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1월 2000-11-01   1012

현대판 노비 비정규직

잔업·철야 뼈빠지게 일해봤자 한 달 뒤 손에 쥐어지는 것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얄팍한 월급봉투뿐이다. 충성스레 일만 하다가 쓰러져 눕더라도 산재 혜택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월차, 생휴 역시 꿈도 꿀 수 없는 일. 전태일 열사가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외치며 분신했던 70년대 얘기는 물론 아니다. 21세기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주소다. 신자유주의 파고가 몰고온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부산물로 노동자의 53%가 비정규직이다. 지금 두 명 중 한 명이 ‘일하는 빈곤’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오늘도 악몽 같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농성 118일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인 양 붉은 스프레이가 뿌려진 거대한 쇼윈도우. 지난 10월 11일 오전 9시 중계동 2001아울렛 매장 정문 계단에는 이를 배경으로 20여 명의 이랜드 노조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전날 비가 내려 기온이 급강하한 탓인지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한 달 내내 잔업해도 월 60만 원

“며칠 있으면 1년째입니다. 1년 내내 먼지를 온통 뒤집어쓰면서 저녁 9∼10시까지 잔업해도 한 달에 70만 원 채우기도 힘들어요. 이게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한쪽 구석에서 김밥을 먹고 있던 김미민 씨(37세)는 울화통이 터지나보다. 그의 직장은 경기도 군포시 부곡동에 위치한 복합물류센터 F동, 700여 평 남짓 되는 콘크리트 공간이다. 사실 기둥만 몇 개 있지 허허벌판이나 마찬가지다. 그 흔한 환풍기는 물론 냉난방 시설조차 없다. 겨울철에는 솜바지까지 합쳐 위아래로 열 벌 정도의 옷가지를 껴입어야 작업이 가능할 정도다. 여름에는 그야말로 찜통이 따로 없다. 숨이 꽉 막힐 정도로 덥고, 게다가 재고 의류에서 날리는 먼지 때문에 1년 내내 약봉지를 끼고 살아야 할 지경이다.

그는 이곳에서 이랜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매일 이곳에 출근해 종이 박스에 옷을 스타일별로 분류하고, 옷가지가 든 무거운 박스를 자신의 키보다 더 높이 쌓아야만 한다. 지난 여름엔 한 아줌마는 쌓아놓은 박스가 무너지면서 머리를 다치기도 했다.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지만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거의 매일 야근을 해왔다.

이렇게 한 달 내내 일하면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60∼70만 원의 ‘잡급’. 이들은 매달 월급명세표가 아니라 ‘잡급’이라고 적힌 명세표를 받는다. 잔업마저 안 한다면 1달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해도 50만6,000원만을 손에 쥘 수 있다.

이날 파업 현장에서 만난 유상헌 씨(27세)도 마찬가지다. 그가 하는 일은 이랜드 F동에서 박스를 운반하고 쌓는 일. 물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재고기록을 정리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실제 업무를 보면 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역시 정규직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50만6,000원의 ‘잡급’을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이다.

이랜드 노조는 올해 임단협 때 회사측이 수평이동 보장조항 삭제, 쟁의행위 제한 등 노조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항을 단협안에 넣는 바람에 이 같은 파업으로 치닫게 됐다. 하지만 회사측에서 봤을 때 이보다 더 민감한 문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현재 노조는 비정규직과 함께 싸우고 있다.

