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2월 1999-12-01   1333

정주영일가 역시 세다 – 사법부 시장질서 파괴범에 면죄부

현대전자주가조작사건 1심판결이 남긴 것

언론문건 등으로 여론의 중심이 정치권에 머물자 희대의 ‘주가사기극’은 그에 푹 파묻혀 버렸다. 지난 11월 3일,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 1심 판결에서 서울지법 형사3단독 재판부는 징역 5년이 구형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에게 증권거래법 위반죄를 적용,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현대증권에 벌금 70억 원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사건 당시 현대전자 주식의 성격과 거래상황, 거래방식, 투입 자금 규모 등을 종합해볼 때 정상적으로 허용된 주가관리 방식으로 볼 수 없으므로 유죄가 인정된다. … 그러나 현대전자 주식이 IMF 구제금융체제 이전에는 대형 우량주였으나 이후 상당히 저평가됐던 것으로 보이며, 또 주가조작을 통해 차익을 챙기지 않은 점과 이익치 회장 등이 경제회생에 공이 크다는 재계의 의견, 대북 화해정책에 적극 참여한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2,314억 원의 자금을 동원, 직접이익만 1,500억 원을 남긴 사상 최대의 주가조작 사건.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가 사실상 현대측에 손을 들어줌에 따라 시민단체들은 “경제정의와 법의 형평성에 어긋난 경악할만한 일”이라며 맹비난했다.

특히 지난 4월부터 현대증권불거래운동을 벌여왔던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위원장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11월 3일 즉각 성명을 발표, “한국 최대의 재벌그룹 현대가 조직적으로 주가를 조작하여 수천억 원의 이익을 챙기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소액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정몽헌 회장 등 재벌총수 일가는 기소조차 되지 않고, 주가조작과정을 주도한 이익치 회장 등 관련 책임자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을 볼 때 재판부가 사법정의와 자본주의 시장질서를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재판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고, 현재 진행중인 정몽헌·이익치 회장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확대하고, 총수 일가와 현대증권, 현대중공업 등 관련 계열사 및 임직원에 대한 추가고발 등을 통해 응분의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로비’로 이익치 단독범행에 그쳤나

이번 사건은 상장사의 주가관리 행위가 국내 처음 사법적 판단의 도마 위에 오른 것으로 세인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특히, 정몽헌 회장 등 현대그룹 총수가족들이 이 사건으로 사법처리되느냐 마느냐가 초미의 관심이었다. 그러나 결국 끊임없이 시민단체들로부터 제기됐던 ‘정씨일가의 개입 의혹’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채 ‘이익치 회장의 단독범행’으로 결론남으로써 많은 시민단체 관계자들로부터 ‘사법부 역시 재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빈축을 샀다.

실제 지난 9월초 이 사건관련 수사가 활기를 띠고 있을 시점에 서울지검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범죄혐의를 입증하는 것보다 집요한 로비공세를 뿌리치는 게 더 힘들다”며 현대측 로비의 실상을 드러냈다. 이뿐 아니라 청와대 박주선 법무비서관은 “현대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발언을 통해 노골적으로 현대 편을 들고 나섰으며 이익치 회장의 신병처리와 관련해서도 청와대는 불구속을 희망한다는 뜻을 내비쳐 검찰이 당혹해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다. 이처럼 청와대와 재벌이 공정 수사를 방해한다면 이 사건 역시 제2의 최순영 사건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시민단체들의 우려섞인 탄식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참여연대는 ‘정씨일가 개입 의혹’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들이 제기한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의 7대 의혹 중 일부를 소개한다.

①무려 9개의 현대계열사들이 관련된 사상 최대 최장기간의 주가조작을 일개 계열사 고용회장인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이 정씨일가 모르게 혼자 결정해 추진할 수 있었을까?

②주가조작으로 현대전자 주가는 2배 이상 급등했고 그 덕택인지 현대전자가 반도체 빅딜에서 경영주체로 선정되었다. 또 주가조작에 처음으로 동원된 돈은 현대전자 자금 100억 원이었으며, 정몽헌 회장은 주가조작 이후 보유주식 340만 주를 매각했다. 현대전자 정몽헌 회장은 과연 주가조작 사실을 몰랐을까?

