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1270

정치판에도 태풍이…

청난 재해를 불러왔던 ‘게릴라성 호우’도 그에 뒤따른 태풍 ‘올가’도 떠난 며칠 뒤, 오랜만에 친구와 더불어 근교의 산엘 올랐다. 가평의 화야산(禾也山). 피서철 한 가운데 낀 일요일의 산행이었지만 아침 이른 시각에 등산길을 밟았기에 산중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바람없는 숲길에는 후텁한 대기만 가득했지만 골물 하나만큼은 그렇게 넉넉하게 또 청랑하게 흐를 수 없었다. 한창 수량이 많을 때에는 골짝의 등산로까지도 물이 차 오른 듯 격류에 할퀴어지고 패인 나무뿌리며 돌무더기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한 번 골이 범람한 뒤에는 빈 병이며 비닐봉지 같은 인위의 몹쓸 흔적조차 남아 있질 않았다. 산이 스스로 비와 바람을 불러와 그렇게 제 전신을 씻은 듯이도 여겨졌다. 이렇듯 자연이 스스로를 단속하는 자리에서 보면, 인간이 겪는 재난이란 것도 인간이 자초한 것으로서 그 허물을 자연에게 돌릴 수는 없을 듯싶다. 무한히 자연을 다스릴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함, 자연이 주는 교훈을 망각하는 부주의 등이 화를 불러올 뿐인 것이다.

상쾌한 기분으로 올랐던 등산길과 달리 하산길은 또다시 짜증과 역겨움의 고행길이었다. 놀이객들이 쉼없이 골짜기를 올라왔던 것. 그들은 저마다 먹을 것과 음식을 익힐 그릇가지들밖에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 과일과 육고기, 야채, 술…, 버너와 프라이팬을 들고 앞서 걷는 남정네도, 살코기 봉지를 들고 그 뒤를 따르는 아낙네도 그렇게 당당한 걸음일 수 없다. 그뿐인가. 미리 좋은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벌써 고기를 굽고 화투짝을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무색한 것은 곳곳에 내걸린 ‘취사엄금’ ‘쓰레기를 되가져 갑시다’란 현수막과 경고판들 뿐이다. 불법으로 취사할 경우 범칙금 120만 원을 물게 한다는 표지판 옆에서도 한 패거리들이 불고기를 굽고 있었으니 달리 할 말이 없다. 함부로 벌거벗은 이들이 고성방가를 하는 사이 바위틈에서는 수박조각이 썩어가고 비닐봉지들이 풀섶에 처박히고 골짜기엔 음식찌꺼기가 떠내려갈 것임은 뻔하다. 여름철이면 우리나라 아무 골짜기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개판이군.”

우리 뒤편의 등산객들이 하는 소리가 들린다.

“경고문을 붙여놓기만 하면 뭣해, 쫓아 다니면서 잡아 넣고 벌금을 물려야 법이 지켜질 게 아냐.”“법을 만드는 놈들부터 법을 안 지키는데 밑엣 것들이 뭐하러 법을 지켜. 최고 높은 데 있다는 위인들 노는 것 안 봤어? 어제 했던 약속을 오늘 둘러 엎어버리고도 맨날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잖아….”이렇게 하여, 더운 날 드물게 가진 우리의 등산도 그 결말은 씁쓸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동서분당(東西分黨)의 골이 깊어가는 것을 보고 율곡은 우선 자신의 반대편이라 지목되는 김효원부터 옹호하고 나선다. 어찌 그런 소인배를 두둔하느냐고 정철이 율곡을 나무라자 율곡이 답한다.

“자네 말대로 김효원이 정말 소인배라면 그는 나중에 정권을 잡을걸세. 그리고 자네를 죽일걸세. 허나 자네는 괜찮으이. 자네가 죽임을 당하더라도 뒷사람들은 자네를 선견지명이 있다고 칭송하지 않겠는가. 허지만 나는 뭐가 되겠는가. 다들 소인배를 감싸돌았다고 손가락질 하지 않겠는가. 나는 나중 일까지 생각해서 말하네….”여름도 다 가고 있다. 정말이지 우리 정치판에서는 영영 호우같고 태풍같은 정대한 인물을 만날 수는 없는 것일까.

최 학 소설가, 우송공업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