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8월 2011-08-04   2389

안건모의 사는 이야기-똥차 몰아도 죄짓고 사는 사람은 없다

 

똥차 몰아도 죄짓고 사는 사람은 없다

 

 

안건모 <작은책> 발행인

 

“야, 여자 하나 있으면 소개해 달라니까.”

  경기도 일산에 있는, 서울시 소속 동해운수와 경기도 소속 명성운수에서 버스 운전을 하던 옛 동료들을 만났다. 한때 ‘버스일터’라는 단체를 만들어 한국노총 산하에 있는 버스노동조합을 민주화해 보겠다고 애쓰던 사람들이다. 모두들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스스로 그만둔  뒤, 다시는 동해운수나 명성운수로 돌아가지 못하고 화물차 운전이나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나보다 세 살 위인 춘삼이 형은 나만 보면 이렇게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한다. 흐흐 내가 중매인인 줄 아나? 물론 우스갯소리다. 만나면 소주 한잔하면서 이렇게 시시껄렁한 우스갯소리나 정치판 돌아가는 이야기로 시간을 죽인다.

  만난 옛 동료들은 모두 일곱 명. 살아가는 모습들 보면 참 아슬아슬하고 삶이 참 기가 막히다. 아내와 이혼한 사람이 세 사람. 아내가 죽은 사람이 한 사람이다. 여자를 소개해 달라는 춘삼이 형은 8년 전 이혼했다. 딸만 셋인데 둘이 결혼을 하고 하나만 남았다. 그 막내가 벌써 스물여섯. 이혼한 엄마와 같이 산다. 동해운수에서 해고된 뒤 다시는 버스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돈 들어갈 데가 별로 없으니 생활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만배 형도 이혼했다. 나보다 한두 살 위인 이 형은 부인이 딴 남자와 연애를 하는 걸 보고는 부인한테 집을 줘 버리고 나와 버렸다. 그 뒤 집 없이 떠돌다 집 한 채 있는 이대 나온 여자와 만나 살고 있다. 잘 사는가 싶더니 여자가 심한 조울증 때문에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해 다시 헤어지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당장 월세방 얻을 돈이 없어서 그 집에 눌러 앉아 있다. 큰아들은 결혼을 했고 둘째가 헤어진 엄마와 산다. 명성운수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이삿짐센터를 차렸다가 별 재미를 못 보고 접으면서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 뒤 화물차를 운전하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닌가 싶다. 옛 동료들 가운데 가장 살기 힘들지만 늘 자기보다 더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하면서 산다.

  진국이는 나보다 조금 어린 쉰한 살이다. 동해운수에서 사표를 쓴 뒤 시골로 내려갔다가 아내가 뇌수막염에 걸려 죽었다. 시골 마을 조그만 병원에서 계속 감기로 알고 있다가 심해져서 갑자기 세상을 떴다. 서울에서 그냥 살았으면 뇌수막염쯤은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진국이는 늘 안타까워한다. 진국이는 아내가 죽고 다시 일산으로 올라왔다. 버스 회사에서 노동운동을 좀 했다고 버스 회사를 못 들어가고 만배형이 일하는 화물차 회사에서 남의 차를 운전하고 있다. 두 딸들은 같이 사는 이모가 키우고 있다. 큰애가 벌써 고등학교 졸업했나?

  광수는 마흔 중반이다. 동해운수에서 일하다 직장암에 걸려 사표를 쓰고 한 3년 동안 허리에 똥주머니를 차고 살다가 겨우 완치됐다. 노는 동안 아내가 부동산 중개업 자격증을 따서 겨우 먹고살 수 있었다. 광수는 완치된 뒤 똥을 푸러 다니는 똥차를 운전하다가 시외버스 회사인 대원여객에 들어갔는데 엄청 후회하고 있다.

  “누가 대원여객 온다고 하면 말릴 거야. 격일 근무제인데 하루에 여섯 탕, 똥구멍에 무좀 걸릴 정도로 504킬로를 돌아야 돼. 형, 똥차가 나아. 주 5일 근무에다 빨간 글씨 다 놀고. 얼마나 좋아.”

  광수가 똥차를 운전할 수 있게 직장을 소개해 준 정국이도 동해운수에서 버스일터 활동을 하다가 해고된 사람이다. 나이는 이제 마흔을 넘어 오늘 만난 동료들 가운데 가장 어리다(?). 동해운수에서 해고무효 싸움을 하다 갑자기 회사와 합의를 봐서 같이 싸우던 동료들한테 한때 왕따를 당했다. 똥차를 운전하다가 귀가 얇아 누가 화물차 운전이 돈이 좀 된다고 하니 화물차를 운전하다 다시 똥차를 운전하고 있다.

  병식이는 이삿짐센터에서 일한다. 버스 회사를 그만둔 뒤 이것저것 해 봤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 만배형이 운영하는 이삿짐센터에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만배형이 이삿짐센터를 접고 나서도 병식이는 여전히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인과 이혼하고 러시아 여자와 결혼해 산다. 전처가 낳은 아들하고 러시아 여자가 낳은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는 게 힘에 부치는지 요즘 얼굴이 안 좋다.

  “형, 내 나이가 벌써 오십이야.”

  언제 자기가 그렇게 나이가 들었는지 허망한 듯 웃는다. 요즘 사는 재미는 새로 얻은 러시아인 아내와 아들이란다.

  광식이는 그나마 평범하게 산다. 버스 회사를 그만둔 뒤 트레일러 화물차를 운전하는데 민주노총에 가입돼 있어 그나마 좀 나은가 보다.

  오늘 안 나온 동료들도 몇 있다. 그 가운데 영식이는 버스 운전을 할 때 하도 몸이 아파  신내림을 받았더니 신통하게 나았다. 그 뒤 자신이 믿는 ‘장군’님한테 빠져서 무당이 됐는데  손님이 없어 7년 동안 겨우 먹고 살았다. 요즘에는 관광버스 회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럭저럭 잘된(?) 동료들도 있다. 경석이는 시골로 귀농했고 경숙이는 고양시에서 문화관광 해설사로 일하고 있고 재석이는 명성운수 지부장, 영진이는 민주노총 공공노조 소속 청소차 노동조합 지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이 옛 동료들 이름은 다 가명이지만 살아가는 모습들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이혼하거나 직장이 없어 실의에 빠져 곧 파산할 듯이 먹고사는 사연을 들어보면 소설보다 더 기가 막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려고 애쓰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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