③정주영·정몽준·정몽구·정몽규·정몽근 씨는 보유중이던 현대전자 주식을 주가조작이 발각되기 전에 전량 매각했고, 6개 현대계열사들도 현대전자 주식을 대량 매각했다. 왜 그랬을까?

④정몽준 씨가 경영하는 현대중공업의 자금 수천억 원이 주가조작에 동원되었는데 정몽준 씨는 과연 이 사실을 몰랐을까?

⑤조가조작거래에 정몽혁 씨 계좌가 활용되었으나 정몽혁 씨는 이를 몰랐다는데, 현대증권이 정씨일가 허락없이 오너가족의 계좌를 함부로 사용할 수 있었을까?

수백만 서민의 호주머니 턴 희대의 강도?

그러나 검찰은 정몽헌 현대전자 회장만을 소환, 조사했을 뿐 여타 현대그룹 관계자를 소환하거나 수사 혹은 사법처리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서 현대측은 “시세조정을 통해 차익을 실현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실제 이를 통해 현대 계열사나 대주주가 이익을 취하지 않았고,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도 전혀 없었다”는 취지로 ‘현대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객관적 정황에 기초한 반박자료를 냈다.

“현대전자는 1997년 12월 31일 기준 688%의 높은 부채비율과 98년만해도 1조 3,5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융비용으로 퇴출위기에까지 몰릴 상황에서 유상증자를 통한 재무구조개선은 절실했고, 주가가 상승하지 않으면 유상증자 자체가 실패할 우려가 높은 상황이었다. 또 현대증권은 역외펀드와의 에쿼티 스왑(Equity Swap) 약정에 따라 현대전자에서 생긴 수백억 원의 손실을 회피했어야 했다. 정씨일가 및 현대 계열사들은 주가조작기간 및 그 이후 3,800만 주가 넘는 막대한 물량의 현대주식을 처분했고, 현대는 이런 대량매각이 비교적 높은 가격에 성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대전자의 주가를 높게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처럼 양측 공방이 치열한 상황에서 제2라운드로 참여연대는 현대측의 주가조작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일반투자자 44명을 모집, 정몽헌 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나섰다. 이번 사건에 대해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는 “외견상 사람이 죽거나 다친 것은 아니고 또 피해자가 특정되어 있는 사건은 아니지만 수백만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대주주 및 계열사에게 건네준 희대의 사기범죄이며 간접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재산을 빼앗은 범죄행위이므로 이에 대한 엄정하고 정확한 단죄가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이 계류 중인 이번 재판이 어떻게 결론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터뷰

현대조작 주가조작사건 1심 판결한 서울지법형사3단독 유철환 판사

“이번 판결, 비판 받을 용의 있다”

이번 1심 판결의 의미나 배경에 대해 말해달라.

“양측의 항소심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판사가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1심 판결을 내가 그렇게 내린 것은,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일반적 주가조작과 질이 다른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상 주식이나 내용이 다르다. 또, 현대 주식은 21세기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주식중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최근 밀레니엄칩 등이 나오고 있다. 특히 반도체 정보통신사업은 우리나라 산업에서 중요한 부분이 될 것 등을 고려한 판결이었다.”

참여연대는 이번 주가조작사건으로 일반투자자들이 많은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또 이번 판결은 죄질에 비해 형량이 너무 가볍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번 주가조작으로 인해 중장기 보유 목적을 가지고 투자한 일반투자자들은 손해보지 않았다고 본다.”

참여연대는 이번 판결을 두고 한국경제를 10년쯤 후퇴시킨 판결이 아니냐고 비난하고 있다.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그렇게 한쪽으로 몰고갈 수도 있다. 또 재판부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나뿐 아니라 다른 판사들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판결은 언제든지 비판받을 수 있는 거고, 비판받을 용의도 있다.”

정치권 혹은 현대로부터 집요한 로비공작 때문에 이런 판결이 내려진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만만치 않던데….

“단정적으로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검찰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우리 재판부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다.”

미국의 증권회사 드렉셀의 마이클 밀켄은 내부거래 주가조작 등으로 실형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런 사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번 사건에서 그런 예가 직접 나오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다른 전화가 와서 이만 끊겠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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