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5월 2011-11-14   1494

경제, 알면 보인다-이제는 마이크로 세이빙이다

이제는 마이크로 세이빙이다

 

제윤경 (주)에듀머니 대표

2006년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에서 빈곤을 퇴치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운 그라민 은행과 그 은행의 유누스 그라민 총재가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라민 은행이 방글라데시에서 빈곤을 퇴치했던 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무담보 대출 상품을 통해서이다.

  일명 마이크로 크레딧이라 불리는 그라민 은행의 무담보 대출은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빌린 돈은 제 날짜에 꼭 갚을 것, 두 번째는 땅이 없는 사람에게만 대출해 줄 것, 세 번째는 모든 상업 활동에 배제된 여성에게 대출을 거의 허용해 줄 것이다. 첫 번째 원칙을 제외하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출의 모든 상식을 뒤집는 원칙이다. 사회의 수많은 약자들이 최소한의 밑천도 갖지 못한 채 악덕 고리사채업자들에게 돈을 빌려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극복하도록 돕는 그야말로 착한 은행이다. 그라민 은행과 유누스 그라민 총재의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여러 나라에서 이와 같은 운동과 정부주도의 정책이 행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것이 미소금융과 햇살론이다. 최근 금융위에서 고물가 고금리 악재 앞에서의 불안정한 서민 가계를 보호하기 위해 서민 금융기반 강화 종합대책을 내놓았는데 주요 내용이 미소금융과 햇살론의 확대이다. 언뜻 보면 그라민 은행의 착한 은행업을 정부주도로 행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듯하다. 그러나 그라민 은행이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을 통해 빈곤을 퇴치했던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빈곤을 더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빚으로 빚을 빚다

최근 미소금융의 국회 정무위원회 조영택 의원이 미소금융중앙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미소금융 중앙재단의 지역지점 전체 연체율이 7%에 달한다. 이미 한계선에 달한 저소득 서민 계층에게 자립 자활의 밑천으로 대출을 해주었지만 제대로 그 기능을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갚아야 할 원리금으로 인해 현금 흐름이 더욱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소액의 밑천이 빈곤 탈출에 중요한 동력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소규모 자영업은 생존 가능성이 대단히 낮다. 따라서 미소금융과 같이 소규모 창업 자금 대출은 이미 저소득 서민에게 자립의 밑천으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미소금융이나 햇살론을 이용하는 저소득 계층이 이미 카드론과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와 같은 악성대출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빚이 있는 상태에서 또 다시 빚을 내는 것은 그 대출 이자율이 아무리 낮아도 빈곤 탈출의 밑천은커녕 현금 흐름에 부가적인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심리적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정부의 마이크로크레딧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 제도를 금융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복지차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출을 일으킬 때 상환 의지가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일 위험이 있다. 이것을 일부에서는 도덕적 해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정부 차원의 사업을 ‘서민 금융’이 아니라 ‘복지 혜택’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 않을까.

  마이크로 크레딧은 애초에 민간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타당하고 정부는 대출을 통한 금융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복지에 더 힘을 쏟아야 했다. 상담 중에는 햇살론을 받아서 기존의 카드론이나 카드 리볼빙 결제금을 상환했다는 사람도 만난다. 결국 카드사와 은행만 도와준 결과를 만든 셈이다. 물론 기존 금융권 대출을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의 마이크로 크레딧으로 상환할 수 있었던 것도 해당 저소득 가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햇살론으로 카드 대출을 상환하고 나면 카드사에서 다시 대출 한도를 만들어 주는 불필요한 친절을 베푼다는 것이다.

  햇살론은 알고 보면 그리 낮은 이자율이 아니다. 10%가 넘어가는 이자는 저소득 가구에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햇살론을 갚기 위해 다시 적자가 반복되면 카드사의 불필요한 친절을 이용한다.

  빚을 빚으로 갚고 다시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에 갇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삶에 대한 희망과 자립에 대한 동기는 온 데 간 데 없어진다. 좀 더 절제된 소비를 하거나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의지도 점점 희박해지면서 심각한 재무적 무력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빚보다 저축 권하는 정책이 절실하다

한비야 씨의 구호 활동 경험이 담긴 책 좬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좭에 상당히 의미 있는 구절이 있다.

  “작년에 한정된 구호 자금 때문에 한 마을은 씨를 배분하고 그 옆 마을은 주지 못했단다. 안타깝게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씨를 나누어준 마을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 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이 곳에서의 씨앗이란 존재만으로도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일방적인 구호보다도 자립의 기초를 제공해 주는 것이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그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면서 자립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빚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갚아야 하는데 갚지 못하는 상황 앞에서 더 한 절망으로 내몰 수 있다.

  반대로 저축을 지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준다. 당장 소액의 저축액도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저축 만기금에 대한 희망은 한계 상황에서도 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자립의지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마이크로 세이빙, 즉 저축을 하면 매칭해서 저축을 해주는 운동이 마이크로 크레딧보다 훨씬 의미있다. 즉 10만 원을 저축하면 정부차원에서 10만 원을 함께 저축해 주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에서 목적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라면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기보다 희망을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정부가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는 동반자라는 의식으로 든든한 마음까지 덤으로 줄 수 있다. 갈수록 시름이 깊어가는 서민 가계를 위해 빚을 권하는 정부가 아니라 저축의 희망과 복지를 주는 정부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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