. 이건 부패를 부추기는 꼴이다. 그리고 고석 대령의 수사축소·은폐는 특별팀 수사 당시 기무부대원 김00씨의 진술로 모두 밝혀졌다.”

김대업 씨는 최근 국감 증언대에 세워달라면서 국회 앞에서 시간날 때마다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마도 헌정사상 처음 있는 진풍경일 것이다.

1인 시위를 벌이는 이유는.

“한나라당은 뒤에서 내 욕만 하고 있다. 그걸 언론들이 다 받아쓴다. 나는 해명할 기회가 없다. 그래서 국감 증언대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의혹들을 다 얘기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지금껏 주장해 왔듯이 정연 씨의 병역면제가 떳떳하다면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검사 출신 나리들이 나를 증언대에 세워놓고 심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내 뒤에서 그처럼 서슬 퍼런 사람들이 왜 내 앞에서는 쩔쩔매는지 모르겠다. 결국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두려운 것이다. 김길부 씨도 검찰에서 나와 대질신문을 벌써 4번이나 피했고, 고석 대령도 1번 시도했으나, 거부했다.”

얼마 전 현역 국회의원 12명의 병역비리를 공개하겠다고 했고, 『조선일보』 일가의 병역비리도 공개하겠다고 했다. 누구인지 말해줄 수 없나. 공개 시점은.

“현재는 이회창 씨 두 아들에 대한 병역비리 의혹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지금 바로 공개하면 본질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그래서 공개를 꺼리는 것이다. 추석이 지나고 검찰의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즈음에 국회의원들과 『조선일보』의 사주와 일부 간부들의 병역비리 혐의를 공개할 예정이다.”

어쨌든 한나라당은 김대업 씨 개인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심경은 어떤가.

“한나라당은 공당이다. 하지만 이정연 씨는 일개 사인이다.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야당의원들이 한 개인의 비리를 무마하기 위해 저렇게 나서는 것을 볼 때 오히려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남경필 대변인은 공당의 대변인이기보다, 이 후보의 집을 지키는 집강아지처럼 보인다. 나는 어떠한가. 언론이 받아주지 않더라도 나에 대한 의혹을 내가 나서서 해명하고 있다. 이회창 후보도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 왜 정연 씨의 서울대병원 91년 진단서만 없는지, 왜 90년에 병사용 진단서를 끊었는데, 병적기록표 상에는 이것이 드러나 있지 않는지. 나에 대해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개해 놓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혹에 대해서는 왜 털끝 하나 공개하기를 꺼리는가. 국민들은 그 진실을 알 것이다.”

왜 김대업 씨는 자신이 공격을 당하면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내가 병무비리 수사에 협조하기 시작한 것은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간 전과 사실에 대한 죄씻음 차원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수사에 협조함으로써 나 자신의 과거와 완전히 절연하고 싶었다. 이래야만 내가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이 싸움을 하면서 나는 또 다른 명분을 얻었다. 지금 내가 물러선다면 병역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앞으로 힘있고 지위가 높은 사회 특수층의 병역비리는 모두 은폐돼버리고 앞으로 병역비리가 또다시 싹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철저히 싹을 없애자는 것이다.”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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