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9월 2011-09-02   1619

김재명의 평화이야기-팔레스타인 독립문 열쇠, 누가 쥐고 있나

 

팔레스타인 독립문 열쇠, 누가 쥐고 있나

 

 

김재명 <프레시안>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중동의 팔레스타인은 21세기의 이스라엘 식민지이다. 팔레스타인의 아랍 사람들은 한국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억압통치를 겪은 35년보다 더 긴 세월을 유대인들의 억압 밑에 지내왔다. ‘21세기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 새로운 긴장감이 짙어지고 있다. 올해가 넘어가기 전에 또다시 전쟁의 불길이 치솟을 지도 모른다.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선포를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이에 커가는 갈등 탓이다.

 

이스라엘과 미국, 팔레스타인의 꿈을 짓밟다

 

팔레스타인의 꿈은 당연히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이다. 마무드 압바스(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온건파 정치지도자들은 “올해 가을에 독립 국가를 선포하고 유엔에 정식 회원국이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팔레스타인 강경파 정치군사조직인 하마스(Hamas)도 “뒤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라며 힘을 보탠다. 그동안 총격전까지 벌이며 내분을 거듭해왔던 팔레스타인 정치세력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스라엘, 그리고 이스라엘의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의 반대이다. 의원내각제인 이스라엘에서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강경파들은 “팔레스타인이 그렇게 나온다면 전쟁밖에 대안이 없다”고 위협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문제에 둘러싼 이스라엘 쪽 입장은 크게 둘로 갈려있다. 온건파들은 원칙적으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협상과정을 거쳐야한다”는 꼬리표를 단다. 강경파들은 팔레스타인 국가건설을 논의의 대상으로조차 삼지 않으려 한다.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라니…그게 무슨 소리냐?”라며 아예 고개를 돌린다. 그런 강경파들이 이스라엘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다. 2000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봉기)를 촉발했던 전 이스라엘 총리였던 아리엘 샤론이 그랬고, 지금 이스라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그렇다(네타냐후는 우파정당인 리쿠드 당 대표로서 1996~1999년 총리로 재직, 1999년 총선에서 패배해 물러났다가 2009년 봄 다시 총리에 올랐다).

  스스로를 이른바 ‘지식인’이라고 여기는 이스라엘 여론 주도층도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선 강경파, 극우보수파로 그득하다. 예루살렘에서 만난 도어 골드 전 유엔대사(아리엘 샤론 전 총리의 정치보좌역)는 “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독립 국가를 갖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네타냐후 정권 아래서 2년 동안 유엔대사(1997~1999년)를 지냈던 그는 이스라엘 강경파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잘 알려진 바처럼, 1948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독립 국가를 세우면서 벌어진 전쟁(제1차 중동전쟁)으로 많은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이 대대로 살던 땅에서 폭력적으로 밀려났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가 130만 명 가운데 90만 명이 난민으로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야 했다. 팔레스타인 민족의 불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967년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에서 아랍연합군이 패배한 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그전까지는 요르단 통치령)와 가자지구(이집트 통치)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통치 아래 놓여 오늘에 이르렀다. “팔레스타인은 21세기의 이스라엘 식민지”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노르웨이 외교관들이 적극 중재에 나섰던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따라 1996년 자치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자치정부는 글자 그대로 ‘부분적인 자치’에 머물 뿐 ‘주권과 군대를 지닌 독립 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2000년에 팔레스타인은 독립 국가 선포를 꾀한 적이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전설적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2004년 사망)는 “오는 2000년 9월 13일을 데드라인으로 삼아 팔레스타인 건국을 선포하겠다”고 밝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렇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도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당시 미 대통령 클린턴은 아라파트에게 “중동평화협상 합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경우, 무장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가 되는 날이 중동평화가 한걸음 나아간 날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던 아라파트는 정작 그날이 오자, 언제까지 건국 선포를 미룬다는 시한 설정도 없이 그냥 넘겼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허탈감을 삭여야 했다. 그 뒤로 중동평화협상은 제자리 걸음마 상태이다. 유대인들 특유의 시간 끌기 작전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쳤다. 그래서 나온 것이 유엔총회에서 독립을 승인받는다는 방안이다. 팔레스타인의 고난에 동정적인 국제사회의 힘을 빌린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요점은 팔레스타인 독립문을 여는 열쇠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쥐고 있다는 점이다. 미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워싱턴의 정치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쪽의 독립 국가 선포와 유엔 가입 추진 움직임은 중동정세를 불안하게 만들 뿐 실효성이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유엔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유엔 총회가 아니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이다.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하나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반대표를 던지면 어떤 나라든 유엔 가입은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인정한다는 유엔총회의 표결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을 뿐, 유엔 회원국이 되느냐 못 되느냐를 결정하는 실제적인 권한은 안보리에 있다. 발칸반도의 마지막 분쟁지역인 코소보가 좋은 보기다. 코소보 인구의 절대다수인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지난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벗어나 독립 국가를 선포했어도, 그리고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고 있어도, 코소보는 유엔 회원국이 되지 못한 상태이다. 세르비아의 정치적 후원국이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코소보의 독립과 유엔가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잘 아는 이스라엘은 “유엔총회의 표결로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를 승인 받는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느긋한 표정이다. 팔레스타인의 꿈은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이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 권리이므로 언제라도 독립 국가 선포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품기 마련이다. 그 꿈이 이뤄지는 날 지구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늘 중동평화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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