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2월 2000-12-01   1082

국보법과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함수관계는?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신청이 10월 20일까지 접수 마감됐다. 8월 21일부터 두달여 동안 신청 접수한 사례는 총 8,395건으로 집계됐다. 1차 접수는 올해로 마감됐고, 내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2, 3차 접수가 있을 예정이다. 보상은 ‘접수 후 90일 내’에 하도록 정해져 있으니 12월부터는 보상금지급이나 명예회복 조치가 취해질 전망이다. 이 보상신청과 관련한 견해는 몇 가지로 나눠진다. 첫째 대상자에 포함되는 일부는 “김대중정부가 민주화운동을 돈으로 떼우려는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 혹은 “이렇게 돈으로 보상받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한 것 아니다”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반면 신청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명예회복보상법이 가지고 있는 한계도 분명하지만, 국가에 의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 대한 보상도 민주화 과정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또, 한편에선 “돈이 해결의 전부는 아니지만 사망이나 신체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한 보상”이라는 견해도 내비친다.

신청자 중에는 ‘민주화운동’ 대상자 범위에 포함될 것인가 논란이 되었던 국가보안법 구속자·수배자들 600여 명도 포함되었다. 이뿐 아니라 70년∼80년대 노동운동 관련자 300여 명도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를 통해 공동접수한 상황이다. 이들을 통해 지난 민주화운동에 대한 명예회복·보상 신청이 현재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들어보기로 하자.

“우리는 당시의 독재정권에 근본적으로 저항했고, 민주화를 위해 체제 전반에 대해 문제제기한 겁니다.”

대상자에서 국가보안법 관련자를 제외하려는 움직임에 항의하는 이은경 씨(41세)의 말이다. 그는 사노맹 중앙위원으로 활동, 오랜 수배생활 후 91년 구속되어 97년 출소했다. 구속 당시 고문피해도 있었지만 그는 “그 당시 운동권 사람들 구속되면 그 정도 고문은 받았다”며 당시 같은 사건으로 구속된 90여 명에 비해 “더 심하게 받은 것은 아니”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남편 역시 사노맹 사건 관련으로 복역한 바 있다. 남편은 안기부 지하 고문실에서 받은 고문으로 허리디스크를 얻기도 했다. 부부의 나이가 모두 40줄을 넘겼지만 10년이 넘는 세월동안의 경력이라곤 민주화운동과 5년의 감옥생활 뿐이다. 따라서 현실사회 적응에는 어려움이 많다. 현재 이들 부부는 소위 무직자로 살고 있다.

“그 경력으로 회사 취직도 안돼, 가족들이 도와줘 조그만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현재는 아르바이트를 해 약간의 수입으로 생활을 꾸려갑니다.” 이은경 씨의 말이다.

그가 출소 후 겪은 심리적 공황은 남달랐다. 특히 내내 따라다니는 ‘빨갱이’라는 꼬리표는 안정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늘 방해가 됐다. 무엇보다 ‘빨갱이’라는 꼬리표에 얹어진 ‘무직자’, ‘무능력자’라는 수식어는 그를 더욱 힘겹게 한다.

그러나 사회는 국가권력이 행한 인간존엄성의 훼손과 인권침해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해주기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자는 어떻게든 배제되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구분짓고 나섰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진전되었다지만 ‘레드포비아’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은경 씨와 같은 국보법 피해자들의 삶은 평탄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은경 씨는 국보법 구속·수배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선 투옥시간에 대한 경제적 보상뿐 아니라 출소 후 사회적응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제공, 변화된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는 직업교육과 사회토론의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사노맹, 남민련 사건, 인민노련 등과 같은 국보법 피해자들을 명예회복보상법 대상자에서 제외시켜 또다시 폄하하거나 왜곡시켜서는 안될 것”이라며 공동으로 대응할 것을 호소했다.

한편, 지난 민주화운동 과정의 중요한 한 축이었던 노동운동 역시 대상자 포함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최근 70년∼80년대 노동운동의 선구자였던 청계피복노조 조합원 26명은 보상심의위원회에 집단접수를 했다. 당시 조합원이었던 민종덕 씨(48세)의 얘기를 들어보자.

