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1월 1999-11-01   1042

국감모니터활동기 – 우리가 여의도로 간 까닭

지난 10월 18일 밤 12시, 20일간의 국정감사모니터를 마치고 난 후 의사당 반지하 뒷문을 나오며 올려다 본 10층 높이의 열주들은 침입을 불허하는 철옹성처럼 한결 더 고압적이고 배타적으로 유권자인 우리를 짓누르는 듯 보였다. 국회는 시민단체의 의정평가활동을 싸늘한 시선으로 배격해버렸고 국감모니터 요원들을 마치 풍차를 공격하다 퉁겨나 버린 돈키호테처럼 냉소와 비웃음의 대상으로 희화시키려 하였다. 지나친 자격지심이었을까?

지난 9월 8일 경실련, 녹색연합,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여성연합, 참여연대, 환경련 등 40여 개 단체가 국정감사모니터시민연대를 구성하고 의원들의 국정감사활동을 상임위별로 평가하여 발표할 것을 결의했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을 예상치는 못했다. 9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가산점 10점 감점 10점으로 구성된 의원평가 기준을 공표하고 170여 명에 이르는 각 단체 활동가,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모니터요원을 발표할 때만 해도 국회의 반응은 비교적 협조적이었다. 국방위, 통일외교통상위는 일찌감치 방청불허 통보를 해왔지만 일부 국회의원들의 넌센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첫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국감에 대한 방청결과가 발표된 10월 1일 이후 상황은 돌변했다.

“시민단체가 무슨 근거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을 평가하고 점수와 등급을 매기느냐”는 각 상임위에서 국회의원들의 강한 정서적 반발이 일어났고 10월 2일 아침, 보건복지위의 국민연금관리공단 국감을 모니터하려던 참여연대 박순철, 이은경 간사가 국감장 밖으로 쫓겨났다. 재경위도 비밀투표를 거쳐 18:3으로 방청을 불허했다. 국회의장은 적용할 수도 없는 선거법을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국감시민연대도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방청요청 공문을 정식으로 발송하는 한편, 불허 상임위마다 모니터요원을 파견하여 방청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상임위원장실은 공식답변을 교묘히 회피하였고 위원장과의 면담요청도 성사되지 않았다. 공동사무국은 ‘오전은 국방부, 점심시간은 통일외교통상위’ 하는 식으로 뛰어다니며 위원장 면담을 요구하는 몸싸움을 치르고 기자간담회를 조직하는 돌격대 역할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10월 2일 오전 10시, 환경련 강의실에서는 40여 개 모니터 참가단체 담당간사들이 모인 가운데 심각한 토론이 벌어졌다. 국회의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BEST/WORST 선정방침을 고수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이 쟁점이었다. 토론주제는 WORST를 발표할 것인가, 발표한다면 매일 할 것인가 나중에 몰아서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문제가 10월 1일 오전 현실화되었을 때 공동사무국의 의견은 WORST를 유보할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견해가 우세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10월 2일 전원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무려 8시간에 걸쳐 진행한 긴 사전토론 과정에서 공동사무국의 입장은 비록 모든 상임위에서 방청이 불허된다 하더라도 현재의 평가방법을 고수하자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긴 토론이었지만 논지는 단순했다.

“국회방청은 알 권리와 관련된 기본권이고, 의원평가 역시 유권자의 감시할 권리와 직결된 기본권인데, 국민참정권의 기초가 되는 두 개의 권리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한 것을 대가로 방청을 허용받는다면 이는 기본권의 침해를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이토록 얼토당토않은 조삼모사식 흥정이 어디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 모니터에 신중을 기하는 자세는 중요한 것이지만 지금은 기본권을 위해 싸울 때라는 판단이었다. 방청허용이라는 ‘팥죽 한 그릇’에 유권자의 권리라는 ‘장자의 명분’을 팔아치울 수는 없지 않는가?

방침이 선 이상, 국회의원들의 반유권자적 인식에 대한 맞대응이 절실했다. 공동사무국은 상임위별 모니터단체를 지원하는 역할에서 방청과 의원평가의 논리를 제공하고 이를 여론화시키는 대변인 기능으로 전환되어야 했다.

우선 국회의원들이 제기하는 바, “모니터 단체들의 전문성 공정성에 문제가 많으며 특히 자기 멋대로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선정하는 WORST발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과 싸우는 것이 필요했다. 사실 국감시민연대의 의원평가지표는 의원들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다루지는 않는다. 가산 항목 10개 지표, 감산 항목 10개 지표는 대개가 질의의 논리성이나 준비의 철저성을 준별하기 위해 고안된 지표들이므로 우리와 견해가 다른 의원이라도 함부로 나쁜 점수를 주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의원들은 우리 지표의 실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아직도 많은 의원들은 우리가 의원들이 몇 번 조는지, 화장실에 몇번 가는지 따위를 체크하며, 우리가 사전에 제시한 정책과제를 안 다루는 의원들에게 해코지 하는 방식으로 점수를 매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유권자적 집단심리에서 나온 몰이해와 편견이 작용한 탓이다.

