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5년 07-08월 1995-07-01   1017

영국 시민사회와 제3세계를 잇는 민(民)의 다리

영국의 가톨릭국제관계연구소(Catholi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Relations)

영국 런던에 있는 가톨릭국제관계연구소(이하 CIIR)는 연구소가 아니다. CIIR은 그 어느 활동단체보다도 실천사업을 많이 하는 활동단체다. 그러나 그 전문성이 일반 연구소를 능가하기에 단순한 활동단체로 볼 수도 없다. 또 이름에는 가톨릭이 들어 있지만, 그것은 단체의 뿌리를 의미할 뿐 제도교회로부터 독립된 기관이다. 영국의 시민사회와 정부에 ‘제3세계’의 실재를 확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CIIR는 1940년에 창립된 이래 계속해서 제3세계의 사회정의와 개발문제에 초점을 맞춰 활동해왔다.

CIIR은 제3세계의 가난과 부정의가 불의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구조에 의해서 야기되었으며 진정한 개발을 부와 권력의 평등한 분배와 환경보호가 함게 뒤따라야 한다고 믿고 있다. 또한 CIIR은 참여연대와 공동으로 지난 3월 코펜하겐에서 국제 행사를 개최한 바 있고, 오는 7월 서울에서도 함께 국제행사를 갖는 가까운 단체이기도 하다. CIIR은 국제엠네스티(본부), 옥스팜, 유엔인권선언19조운동(의사표현의 자유) 등과 아울러 영국의 시민사회를 대변하는 단체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조직 체계와 주요 활동

CIIR은 회장단, 집행위, 사무총장, 교육사업부, 해외개발협력부, 재정총무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해외 민간대표 모임과 회원모임이 결합되어 있다. 활동조직은 교육사업부와 해외개발협력부, 두 곳이며 일년에 전체 예산 약 36억 원 중의 77%를 사용한다. 재정은 약 12% 가 회비와 회원기부금으로 나머지는 외부 민간재정단체의 지원과 출판수익에 의존한다. 상근실무력은 모두 4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1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돕고 있다.

CIIR의 특징은, 교육사업부와 해외개발협력부의 활동을 통해서 생생한 현장 정보와 민중적 시각이 얻어지고, 이를 기초해서 발표되는 정책과 출판물이 영국사회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는 데 있다. 매년 발간되는 CIIR의 출판물 목록을 보면 제3세계와 관련한 독특한 정보와 시각을 담은 100여 종의 전문도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꽤 팔려나가 CIIR의 재정에 기여하고 있다.

효과적인 정책 캠페인 제시

효과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CIIR의 힘은 제3세계 현장에 기초한 전문적인 교육·여론 활동에 뿌리가 있다. 일종의 여론 캠페인이라고 특징지울 수 있는 CIIR의 교육프로그램은 3가지 방향으로 집중된다. 첫째는 해외 협력단체의 확대와 연대활동 강화다. 둘째는 동티모르 문제, 중남미 민주화 문제, 유럽연합의 개발지원정책 문제 등 엄선된 주제에 집중된 여론 캠페인이다. 셋째는 제3세계 파트너단체의 활동지원이다.

개발(development)문제는 CIIR의 전통적인 관심사로서, 동아시아 발전모델과 그 사회적 여파에 관한 책과 자료집도 이미 수차례 출판한 바 있다. 영국내에서는 남아프리카와 중남미, 그리고 동티모르에 관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단체로 정평이 나 있다. 짐바브웨 민주화 캠페인을 효과적으로 전개한 공로로 1979년 짐바브웨 신정부의 독립기념식에는 CIIR의 사무총장이 초대되었고, 또한 신정부의 첫 임금정책회의의 주재까지도 맡았다. 북아일랜드 갈등문제에도 관계해 영국의 식민정책에 계속 비판을 제기하고 평화협상을 강조해왔다.

한국문제에도 큰 관심

최근 한국문제에 관해서도 일정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한국과는 ’88 서울올림픽 때 있었던 철거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관련을 맺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유엔 세계인권대회 때 한명의 임원이 한국대표단에 참석해서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을 함께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때 맺은 인연으로 한국 여러 시민단체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매우 활동적인 여성인 교육사업부 아시아과의 캐서린 스콧(35세)이다. 한국 인권단체들은 스콧 씨의 정열적인 활동에 힘입어 동티모르의 독립을 지원하는 사업을 1993년 처음 전개하기도 하였다. 스콧 씨는 청년시절 CIIR의 강연회에 왔다가 필리핀의 한 운동가의 발표를 듣고 탄복해서 상근을 지원했다고 한다.

