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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12월
  • 201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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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이냐, 인권이냐, 이권이냐,
강대국 군사개입의 겉과 속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2011년도 저물어간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지구촌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 유혈분쟁으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연말이 다가오면 언론사들은 ‘10대 국내외 뉴스’를 꼽는다. 2011년을 뒤흔든 굵직한 뉴스 가운데는 중동민주화 바람을 빼놓을 수 없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30년 독재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42년 독재가 끝장났다. 특히 관심을 끌었던 것은 리비아였다. 이집트 무바라크가 독재와 가난에 지친 국내 민중의 힘으로 무너졌다면, 리비아는 달랐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줄여 ‘R2P’)을 내세워 카다피 독재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힘을 보탰다.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도 그 나름의 엉터리 R2P 논리를 편다. “우리 국민들을 (시위폭도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면서 인권 탄압을 정당화한다.

 

R2P 개입 논리의 두 가지 문제


R2P는 이른바 ‘실패한 국가’(failed state, 군대와 경찰 조직이 무너져 자국민을 보호할 능력을 잃고 혼란에 빠진 국가)나 독재국가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이뤄지는 경우엔 그 나라 주권을 일시적으로 보류(무시)하고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2005년 유엔총회가 집단학살, 인종청소, 반인도적 전쟁범죄로부터 시민을 지키는 R2P가 국제사회에 주어진 국제규범임을 처음으로 공식화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R2P 용어가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입에 오르내린 것은 2001년 ‘개입과 국가주권에 관한 국제위원회(ICISS)’라는 독립적 모임에서였다.


  캐나다 정부의 후원으로 조직된 ICISS는 9쪽 분량 보고서에서 “어떤 한 국가에서 ‘인종청소’를 비롯한 ‘대규모의 인명피해’가 저질러지고 있다면, 국제사회가 인권 보호를 위해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전통적으로 국가주권은 절대적인 것이고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졌으나 최근 20년 사이에 주권개념은 크게 흔들렸다. “인간안보가 국가안보란 이름 아래 소홀히 다뤄져선 안 된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 중이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강대국들이 R2P 개입을 선택적으로 골라,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 든다는 점이다.  R2P는 “국가안보도 중요하지만 인간안보도 중요하다”는 인권 중시 개념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리비아 인권만 챙기고, △ 11월말 현재 3천5백 명의 사망자를 낳은 시리아의 인권 △ 2000년 인티파다(봉기) 이래 7천 명이 넘게 희생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은 찬밥이다. 또 있다. △ 1990년대 초 기근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한 소말리아 △ 100일 동안 80만 명이 인종청소당한 르완다 학살(1994년), △ 3년 내전에 25만 명이 죽은 보스니아 내전(1992~1995년) 등이다. 옛 소련의 몰락(1991년)으로 말미암아 세계 유일 초강국으로 떠오른 미국을 좌장으로 한 국제사회는 위기사태에 제대로 적극대응 못해 희생을 더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둘째, 강대국들이 R2P를 하나의 구실로 내세워 국가이익을 챙기려 든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보기로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꼽을 수 있다. 조지 부시를 비롯한 미국 지도자들은 △당시 세계 매장량 3위인 이라크 석유 △(사담 후세인의 위협을 받는) 이스라엘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이라크를 침공했으면서도 “사담 후세인의 독재로부터 신음하는 이라크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주겠다”는 말을 입만 열었다 하면 되풀이했다.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 또는 외면


 ‘20세기 화약고’ 발칸반도를 피로 물들인 마지막 전쟁인 코소보 분쟁(1998~1999년)에 나토가 군사 개입한 것도 논란거리다. 알바니아계 무슬림들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인종청소로 1만 명의 희생자가 생겨나자 인권보호를 명분으로 이뤄진 나토의 군사개입은 유엔안보리의 결의안을 거치지 않은 것이었다. 나토 맹주인 미국의 국제법 학자들은 코소보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불법이었지만 정당했다(illegal but legitimate)고 주장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치지 않았기에 ‘불법’이었지만, 코소보에서 지독한 인권침해가 생겨났기에 나토 군사개입은 ‘정당’했다는 논리였다.


  진실을 들여다보면, 나토의 개입 이면에는 △발칸반도 안정을 통해 탈냉전 뒤 동유럽 시장 지배를 노리는 미국, △보스니아 내전 때 난민물결로 몸살 앓았던 서유럽 국가들의 계산이 숨어있다. 나토의 코소보 군사개입이 이뤄진 것은 미국과 서유럽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R2P를 명분으로 한 군사개입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마구잡이로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엄격한 개입기준이 필요하다. R2P 개념을 처음 도입했던 2001년 ICISS 보고서도 다음과 같은 5가지 전제조건을 덧붙였다. △더 이상 희생이 일어나는 것을 막겠다는 올바른 의도(right intention) △다른 모든 비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뒤의 마지막 호소(last resort)로서의 군사개입 △군사개입을 하더라도 그 규모나 개입 기간을 최소화하는 비례적 수단(proportional means) △군사개입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켜 더 심각한 인권침해를 부르지 않아야 한다는 합리적 전망(reasonable prospects)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개입 결의안 같은 정당한 권위(right authority) 등이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위 5가지 전제조건은 전란의 시대에 도덕과 인의를 외쳤던 공자나 맹자의 주장처럼 얼핏 공허하게 들린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도 없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현실은 힘의 논리가 법의 논리에 앞선다. 결국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강대국들의 개입 논리는 이해관계이다. 개입해서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가 잣대이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겉으로 드러난 개입 명분일 뿐이다. 실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 국제사회의 비정할 만큼 차가운 논리다. 2011년 석유부국 리비아에 나토가 개입했지만, 석유가 없는 시리아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국제사회의 관심 밖의 피압박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1년 유엔 회원국 가입과 독립국가의 꿈을 다 놓친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그 가운데 하나다. 2012년 지구촌 분쟁지역에 평화의 햇볕이 깃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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