전문성 문제 역시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계속 문제삼으며 방청불허의 명분으로 삼는 메뉴였다. 심지어 산업자원위는 모니터 요원의 이력서를 첨부하면 검토 후 방청을 허용해 줄 수도 있다는 공식입장을 제시할 정도였다. 국회법이나 시행령을 아무리 뒤져도 이력서 제출이 방청요건이 된다는 조항을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사실 14개 상임위별 모니터단에는 수년간 그 분야 활동에 종사한 활동가,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있으므로 반박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쟁점은 사실상 그게 아니었다. 비록 전문성이 좀 모자라더라도 시민단체가 공신력을 걸고 평가하여 이를 발표하고 자기 공신력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참정권의 기초이며 모든 정치선진국에서 응당 보장되는 권리라는 사실을 국회의원들이 과연 인정하느냐 하는 것이 본질적 쟁점이었다.

10월 7일, KBS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국감방청 허용에 관한 공개토론은 국감시민연대의 노력이 정당함을 분명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여야에서 방청불허입장의 대표적 대변자인 3명의 의원이 나왔고 국감시민연대측에서는 이석연 변호사, 김영래 교수, 그리고 필자가 참석해서 한 시간여의 공개토론을 거친 후 ARS설문을 실시한 결과 6만 여명(약 95%)에 가까운 시민이 방청 ‘완전허용’을 지지한 반면 3천 여 명(약 5%)만이 방청의 ‘일부제한’을 지지하였다. 완벽한 여론의 지지였다. 국감시민연대의 기본권을 위한 싸움은 사실상 승리한 것이었다. 국감시민연대는 여론으로 확인된 이 문제를 보다 분명히 확인받기 위해 지난 10월 13일자로 헌법재판소에 방청권 보장에 관한 헌법소원을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그러나 국회는 요지부동이었다.

공개토론 결과가 나타난 이후에도 국감시민연대의 방청은 법제사법위, 교육위, 산업자원자위에서 추가로 불허당하여 총 9개 상임위에서 봉쇄당했다. 행정자치위나 과학기술통신위는 각각 한 사람씩에 한해 그날그날 따로 방청허가를 받도록 했고 일부 피감기관에서는 방청을 불허했다. 따라서 실제로 방청이 제대로 보장된 곳은 농림해양수산위, 환경노동위, 문화관광위 등 세 곳의 상임위뿐이었다. 국민여론에 대해 국회의원의 ‘실력행사’가 시작되었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국민 대다수의 지지와 국회의원 대다수의 반발, 이 극단적인 인식 차이야말로 우리 정치의 낙후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라 할 것이다. 국회는 개혁을 원하는 유권자들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립된 섬이었다. 결과적으로 국회는 시민단체의 의정평가를 물리적으로 저지하는데는 성공했을지는 모른다. 10월 20일 발표된 국감모니터 보고서는 불완전한 평가로 그치게 되었다.

국감시민연대를 둘러싼 논란의 진정한 의미가 국감 그 자체의 방청과 평가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국감방청을 봉쇄했던 국회의원들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더 본질적인 의미는 선거와 선거 이외의 시기에 유권자가 정치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으며 발언할 수 있느냐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이 갈등의 전초전인 국감모니터 과정에서 정치권은 ‘견제의 제도화’, ‘감시의 제도화’, ‘상호평가에 의한 발전’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전제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었다. 그러나 의정평가를 위한 시도는 국감모니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정당의 고유한 영역으로 치부되어 왔고 그 만큼 문제가 많았던 ‘공천’과정에 대한 감시운동, 현행 선거법이 법으로 제한하고 있으나 민주주의 대전제에 위배됨이 없다고 판단되는 낙선운동 등이 후속작업으로 기획될 것이다. 그러한 운동은 국감과정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정치권과 시민단체 간의 더 큰 갈등양상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시민단체의 대표성, 공정성 시비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이 과정은 불가피하며 많은 유권자들이 이러한 활동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년이면 21세기이다. 사회가 첨단화되고, 다변화 될수록 이 모든 것을 법제화하고 이를 감독하는 국회의 역할은 더욱 커져만 간다. 정상적이고 선진적인 사회에서도 정치영역은 ‘개혁의 병목지대’라는 비난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현실은 그보다도 훨씬 낙후되어 있다. 정치권이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유권자 정치참여를 적극 권장하여 의회활동의 필수적 요소로 정착시켜야 한다. 정치를 살리는 유일한 힘은 유권자의 비판과 참여다.

이태호 –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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