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1437

개고기 도축 합법화 생명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초복을 지나 중복으로 치닫고 있던 때, 『참여사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개고기 도축 합법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는 지긋한 남성의 목소리. 그는 ‘위생’의 측면에서 개고기 도축을 합법화하는 것은 생명윤리를 깨는 가혹한 동물학대라고 주장했다.

김홍신 의원 등은 국내외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미뤄오던 개고기 도축법안을 오는 말복날인 8월 16일을 채택해 발의하리라 한다. 나는 개고기 먹는 것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쯤으로 인식하는 김 의원을 슬프게 생각한다.

개고기를 먹는 것이 우리나라 문화의 자존심인가?

우리나라의 문화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우리 문화는 근본이 생명존중의 문화이다. 이러한 내용은 단군신화에서부터 삼국유사로 이어져 고려조의 문인들의 글에서 근대의 만물일류의 사상을 설파한 조선조 학자는 물론 제비다리를 고쳐준 흥부의 마음씨에까지 면면히 내려오는 사상이다. 삼국유사에는 잡혀먹은 어미 짐승의 뼈가 새끼들을 찾아가 껴안고 있는 것을 보고 깊이 참회한 신라인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또 고려조 문인의 이규보의 글에는, “어느 고약한 사내가 떠돌아 다니는 개를 큰 몽둥이로 쳐죽이는 것을 보고 몹시 불쌍하고 가슴이 아파 앞으로 개고기나 돼지고기를 절대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어느 선인의 이야기가 나와 있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작은 생명을 아끼는 착한 흥부의 마음씨야말로 지탱가능한 미래를 위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할 자랑스러운 문화적 유산이다.

다만 가렴주구와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먹을 것이 없던 옛날 서민문화에서는 개고기를 먹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지금 젊은 세대가 생각도 못하던 많은 것(메뚜기, 번데기, 진달래 등)을 먹었고, 쇠고기국은 한두 번 먹으면 잘 먹었던,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난했어도 개고기는 우리 제삿상에 오르지 않았고, 굿을 하는 경우에도 음식으로 개고기를 차리지 않았다.

동물학대는 곧 약자 학대

보신문화는 사실상 우리나라의 폭력문화, 인간학대문화를 은폐하고 있다. 한국문화 속에서 성차별적인 남성은 여성과 자연에 대해 특히, 순종하는 아내와 개에 대해 몽둥이와 폭력으로 관계를 맺어왔다.

또 개나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른 ‘열등한(?)’ 부류의 남자도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얘기는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욕을 먹고 손찌검을 당하는 등 개같은 취급을 당했다고 하며, 심지어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을 다녀간 한 외국인 노동자가 쓴 ‘한국인들 개새끼’라는 한국관련 책이 베스트셀러로 읽힌다고 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나는 개고기 음식의 문화적 의미는 폭력성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나는 개에 대한 폭력이 가져오는 문화를 고발하고 싶다. 동물이 학대받는 사회는 인간도 학대받는 사회인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몇년 전 여성환경이론가들이 여성운동회의에서 육식메뉴를 거부하자고 제안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비판이론가인 아도르노는 동물에 대한 학대를 보여주는 동물실험이 여성의 학대 및 본성의 억압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이 근대적 인식론의 지배적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그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그녀는 왜 이런 책이 우리나라의 비판적 지식인에게 간과되고 소개되지 않았느냐고 의아해 한다.

개고기를 먹는 많은 지식인들이 ‘음식’이니까 라고 말하지만 사실 지식인들의 이런 얘기를 들은 여성환경이론자들은 많이 실망한다. ‘음식’이라는 문화적 범주 속에 은폐된 폭력성을 직시하자. ‘생존’이 아닌 잠깐동안의 식도락을 위해 이렇게 대량학살해도 되는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개고기 합법화에 관련된 문화적 폭력의 의미를 밝혀내지 못하고 극복하지 못한다면, 21세기의 우리나라에 사회과학은 없다. 21세기 인간해방사회로서의 미래는 없다.

개고기 도축 합법화 이후에 생명운동은 없다

서양에서도 동물보호사상이 일어나기 전에는 여러 가지 동물학대가 보편적이었다. 서양에서의 동물복지운동, 또 최근의 동물권(Animal Right)운동,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운동을 통해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ms)적인 문화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환경문제 논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권리’라는 말을 쓰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동물권리론, 동물해방론자의 동물보호에 대한 논의는 서구 민권운동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권리의 주변부에 놓인 소수민족, 여성과 마찬가지로 보호돼야 할 권리를 주변부의 존재로 인식하며, 침묵을 강요받았던 그들에게 복권을 해주어야 한다는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 환경운동이 ‘생명사상’ ‘생명윤리’ ‘생명공동체’ 등 생명이라는 단어를 핵심용어로 계속 쓴다면 우리 사회의 동물학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것은 바로 ‘생명’을 간과하는 것이 될 것이다. 개고기 도축 합법화는 우리나라의 많은 환경운동가, 환경단체, 환경사상가들의 ‘생명’이라는 단어사용을 헛된 구호로 만들 것이다.

또 개고기 도축법안이 통과되고 나면, 어떤 환경정치인도,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와 같이, ‘자연은 인간의 모태’라는 발언을 하여, 환경보호론자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과 발언을 더 이상 못하게 될 것이다.

개고기 도축, 위생문제로 일축 곤란

개고기 도축법안을 추진하는 의원들은 위생을 주된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구한말 ‘위생’을 이유로 단발령을 시행한 구한말의 단발령을 기억하게 한다. 단발령은 위생의 문제를 넘어 문화사적으로 심대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인데 개고기 도축 합법화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고기도축 합법화를 추진하는 의원이나 언론들은 ‘위생’이나 폐수를 그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는 현행법의 테두리(수질오염법이나 식품위생법 등) 내에서 충분히 다뤄지는 문제다. 더구나 개고기 도축합법화는 개고기 시장을 중심으로 한 우리 주변부 사람의 영세한 직업을 빼앗아 자본집약적인 새로운 도축업자들에게 부를 집중시켜줘 하층민의 경제를 다시 한 번 크게 몰락시키는 큰 사건이 될 것이다.

단발령이 ‘위생’의 문제를 넘어 큰 문화적 의미를 지닌 것이 간과되었는데, 오늘의 개고기 도축합법화는 21세기를 맞이하여 우리가 과연 생명문화를 건설할 수 있는가 하는 시험대에 올랐음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우리는

1. 동물과의 관계에서 ‘음식’이라는 문화적 개념 범주 속에 은폐된 폭력성을 찾아 내며 21세기를 위한 참여적이며 해방된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자.

2. 지식인들은 이 문제를 우리 사회진보운동의 ‘정당한’ 의제로서 문제제기하자.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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