“이랜드는 지난해 300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현재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500여 명이나 더 많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흑자는 비정규직의 희생이 없었다면 가능하지도 않았죠.” 유상헌 씨의 말이다. 이쯤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IMF의 파고를 온몸으로 돌파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신빈곤층으로 전락한 비정규직 노동자

‘일하는 빈곤층’으로 불리는 비정규직의 확산. IMF는 이를 정당화했고, 기업들은 앞다투어 비정규직을 채용했다.어떤 사업장에서는 정규직을 정리해고하고 그 빈자리에 해고된 정규직원을 비정규직으로 다시 채용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명목으로 정부의 묵인 아래 진행되고 있는 노동시장의 이 같은 변화는 순식간에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10년 이전으로 후퇴시켜 버렸다. 신빈곤층으로 전락한 비정규직 노동자. 이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고철윤 씨(38세). 그는 한국통신으로부터 지난 10월 12일 해고통지를 받았다. 84년 한국통신의 용역회사에 통신공으로 입사한 뒤 16년째 사실상 줄곧 일해온 직장이다. 전화가설 도급이 없어진 지난 96년부터는 동대문전화국에 통신공사 임시직으로 입사했다. 당초 월급은 145만 원. 도급 일할 때 받았던 월급 200만 원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그래도 생활은 그럭저럭 할 만했다.

하지만 지난 98년 5월 회사측은 계약갱신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월급을 93만 원으로 삭감했다. 이에 항의했지만 “IMF 상황이고 직원도 삭감했다”며 “사정이 좋아지면 올려주겠다”고 구두 약속한 뒤 “싫으면 나가라”고 말했단다. 당시 정규직원은 1회에 걸쳐 상여금 100%를 반납하는 것으로 허리띠 졸라매기를 끝냈다. 차별적 조치였던 셈이다.

상황은 여기서 종료되지 않았다. 99년 1월 계약갱신을 하면서 다시 84만 원으로 삭감됐고, 올해 들어 겨우 1만 원이 올랐다. 대신 계약기간이 3개월로 줄어들었다. 여기서 한술 더 떠 4월 재계약 당시 회사측은 ‘이후에는 재계약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1개월짜리 계약서를 들고 나왔다. 사실상 해고 예보통보였던 셈이다. 이에 반발하자 회사측은 한발 물러났지만 7월 재계약부터는 비정규직의 월급을 차등지급했다.

‘3개월 노비문서’ 비정규직 계약지침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계약직 노동자들은 1월 ‘한국통신 계약직협의회’를 구성했고, 이어 3월 계약직 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그가 속한 부서는 동대문전화국 고객시설과. 현장 근무하는 비정규직은 11명 정도. 나머지 8∼9명은 정규직이다. 이들은 똑같은 현장업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규직은 최소 2,200만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과의 월급차가 천양지차다.

비정규직의 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통신에는 계약직 관리지침이란 게 있다. 평점을 매겨서 80점 미만인 자는 재계약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관리자가 주는 점수가 20점이기 때문에 그에게 밉보이면 다른 분야에서 다 만점을 맞아도 재계약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따라서 관리자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계약직 노동자들은 이 지침을 ‘3개월 노비문서’라고 한다.

“이뿐이 아닙니다. 관리자들은 정규직에게는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도 ‘씨’자를 붙이는데 나한테는 그냥 이름만 부릅니다. 같은 직장 내에서도 2등 인생이죠.” 고씨의 말이다.

그의 해고 이유는 무단결근 3번과 조퇴 1번. 2번의 집회 참석과 1번의 공청회가 16년 동안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다닌 직장으로부터 쫓겨난 공식적 이유였다. 같은 날인 10일 징계위원회를 열었던 성북전화국, 혜화전화국, 강동전화국, 대방전화국도 그로부터 이틀 뒤인 12일 동시에 노조 간부급 4명을 해고했다.

비정규직 고용 추세는 소위 ‘사회적 공기’라고 일컬어지는 방송사에까지 침투했다. KBS, MBC, SBS, YTN 등 방송사에서도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 중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파견직인 차량운전기사들. 방송사 비정규직노동조합 주봉희 위원장(47세)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지난 해 해직됐다.

주 위원장은 95년 1월 초에 KBS에 비정규직 운전기사로 채용됐다. 방송사 운전기사 채용방식은 두 가지. 회사차를 몰 수 있는 운전기사를 인력회사로부터 파견받거나, 방송사의 입찰에 응찰해 최저가 낙찰된 렌트카 업체가 인력회사에 요청해 렌트카와 운전기사를 함께 파견하는 방식. 후자를 2중 파견이라 부른다. 그도 후자의 방식으로 방송사에서 파견근무를 해왔다.

