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0월 1999-10-01   747

미국과 남아공의 시민채널

시민운동, 이제 퍼블릭 액세스를 활용하라

신문과 방송과 같은 미디어 영역에서 공중의 참여 확장은 언제나 다원적 시민운동의 성장에 기인하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퍼블릭 액세스, 즉 시민참여 방송운동은 민주주의의 실현 혹은 시민권의 신장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해 볼만하다.

‘변화를 위한 도전’(Challenges for Change)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캐나다영화위원회(National Film Board of Canada: NFB)가 최초로 미디어 제작 과정에 대한 일반 시민의 직접 참여를 시도한 이래, 방송미디어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대중운동으로서의 퍼블릭 액세스는 이제 전지구적 현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일군의 영화인들과 지역 운동가들이 결합하여 비디오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면서 시작된 작은 실험은 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제도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했고,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진보적인 비디오 운동과, 아프리카에서는 반인종차별 투쟁과 결합되면서 서구와는 또 다른 맥락에서 공동체 TV(Community TV)라는 독자적인 미디어운동의 위상으로 발전해갔다.

퍼블릭 액세스는 그 단순한 구성 원칙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논란의 대상이다. “제작과 유통에서 획득된 테크놀로지의 성과에 기반하여, 모든 시민들에게 영상매체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제공한다”는 원리는 칭송하면서도 현실성 없는 혼란으로 평가 절하되기도 했다. 이는 퍼블릭 액세스를 비롯한 대안적 미디어운동에 대한 어떠한 내용도 거의 보도하려 하지 않는 제도권 미디어의 편파적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미국의 공동체미디어전국연합(Alliance for Com -munity Media: ACM)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법의 통과과정에서 벌인 격렬한 권리투쟁과, 들불처럼 번져나간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비디오운동이 지역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왜 남아공의 만델라정권이 새로운 국가 재개발 전략의 일환으로 공동체 TV 운동을 택했는지 등에 관해서 우리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미디어의 민주적 활용

미국에서 진보적 사회운동과 퍼블릭 미디어가 본격적으로 결합할 수 있게 된 계기는 지역미디어이자 소규모미디어인 케이블TV의 발전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는 미국 특유의 독립(independent)영화의 분화 발전과 현장운동가와 전문 미디어 연구자의 결합이라는 오랜 역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독립영화는 6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80년대 이후 비디오의 등장은 제작비와 배급의 문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전화시켰으며, 대중과의 밀접한 결합을 모색하는 본격적인 조직적 활동의 가능성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양성된 영화활동가들은 80년대 중반이후 본격화된 퍼블릭 액세스, 그리고 대안적 매체의 주요한 인적, 물적 근거로 작용했다.90년대에 접어들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독립영화인들의 활동 중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조직적 활동을 모색하고 있는 각종 단체들이다. 90년대 들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들은 주로 정치적 성격이 강한 비디오를 제작함과 동시에, 미디어 교육을 통한 조직화에 주력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특정한 아이템을 전문분야로 삼아서 배급과 제작지원을 주요 활동으로 하는 단체들 또한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다음으로 미디어를 비판하는 연구자들과 미디어를 실제로 제작하고 대중을 조직하는 활동가의 결합도 크게 작용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운동의 현실적 조건이나 고민과는 분리된 채 이론 체계 내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의 조직화와 연대는 미디어운동 발전의 필수 조건이다. 미국에서 대안미디어, 퍼블릭 액세스 운동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운동가와 비판적 연구자의 결합에 힘입은 바가 크다. 특히, 정보고속도로의 등장과 함께 그러한 결합은 이제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불가피한 갈등과 이합집산 속에서도 보다 통일적인 대응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끝으로 사회운동 진영의 미디어에 대한 접근방식 변화도 중요한 대목이다. 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정부와 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공중파 방송에 대한 접근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그 결과 좌파는 주로 인쇄매체에 관심을 집중하였으며, 부분적으로 라디오가 대안적 미디어로서 활용되고는 했다. 70년대에 케이블TV의 등장과 함께 미디어의 민주적 활용을 위한 초보적인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고, 텍사스 오스틴, 뉴욕을 비롯한 몇몇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합법적 미디어를 활용하는 실험이 시작되었다.

남아공에서 공동체TV가 남긴 것

남아공의 공동체 방송 사례는 국가의 개발정책과 미디어운동의 결합이라는 면에서 퍼블릭 액세스와 유사한 사례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만델라의 집권 이후 지역사회의 재건과 국민적 신뢰망 구축에 공동체 TV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아공에 있어 공동체 TV 사례는 어쩌면 현시점에서 가장 선진적인 국민참여 방송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백인 소수 정권 시절부터 비디오를 투쟁과 교육의 무기로 활용해온 남아프리카는 만델라정권의 등장 이후 공동체 TV를 주요한 미디어 사업의 하나로 설정했으며 그에 따라 FAWO(Film and Allied Workers Organization) 등으로 대표되는 미디어 운동 조직들은 국가 개발 사업의 한 분야로 지정된 공동체 TV의 실험 프로젝트를 95년 이후 꾸준히 추진해왔다. 그러한 활동의 결과 결성된 20여 개 공동체 TV조직의 네트워크인 OWN(Open Win-dow Network)은 현재 정부의 재구축 개발 사업(RDP)에 조직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비록 정부의 관료적 행태나 상업적 경도에 따른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남아프리카의 사례는 미디어 운동 조직과 공영 방송, 그리고 정부기관의 상호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해준다.

우리나라에서도 퍼블릭 액세스와 관련하여 학교단위의 영상동아리나 독립영화제작사뿐만 아니라, 다차원적 영상제작 소모임이나 단체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미 1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노동자 뉴스제작단’을 비롯 시흥문화원 비디오제작학교 출신 주부들로 구성된 ‘우먼 퍼포먼스’, 부산의 장년층 다큐모임인 ‘목요상영회’ 등은 이미 많은 시청자 중심의 방송영상 제작 모임이다. 이러한 소모임이나 동아리의 경우 장비 및 시설, 재정, 인력 모든 면에서 아주 열악한 상황이다. 각급 방송사의 시설이나 공공 시설을 이용하여 집중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며 이에 대한 공공기관의 적극적 지원도 모색될 필요가 있다.

퍼블릭 액세스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시민의 힘이 될 것

시민사회와 관련해서는 퍼블릭 액세스 채널의 운영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미국의 경우, 액세스 채널의 수와 사용 가능한 장비 및 시설의 규모는 케이블TV 회사와 지역정부간의 프랜차이즈 협정을 통해 결정된다. 이와 같은 논의의 저변에 깔려 있는 논의는 공동체 채널을 통해 시청자들이 스스로 자신들만의 매체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액세스 채널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내용에서 제작, 유통에 이르기까지 직접 혹은 공적 도움을 받으며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 채널은 시민들이 그들의 문화와 미디어 환경, 그리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공동체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새로운 저비용, 고품질의 프로그램과 전세계로부터의 다양한 정보를 방송할 수 있으며, 타 방송사와 유사한 프로그램 뿐 아니라 기존 프로그램 유통체제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많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최영묵 한국방송진흥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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