해외협력개발 사업

1965년부터 시작된 CIIR의 해외협력개발 사업은 전문 자원봉사인력을 모집해서 중남미, 남아프리카, 중동지역에 지역사회 및 시민사회를 지원하도록 파견하는 일이다. 이들 전문가들은 지역사회단체, 노동조합, 농민단체, 교회단체, 여성단체에 가서 자원봉사자로서 자신의 전문적인 역량을 투입한다. 이들 중에는 의사, 간호사, 기술자, 교육자, 조직지원활동가, 홍보전문가 등과 실태조사자들이 있다.

인력파견은 단순한 기술적 지원에서 끝나지 않고 제3세계 삶의 현장에서 맺어지는 끈끈한 인간애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은 곧잘 귀국해서 영국의 제3세계 정책에 대한 열렬한 비판자가 된다. CIIR이 영국사회에서 양심을 대변하고 제3세계 민중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이와 같은 ‘현장체험’이 자리잡고 있다. 제3세계의 현실과 제1세계 정부와 기업의 횡포를 바닥에서 체험한 영국사람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영국 시민사회의 등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문적이고 치밀한 여론활동

CIIR의 가능성은 현장활동에 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렀다면 이미 실패했을 것이다. 영국과 유럽의 언론 및 정부에 영향을 끼칠 만큼의 대안제시와 여론활동이 CIIR의 운명을 좌우했다고 할 수 있다. CIIR의 올해 캠페인 주제를 보면, ‘마약밀무역의 문제-농민의 목소리를 듣자’, ‘콜롬비아의 인권, 경제학을 넘어선 새로운 정치를 위해서’, ‘나미비아의 에이즈교육’, ‘아이티의 재건’, ‘도미니카공화국의 협동조합운동’,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평화’, ‘니카라과의 공공보건’, ‘과테말라에서의 미 CIA’ 등 국제정치와 나라별 핫이슈등 광범위한 내용이 치밀하게 다뤄지고 있다.

1970년대 중반 로디지아문제를 다룰 때를 예를 들면, 모든 언론이 로디지아 경제개발의 장미빛 미래에 대해서 소설 같은 기사를 쓰고 있을 때, 오직 CIIR만이 경제개발의 한계와 부작용을 예측하는 책자를 발간했다. 그런데, 곧 로디지아의 현실이 CIIR의 예측대로 진행되자 CIIR의 정보와 견해는 국제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CIIR이 있기까지

하지만 CIIR의 발전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제3세계 문제를 다룰 때 항상 따라다니는 급진성 또는 편파성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개발문제에 대해서 제3세계의 급진세력과 입장을 같이 한다는 비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CIIR은 한편으로는 가톨릭의 교리에서 취한 ‘가난의 선택’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CIIR만이 얻을 수 있는 생생한 현실정보와 합리적인 대안제시로 극복해나갔다고 한다. 특히 현지에 가서 현장을 경험한 ‘산 증인’들의 목소리가 큰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어, 1977년과 ’78년에 볼리비아 탄광노동자들의 실상을 알리는 캠페인은 영국시민들에게 큰 반응을 일으켜 볼리비아 정부에게 상당한 압박을 주었다. 대처리즘과 신보수주의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칼날 같은 비판을 전개해온 활동도 CIIR의 활동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3개의 박사학위 소유자 이언 린든 소장의 꾸준한 비판활동은 상당한 비중으로 취급된다. 예를 들어, BBC방송이 보스니아사태가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찾은 시민단체의 전문가가 린든 소장이었다.

CIIR에서 배울 것은?

CIIR은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민과 민의 연대성에 믿음을 두고 있다. 이러한 연대를 서로를 교육시키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 실현되기까지에는 우리 사회와 크게 차이나는 점들이 분명 작용했다고 보인다.

첫째는 공정한 언론의 존재이고, 둘째는 귀가 열린 정부의 존재, 셋째는 이런 단체를 유지시켜주는 수십개의 독립적인 재정지원기구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식민수탈의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각성된 양심들이 멀리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의 민주화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통해 영국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려고 했던 목적의식이 가장 중요했다고 보인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국제엠네스티와 마친가지로 CIIR이 유지하고 있는 다른 나라 수백개 민간단체와의 연락 및 협력관계가 CIIR의 생명이다. 또 이 점이 자국문제만 다루는 많은 제1세계 시민단체들과 CIIR이 궤를 달리 하는 장점이면서 대외관계에서 별로 잘한 것이 없는 우리에게 시사를 주는 점이다.

이대훈(참여연대 사무국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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