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0월 1999-10-01   964

듣는이의 가슴에 점 하나 남길 수 있다면

“욕심을 조금씩, 조금씩 버리세요. 그러면 마음이 평화로워 질 거예요.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더 따뜻해질 테고요.”

지난 9월 15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 가수 한영애는 팬플룻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음색으로 마치 노래를 부르듯, 리듬을 타고 어절과 어절을 끊었다 이었다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수는 말도 저렇게 하는구나 싶었다.

참여연대가 창립 5주년을 맞아 ‘맑은사회만들기 기금마련’을 위해 마련한 무대였다. 한영애는 다른 출연자들과 마찬가지로 출연료를 받지 않고 무대에 올라 사회를 맑게 하는 데 한 몫 거들었다. 그날도 그는 특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하며 무대와 관객을 사로잡았다. 박범훈 단장이 지휘하는 중앙국악관현악단의 연주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그 모습이 흡사 자유롭게 물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나 봄바람과 마음껏 희롱하며 날아가는 한 마리 나비를 연상시켰다. 리듬이란 게 저런 것이구나, 음악에 문외한인 필자에게조차 그의 절제된 움직임과 정지동작들이 어떤 훈련이나 연출 따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솟구치는 열망이나 신명의 자연스런 표출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공연이 있기 나흘 전, 홍대 앞에 있는 카페에서 그를 미리 만났다. 생각보다 몸피가 작고 목소리도 뜻밖에 차분하고 평범했다. 지친 듯한 표정으로 눈만은 뭔가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듯, 사물과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는 그런 표정이었다. 공연을 위해 시흥동에 있는 중앙국악관현악단 연습실에서 오후 내 연습을 하고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바쁘게 달려왔다는 말을 듣고 아무리 참여연대의 취지에 공감하더라도 공연자들이 한 번 무대에 서기까지 생각보다 참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요즘 어떤 구심점이 없잖아요. 이런 시기에 시민운동 단체에서 맑고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노래하는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건 역시 무대에 서는 일이고, 좋잖아요. 욕심 부리지 않고 평화롭게…”

기왕에도 민가협에서 주최한 ‘양심수 후원의 밤’이나 ‘자유’ 콘서트 같은 무대에 기꺼이 출연해온 그에게 돈벌이도 안되는 참여연대 공연에 출연한 이유를 묻자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다. 그리고 물론 무대의 성격을 따져보긴 하겠지만 이런 공익적인 공연에 기회가 닿으면 앞으로도 계속 설 생각이라고 했다.

흔히들 그에 대해 말할 때 빼놓지 않는, 어떤 주술적인 분위기, 현실을 벗어난 듯한 분위기에 대해 말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무당 같다고요? 전에도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주술적이다. 뭐 그런 말들을 하지만 저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전 그저 제가 부르는 노래가 듣는 사람의 마음 속에 점 하나 찍을 수 있다면, 그 점이 희망이거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생각을 움직일 수 있다면 제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죠.”

그에게는 분명 일상을 뛰어넘는 어떤 예민함과 힘이 느껴진다. 노래만으로 그를 알 때도 그랬고, 도무지 속생각이 무엇인지 가늠키 어려운 표정의 얼굴을 대면하자 그런 느낌은 더했다.

“사춘기 때, 어느 순간 참 생각이 많아졌어요. 먹는 일이 수치스럽게 여겨져서 도시락을 친구에게 줘버리고 뒷동산에 올라가 쏟아지는 햇살, 날아가는 나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참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게 많기도 하구나. 나는 뭔가. 그 중 하나의 점인가 이러면서…” 이렇게 생각 많고 예민한 사춘기를 거치면서 그리고 그 뒤로 76년 가수 이정선 등과 함께 결성한 해바라기에서 ‘마음 깊은곳에 그대로를’ 같은 곡을 부르면서, 그 뒤로 만난 많은 뮤지션들, 음악적 스승들, 그리고 무대에 대한 열망으로 78년 입단한 자유극단, 그리고 음악과 연극 외에도 지금까지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자신을 조각조각 이루고 있다는 말을 했다.

가수 한영애를 ‘코뿔소‘ ‘말도 안돼’ 등의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무대에서 소리지르듯 노래하는 모습에서 어떤 저항적 이미지를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역동성은 흔히들 여성에 대해 느끼는 이미지, 어떤 억눌린 수동적인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여성운동 관련 매체들이 한영애를 가끔 다루는 것도 그런 의도가 담긴 게 아닐까 싶었다.

“ 여성들이 충분히 평등하지는 않죠. 부계사회니까 물론 차별이 있죠. 그런데 저는, 제가 여자라서 좀 더 여성에 대한 이해가 있을지는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페미니스트보다 휴머니스트를 지향해요. 그렇다고 해서 또 제가 무슨 운동가가 되자는 게 아니고, 전 다만 가수, 좋은 가수이고 싶고요.”

그를 깊이 사랑하는 팬들은 일견, 애조 띤 쓸쓸함, 그 쓸쓸함마저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비껴서있는 듯한 외로운 분위기를 통해 자신들의 외로움을 위안 받는다고도 한다. ‘여울목’ 같은 노래를 떠올려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의 말을 헤아려 듣자면,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들에게 운명처럼 조건 지워진 외로움 같은 것을 노래로 위무하고 싶다는 얘기로 들리기도 했다.

지난 7월에 그는 5집 앨범을 발표했다. 어린 댄스그룹들이 일년에 두 장씩도 쉽게 음반을 발표하는 것에 비해 그가 3년 터울로 겨우 한 장씩 음반을 내는 것도 눈길을 끈다. 이에 대해 한영애는 ‘거짓말 하지 않고 정직하게, 하고 싶은 노래를 하다보니’ 묘하게도 3년 터울이 되더라며 쑥스러워 했다. 이번 음반은 뜻밖에도 요즘 잘나간다는 테크노 사운드를 주조로 깔고 있다.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전자음. “예전하고 뭐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을 텐데요, 다만 테크노 사운드는, 사람들이 흔히 저한테 원시적 인 힘, 뭐 그런 말씀을 많이 해요. 길들여지지 않은 느낌 같은 걸 두고 그러는 것 같은데, 현대적인 테크노사운드와 제가 가졌다는 원시적인 힘 그런 게 만나면 어떨까, 뭐 그런 생각은 했었어요.”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 다시 화제를 참여연대공연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인터뷰 하러 간다니까 주변에서 참여연대용으로 대답을 준비하라’고 일러주었다며 미소지었다. “참여연대 식으로 잘 대답했나 모르겠어요.” 말미에 또 그런 말도 했다. 참여연대식으로 정해진 무슨 틀이 있겠는가고 대답해 주었다. 혹시 참여연대에 대해서도 어떤 고정관념 같은 게 있는게 아니냐고 말이다.

“여성시대의 김승현씨가 그래요. 할머니들이 평생 김밥 팔아서 대학교에다 기부하고 그러는데 그럴 게 아니라 참여연대 같은 데 기부해야 한다고. 그런 얘기 들으면서 주변에 참 많은 사람들이 참여연대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있구나, 공감대가 넓구나 그런 생각 했어요.” 그가 참여연대용으로 대답한 멘트가 이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세종문화회관 공연에서 그가 단 세 곡을 부르고 퇴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 했다.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하는 그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관객들조차 안중에 없는 듯 자신의 내면에 깊이 몰두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몰두, 10년이 흐른 뒤, 20년 뒤에도 자신은 무대에 서있고 싶다던 그의 얘기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아, 그리고 그때는 좀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어요. 정말 서고 싶은 무대에만 서면서 말예요.”

김성희 본지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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