“청계피복노조의 피해상황은 전태일의 죽음, 노조탄압과 노조원의 집단 구속, 노조 내 노동교실 강제폐쇄와 전태일의 어머니였던 이소선 씨 구속, 경찰들의 노조사무실 강제난입으로 인한 노조원의 부상 등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당시 청계피복노조가 운영하던 노동교실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청소년 노동자들의 배움터였는데 경찰에 의해 강제폐쇄 당했다. 또한 이번 신청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사실이 있다. 밤에는 노동교실에서 중학교과정 공부를 하고 낮에는 피복공장에서 일하던 당시 미성년자 임미경 씨(당시 나이 14세)를 구속하기 위해 경찰이 그의 주민등록번호까지 위조했던 것. 물론 이 정도 불법적인 경찰의 행동은 당시 노조탄압 현실에선 그냥 웃고 말 정도의 경미한 일이다.

“우리 자신도 어떤 전과기록이 있는지 잘 몰라요. 저도 불구속 입건을 포함해 수십 번 경찰서를 들락거리고, 1년 6개월의 실형까지 살았는데, 저도 제 전과기록 보고는 놀라죠. 그 당시 노동운동 하다 구속되면 폭력, 공무집행방해, 방화, 건축법위반 등의 죄목을 적용받았어요.”

이것은 당시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을 파렴치범 혹은 폭력범으로 매도하기 위해 경찰이 의도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개인이 받은 이런 불이익 외에도 노조가 국가 공권력에 의해 받은 피해도 보상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경찰은 노조 사무실을 강제로 폐쇄하고, 불법적으로 침입해 노조사무실 집기를 끌어내고, 각종 장부와 통장을 탈취하는 행위를 자행했다.

“당시엔 노조 사무실 얻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사무실을 얻으면 경찰이 건물주인을 협박해 쫓아내고, 쫓아내고 해서 나중에는 우리가 사무실에 쓸 공간을 구입했습니다. 개인 소유의 건물인데 경찰이 함부로 폐쇄하고 들어온 거죠.”

두 사례에서 공히 지적된 바는 “이번 기회가 반드시 지난 역사청산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해당 접수자들이 우려하는 바는 정부가 5·18특별법의 경우처럼 보상금 지급으로 역사를 매듭짓고 끝내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실제로 5·18특별법의 경우 명예회복 조치보다 보상금 지급에 치우쳐져 형평의 논란이 제기됐고, 애초의 취지와는 달리 5·18광주항쟁의 뜻을 살리지 못해 많은 이들에게 실망감을 주었다.

이런 우려는 전두환·노태우 독재정권 관련자들이 여전히 처벌받지 않고 있는 데다 역사청산의 의미가 퇴색된 시점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해 정부가 시혜적 차원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연대측은 국보법 피해자와 민중생존권투쟁 관련자들에 대해 “국보법 피해자들의 대다수는 그 시대 상황을 억누르던 국가권력과의 싸움을 치른 것이므로, 민주화운동의 피해자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앞으로 향후 법개정 투쟁을 통해 대상자에 포함시킬 계획을 밝혔다.

통일재단 ·묘지성역화 ·추모사업 등 논의 활발

민주화운동보상법이 흐터진 동지를 찾아준다?

명예회복 ·보상 신청접수를 통해 예전에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흩어졌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모이게 된 계기가 형성되었다. 유신정권에 대항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70년대 긴급조치세대 모임’. 같은 시대의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민주화 주체로 다시 결의하기 위해 모이게 된 것. 이런 대부분의 모임에선 공동접수를 통한 공동대응과 보상금 지급시 공동기금마련이라는 논의가 이뤄졌다. 예컨대 한국청년연합회, 전대협동우회, 희망연대는 보상금이 지급되면 ‘통일재단’을 마련하자는 의견을 공유하다가 유가협에서 추진하는 ‘묘지성역화’ 등의 추모사업계획 등이 알려지지 뜻을 같이 하고 있다. 또한 처음부터 추모사업이나 별도 기금조성의 취지를 밝히고 공동접수한 단체는 대전충남지역 국민연대. 대전충남지역 신청자 380명 중 현재 250여 명은 추모사업을 위한 공동기금 마련에 동의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논의가 시작된 처음과 달리 현재는 공동기금마련 등과 같은 추후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전된 내용은 없다. 그 이유는 심의위원회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 지 불투명한 상태이기 때문. 또한 보상금 지급도 사망자 ·행방불명자 ·상이자에 한하고 유죄판결 ·해직 ·학사징계에 대해선 보상금은 없고, 생활지원금만 받게 될 여지가 있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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