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2월 1999-12-01   1649

엄마들과 함께하는 신나는 놀이마당

성남주민생활협동조합 창조학교

학급붕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또한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들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탄식이 실감있게 들려온다.

교육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까지는 일정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여겨진다. 다만 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학교에도 시장의 논리를 도입해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교육부의 주장부터 학교제도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고 학교 밖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탈학교’움직임까지 다양한 생각과 시도가 혼재한 가운데 아무도 이렇다할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나 ‘경쟁력’에 회의를 품어가며 상처를 간직한 어른으로 자라고 있다.

갑갑한 교실을 빠져나와 동네 주변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자유롭게 놀고 어울려 야간등산도 가고, 방학 때면 결연을 맺은 농촌마을에 찾아가 논과 밭에서 어울려 일하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아이들만의 힘으로 역할극을 꾸며 공연도 해보는 학교가 있다면, 그리고 동네 인근에 있는 지하철 기지를 방문해 전철이 움직이는 원리를 알아보거나 같은 지역에 있는 장애인들의 복지시설을 방문해 처지가 다른 이웃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아보는 과정. 이런 학교가 있다면 아이들이 솔깃해하지 않을까.

보통 주부들이 만든 신나는 학교

새로운 대안을 찾고 이를 실천하는 일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아이들의 미래와 직결된 교육문제에서 실험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엄두는 아무나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정규학교 과정을 대신하는 다양한 실험학교들이 문을 열었지만, 그리고 아예 학교라는 틀을 거부하는 탈학교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많은 눈들은 그 의미있는 실험들을 여전히 지켜만 볼 뿐 선뜻 그 흐름에 뛰어들지 못한다.

분당의 창조학교는 그런 면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의미있게 지켜볼만한 교육 대안이다. 주민들이 스스로 세워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 그렇고, 무슨 거창한 목적을 내세우기보다는 아이들이 이웃과 지역을 사랑하는 건강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해가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취재차 방문하려고 전화를 걸었을 때 4학년 담당 교사인 정은경 씨는 회의를 통해서 취재에 응할 것인가를 결정하겠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거의 하루를 기다린 끝에 취재에 응하기로 했으며 취재는 아이들 교육시간을 피했으면 좋겠고 창조학교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교사학부모를 위한 연수’에도 함께 참여해보는 게 어떤가 하는 답변을 들었다. 이렇게 회의를 통해 매사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게 이 학교의 주된 의사결정방식이다. 자연히 아이들도 이런 것을 따라 배우면서 맹목적인 복종보다 자유로운 사고나 합리적인 사고 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하는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창조학교’를 방문한 날은 대입수능시험이 예의 입시한파와 함께 치러지던 날이다. 마침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연수’의 마지막 강좌를 담당한 한신대 한영애 교수는 일본 야마카타현의 쓰루오카 시의 생활협동조합이 전개하고 있는 교육대안활동에 대해 소개했다. 쓰루오카의 인구 11만 명 중 70% 이상이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해 있고 지방정부는 이들 조합과 협조하면서 지역의 발전과 아이들의 교육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며, 이들이 교육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훌륭하고 뛰어난’ 어떤 인물을 길러내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을 잘 꾸려가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많은 어머니들이 부러운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남시를 통털어 1,500명 남짓한 생협의 조합원, 그 나마 지속적으로 조합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약 300가구에 불과하고 지자체로부터 무슨 협조라도 구하려면 번거롭고 성가시기만 한 우리로서는 이웃 일본의 현실이 부럽기만 하다.

‘창조학교’는 주민생활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운영하는 교육공동체다. 정규학교를 완전히 대체한 학교는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100명 가까운 아이들이 매주 한 차례씩 모여 두 시간여씩 ‘창조적인’ 교육활동을 벌인다. 자유롭게 뛰어놀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도 사귀고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한 눈길도 갖게 되길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는 어머니들은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창조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훌륭한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스런 결과를 강요당하는 게 아니라 명랑하게 뛰놀며 자신과 이웃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것을 위해 주민들은 학교의 모든 것을 스스로가 고민하고 힘을 모아가며 힘겹지만 함께 만들어간다는 취지는 유심히 들여다볼만한 ‘의미’가 있다.

아파트촌에 동네공동체의 씨앗 뿌린다

“성남에서 89년에 출발한 주민생활협동조합은 벌써 1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조합원들 대상으로 대중강좌를 개최했는데 이를 통해 여성학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여성소모임을 꾸려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고, 여성문제를 공부하다보니 자연히 자녀들의 교육문제에 대해 생각을 나누게 됐어요. 95년에 3회 어머니학교를 거치고 나서 지역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게 창조학교입니다.” 성남 창조학교의 설립때부터 지난 학기(99년 1학기)까지 상근교사로 일한 우소연 씨는 창조학교가 교육의 수혜자로만 머물러 있던 학부모들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교육과정을 만들고 함께 운영하는 주체로 참여하는 점과 학생들이 교과서를 통해 지식을 전수받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체험을 통해 자신들의 삶의 근거인 주변을 이해하면서 ‘우리 동네’라는 의식을 높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고 설명했다.

당장에 어떤 성과를 조급하게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창조학교가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 단순한 방과후 활동으로만 보일지도 모르겠다. ‘동네 어른 만나보기’라는 교육과정은 망가진 우산을 무료로 고쳐주는 동네 할아버지에게 찾아가서 우선을 고쳐보는 식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더욱 실망할지도 모른다. “창조학교는 단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문제만을 염두에 둔 모임은 아니에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염원하는 것은 아이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이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고 훗날 이 경험을 의미있게 떠올려주길 바라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정말로 꿈꾸는 것은,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어른으로 사는 거예요. 또다시 이들에 의해 아이들이 자라고 이들에 의해 지역이 서서히 변해가길 바라죠. 뜻대로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말예요. 그때쯤이면 삭막한 아파트로 빼곡한 이 지역도 좀 다른 형태의 마을로 탈바꿈할 수도 있겠죠.”

창조학교에 참가하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생각을 펼쳐보였다. 이들의 이러한 소박한 생각에는 이렇게 100년 앞을 내다보는 거대한 꿈이 담겨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러한 경험이 동네마다 전달돼 도시에서 동네공동체가 되살아나는 어떤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물론, 창조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경험이 마을마다 일반화될 수 있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분당지역의 고학력 중산층 자녀들이었기에 이런 ‘혜택’이 가능했다는 지적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들의 여건에서 뭔가를 해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몇 년 동안 씨름하며 학교를 운영해온 과정,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을 지자체와 교육부의 정책입안자들이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창조학교는 주민자치를 통해 아파트촌에 동네 공동체를 복원해보려는 따뜻하고 속 깊은 생각이 싹을 틔운 현장이다. 아파트 단지마다 이들의 경험을 화제로 삼아 민들레 씨앗처럼 널리 퍼뜨리길 꿈꿔본다. 싱싱한 아이들의 웃음과 함께 말이다. (성남 창조학교 연락처 0342-713-6218)

김성희 참여연대 문화사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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