이들에게 연월차는 없다. 또 휴일근무는 의무적이다. 출퇴근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10시간. 세금을 떼고 나면 68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 턱없이 적은 월급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 연장근로를 자청한다. 하지만 한 달에 100시간 일해도 월급봉투에 100만 원을 채우기가 어렵다. 왜일까.

가장 큰 원인은 방송사의 최저 입찰제 때문이다. 또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월급도 렌트카 업체와 인력회사를 거치면서 60%로 줄어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은 참고 일을 해왔다. 그나마 이 일마저 없다면 가족들의 생계조차 책임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KBS만해도 운수직으로 일해왔던 파견 노동자는 107명. 이들은 지난해 7월 1일 파견법이 시행되기 이틀 전에 전부 해고됐다. 이 때 해고된 파견 노동자는 총 227명이었다. SBS에서는 442명, MBC에서는 160명의 파견직 노동자가 해고됐다.

“파견직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된 파견법은 되레 열악한 근로조건조차 참아가며 일해왔던 노동자들을 쫓아내는 빌미가 됐습니다. 파견직으로 2년 경과된 뒤 1일 이상 근무시 정규직으로 본다는 파견법 6조3항의 규정이 결국 우리의 목을 자른 셈입니다.” 주 위원장의 말이다. 그가 파견법 철폐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2중 파견직 2중으로 착취당해

지난 11일 찾아간 경기도 용인시 구성읍 보정리 산 32-1번지에 위치한 한성컨트리클럽. 평일인데도 고급 승용차들이 끊임없이 정문을 드나들고 있다. ‘귀족 스포츠’라는 말이 새삼 실감날 정도다. 이곳으로부터 40여 미터 떨어진 공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천막 한 채. 바로 ‘캐디’라 불리는 경기보조원들의 농성텐트다. 10년 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한성컨트리클럽 경기보조원 노동조합 지부장 이영화 씨(35세)로부터 이들이 농성을 하게 된 사연을 들어보자.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려고 지난 6월 노조를 설립했어요. 7월 내내 단체교섭을 통해 노동조합을 인정하라고 요구했죠. 하지만 회사측은 교섭할 대상이 아니라며 대화조차 거부하며 자꾸 미뤘습니다. 그러다가 노조간부와 대의원들에게는 손님들의 (골프)백을 주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부당해고죠. 회사는 또 캐디에게 ‘회사 방침에 따르겠다’는 각서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8월 2일 각서에 서명하지 않은 경기보조원 107명의 출장을 정지시켰습니다. 우리(노조)가 계속 투쟁하자 회사측은 24일 전원 원직복직하고 노조를 인정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에 사인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회사측은 노조원을 차별하고 불이익을 줬습니다.”

‘노 캐디 선언’으로 200명 무더기 해고

결국 회사측은 8월 31일 휴장한 뒤 ‘노캐디 선언’을 했다. 경기보조원을 앞으로 고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노조원까지 포함해 200명의 경기보조원이 순식간에 실업자가 된 셈이다. 현재 노조측은 무더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상태다.

이와 관련 회사측의 한 관계자는 “불법파업이기 때문에 우리의 결정은 정당하다”며 “대법원까지 가겠다”고 밝혔다. 결국 2∼3년 동안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며 시간을 끌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기보조원들은 왜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었을까.

경기보조원들은 손님의 골프백을 운반하는 일을 한다. 1팀이 27홀을 돌면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4시간 30분. 성수기에는 2게임을 보조한다. 이들은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골프백을 수동카터(손으로 미는 손수레)에 담아 언덕을 오르내리며 손님들에게 코스를 설명하고, 볼을 칠 시간을 알려준다. 한 팀당 출장 간격은 6분. 이 정도 시간이면 앞팀이 볼에 맞지 않을 정도의 사정거리가 확보될 수 있다.

