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8월 2011-08-04   1745

경제, 알면 보인다-피곤한 재테크, 이제 안녕!

 

피곤한 재테크, 이제 안녕!

 

 

제윤경 (주)에듀머니 대표

 

저소득층 대상으로 재무상담 하는 상담사들은 간혹 심리적으로 괴로울 때가 있다. 조건부 기초생활 수급자들이 의도적으로 소득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이미 다른 소득이 있어 복지 대상에서 제외되는데도 소득을 숨겨 수급 신분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람들이 부정수급을 한다는 생각때문에 마음이 괴로운 것이 아니다. 혹은 도덕적 해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그 보다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수급자 복지 혜택 안에 갇혀 삶에 대한 적극적인 동기를 스스로 던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쓰러운 것이다.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 체계의 황당한 현실

상담 사례 중에는 자녀 셋을 키우는 어느 수급자 어머님이 수급자 신분 박탈이 두려워 아이들이 졸업을 했음에도 정상적인 직장을 갖는 것에 고민을 한다. 최대한 취업 시기를 늦추고 아르바이트를 권장하고 일부러 당겨서 군대를 보내기도 한다. 우리나라 복지 제도가 선별적 복지체계이다 보니 이런 황당한 일들이 벌어진다. 수급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생계비 지원은 물론이고 의료비, 통신비, 세금을 비롯해 주거 공간에 대한 지원까지 결정된다. 그 어머니는 아이들이 돈을 벌어 생활비를 보태면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알지만 당장 살고 있는 공공임대 아파트에서 쫓겨나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취업하자마자 몇 천만 원을 버는 것도 아닌데 목돈이 들어가는 전세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진로를 수급권에 맞춰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시장 탈락자와 빈자들에게 제한적으로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체계는 그 제도 자체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위와 같은 황당한 상황을 많이 연출한다. 언제든 다시 재기해보려 해도 대박이 터지지 않는 한 수급권에 의해 제공되는 사회복지는 삶의 한계선에 머물게 만드는 지독한 당근이다. 자존감을 훼손당하는 것은 물론이다. 잔여주의라는 말 그대로 우리 사회에서 복지 수혜자가 된다는 것은 타인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스스로에게도 낙인을 찍는 과정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는 세금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괴감은 결국 수치스러움에 머물게 하거나 그를 벗어나기 위해 뻔뻔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잔인한 제도이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 선별적 복지 혜택은 하나의 감옥이 될 수밖에 없다.

 

승자독식 재테크로 내몰리는 중산층

한국은 OECD가입국 중에서 세금을 가장 적게 내는 국가이다. 그럼에도 웬만한 사람들은 세금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 그 거부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바로 재테크 전략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소득공제 관련 정보가 넘쳐나고 절세 가능한 금융상품은 필요에 대한 판단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맹목적으로 가입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일명 세테크라는 이름으로 어떻게든 낸 세금을 돌려받거나 납부를 피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정보로 인기를 끈다. 이렇게 세금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이유도 바로 선별적 복지제도의 한계에서 기인한다. 세금을 내는 계층과 복지혜택을 받는 계층이 구분되는 복지수혜와 재원부담의 분리현상 때문에 중산층은 세금이 달갑지 않다. 세금을 내기만 하는 중산층의 삶이 상대적으로 풍요롭고 안정적이지만도 않기 때문에 거부감은 더욱 노골적이고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GDP 대비 55%의 세금을 낸다. 소득의 절반 이상이 세금인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의 중산층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자신이 낸 세금을 통해 주거 안정은 물론이거니와 교육과 의료, 노후까지 전부 보장받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중산층은 세금을 뗀 나머지 가처분 소득으로 삶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제반 비용을 당사자가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그 비용이 중산층조차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무상의료가 시행되지 않아서 민간 사보험료만 매월 가구당 40만 원이 넘는 돈을 지출하고 집 한 채 사는 것은 11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아야 가능하다. 대학등록금이 1000만 원 시대임과 동시에 고등학교 자녀에게 지출되는 공교육비조차 만만치 않다. 노후자금은 국민연금이 있기는 하지만 이미 빚을 끼고 조기 퇴직 당하고 연금을 받아 빚을 갚아야 할 판이다. 아무리 소득이 높아도 결혼과 내집 장만, 자녀출산과 교육이라는 평범한 라이프사이클을 유지하는 것이 빚 없이 불가능하다. 중산층의 불안한 현실에 대해 금융권은 공포마케팅을 통해 재테크로 유도한다. 버는 돈만으로 생활이 불가능하니 투자를 통해 자본소득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그런 선동이 2000년대 내내 중산층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는 처참하다. 집에 투자하면 돈을 벌 것이란 생각에 빚내서 집을 샀지만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한 때는 펀드 투자로 큰돈을 까먹기도 했다. 한국이 GDP대비 31%의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북유럽의 중산층은 우리보다 20%정도 세금을 더 부담하고 이런 처참한 현실을 겪지 않는다. 우리나라 중산층이 유독 재테크를 좋아해서 부동산과 펀드로 고군분투했던 것도 아니다. 자기 본업만으로도 노동 피로감에 젖어 있는 상황에서 재테크까지 쫓아다녀야 했다. 그리고도 결과적으로 빚만 늘었으니 선별적 복지체계에서 비롯된 중산층의 현실은 비극 그 자체이다.

  취약계층과 서민 중산층 모두에게 선별적 복지는 끊임없이 최소한의 품위가 전제된 삶과 자존감을 위협하는 제도일 수밖에 없다. 최근 시민사회 영역에서 보편적 복지 논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경제 연구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보편적 복지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최근 금융위기 속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고 한다. 보고서는 위기 대응 능력 면에서 57개 국가 중 덴마크가 1위, 노르웨이 4위, 스웨덴 7위, 핀란드가 9위를 차지했다고 설명한다. 복지는 인간의 경쟁 동기를 줄여 비효율적이란 구태의연한 논리가 여전하지만 고용불안과 재테크 피로감, 채무 노예의 쳇바퀴에 지친 중산층들이 생각을 바꿔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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