하지만 볼의 세기에 따라 예상보다 더 멀리 나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평균 하루에 한 번꼴로 다리나 배, 등을 볼에 맞는 불상사가 생긴다. 볼의 위력은 150미터 전방에서 친 볼이 가죽백을 뚫을 정도. 이때 회사측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경기보조원이 스스로 손님과 타협해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병원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노동강도 역시 여자의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 정도다. 성수기인 여름철의 경우 근무시간은 오전 5시부터 8시 30분까지. 2게임을 돌고나면 기진맥진이다. 1게임을 돌아도 자신의 순번이 돌아올 때까지 마냥 휴게실에서 대기해야 한다. 이들은 또 1주일에 한 차례씩 코스 청소를 하고, 볼을 닦는 등의 일을 하지만 보수는 회사가 아니라 손님들로부터 직접 받는다. 게임당 4만 원∼6만 원씩. 10년차인 이 위원장의 한 달 평균 수입은 120만 원 수준이다. 회사로서는 전혀 손해볼 게 없는 장사인 셈이다. 사정은 다른 비정규직노동자에 비해 좀 나을지 몰라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고용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는 처지는 똑같다.

전국의 경기보조원은 2만∼3만 명 정도.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지난해 가을 88컨트리클럽이 노조를 결성한 이래 관악컨트리클럽, 여주컨트리클럽 등 8개 사업장에 이미 노조가 만들어졌지만, 골프장측은 한성컨트리클럽과 같이 ‘노캐디 선언’을 하면서 이에 맞대응하는 상태다. 이 같은 추세라면 상당수의 경기보조원들이 거리로 나앉아야 할 형편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제 현장 노동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무직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확산은 최근 정리해고가 진행되고 있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S은행 본점에서 창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K아무(23세). 2년제 대학을 나온 그는 지난 4월 1일부터 계약직 공채로 이 사무실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연봉은 1,300만 원. 창구에 근무하는 다른 정규직이 2,500∼3,000만 원을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차별대우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11시까지 일해도 야근 수당이 없다.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들은 연차서를 제출하려 해도 “정규 직원이 되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상사의 우회적인 압력에 망설여야 한다. 게다가 이 은행은 재계약 규정 등 비정규직에 대한 원칙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또 인터넷을 통해 비정규직을 모집하고 있다.

이 은행 노조 L부위원장은 “과거에는 단순 사무보조 업무를 비정규직으로 썼지만 최근에는 창구직원까지 비정규직화하는 추세”라며 “인건비는 3분의 1로 줄이고 복지 혜택도 거의 없는 비정규직원에게 과거 정규직이 했던 업무를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고용제한 엄격해야

비정규직의 전사회적 확산. 90년대 중반만 해도 노동자의 40%대에 머물었던 이들이 최근 5∼6년 동안 급속히 증가해 53%를 넘어서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최저생계비 96만 원의 수입조차 올리지 못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우리사회를 대표하는 노동자가 된 셈이다. 이 같은 수치는 OECD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1위를 달리고 있고, 2위인 스페인(32%)과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IMF를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고용유연화 정책을 쓰면서 정리해고하고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것을 용인하는 분위기 속에서 생겨난 신빈곤층의 탄생이다.

이 때문에 퇴직금을 안 주기 위해 11개월 임시직이 등장하는가 하면 그간 노동운동이 힘겹게 이뤄낸 성과라 할 수 있는 휴일보장, 사회보험 적용에 이르기까지 각종 개선된 근로조건이 각 사업장에서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다. 이는 사회정의에 배치되기도 할 뿐더러 그대로 방치할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 주진우 국장은 “비정규직의 고용제한을 엄격히 적용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면서 “위탁계약직인 캐디와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지입차주 등도 실제 노동자로 인정해 노동권이나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판 노비’로 전락한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는 이제 전사회적 인권문제로 등장했다. 또 경제정의 차원에서도 이들이 소득불평등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입법조치가 시급하다.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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